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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체면문화
2013-01-31 03:44:03최종 업데이트 : 2013-01-31 03:44:03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체면이 밥 먹여주냐고 하지만 우리는 대개 다른 사람한테 잘나 보이려고 한다. 그건 아마 우리 국민 특유의 문화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처럼 남에게 잘나 보이려는 체면문화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유독 심하다고 한다. 내가 다른나라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일일이 연구해 본 바가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언론매체를 보면 대개 그렇다고들 말한다.

등산을 가 보면 그게 사실인것 같다는걸 느낀다. 
등산하는 사람들 옷 입은걸 보면 유명 오리털 패딩잠바 하나에 40-60만원짜리를 입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모자, 레그워머(목도리), 스틱, 장갑, 바지, 등산화, 배낭까지 챙겨 입은걸 대충만 따져 봐도 그 제품 값은 웬만한 봉급생활자로서는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기왕지사 좋은 옷과 장비를 챙겨 입는거야 본인 자유지만 과연 개인의 자유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남을 의식한 듯한 체면문화 아니고서는 동네 뒷산 올라가는 복장치고는 그정도일수 없을것 같다.
고향에서 신문기자를 하는 친구로부터 명절날 언제 내려오냐는 연락을 받고 이러쿵저러쿵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 은퇴하면 귀농이나 할까 싶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이 친구가 콧방귀부터 끼었다.

남은 진지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말하는데 왜 코웃음을 치는지 친구놈이 슬그머니 괘씸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즘 신문을 보면 귀농자가 급격히 늘어나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이들을 지원하고 귀농자를 더 늘리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도 주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걸로 안다. 그리고 방송매체에서도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서 귀농 현장의 생생한 성공사례를 담아 내고장 소식이나 9시 뉴스 시간에 보도를 해 준다. 

우리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접하면 귀농 해서 고향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갖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귀농자가 생겨 젊은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에 의해 우리 농촌이 더 젊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한번은 신문기자인 친구가 귀농자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만 그 귀농자가 한 첫마디는 "취재하더라도 제 이름은 안 나가게 해주세요. 전에 같이 직장에 다니던 동료들한테 내가 농사지으러 시골 내려왔다는 얘기가 돌면 영 체면이 안 서서..."라며 신신당부를 하더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흙이 좋아서 내려오기는 했는데 앞으로 동네 사람들이랑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막막하네요. 도시 있을 때는 그래도 부하 직원만 수십명씩 데리고 일하던 대기업 간부였는데, 체면이 안 서니까..."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 사람들로부터 친구가 느낀 첫 인상은 나의 생각이나 철학은 나중 문제고 우선 나를 보는 사람들부터 먼저 의식하는 체면문화가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며 무척 씁쓰레 했다.
또한 그런 마인드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귀농 현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겠다는 순수 귀농인과 달리 "내가 왕년에 이랬는데 말이지"를 먼저 생각하는 체면형 귀농인들은 자칫 귀농 생활에 실패하거나 적응 불가로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나름 한때 잘나갔던 순간만 기억하면서 과거에 대한 체면을 꺾지 못하면 귀농은 차라리 안하는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구입해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 휴대폰의 신제품이 나오면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 신제품을 구입한다. 실제로 휴대폰의 약정기간 2년을 채우는 청소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휴대폰을 자주 바꾼다는 뜻이다. 

남자들은 비싼 술 마시는 게 다른 사람한테 자랑거리가 되고 여자들은 고가의 보석과 명품을 지니는 게 자랑거리가 된다.
특히 결혼문화를 보면 우리 사회의 체면문화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걸 금세 알수있다.
일본이나 서양 사람들의 결혼엔 아주 절친한 소수의 사람만 초대한다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고 호화스런 곳에서 식을 올린다. 호화로운 예식장의 한 끼 밥값은 서민 직장인들의 한 달 밥값에 이르기도 한다. 

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체면문화_1
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체면문화_1

한끼에 5000원씩 하는 김치찌개 같은것을 한달간 근무하는 20일 동안 먹으면 10만원인데, 유명 호텔의 결혼식 한끼 밥이 10만원이니 그럴수밖에 없다.
그 뿐인가? 고가의 예단과 혼수품 때문에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고가의 혼수품을 장만해야 한다. 청첩장을 받으면 체면 때문에 안갈 수도 없고 체면 때문에 부조금을 적게 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액수에 따라 친분관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체면문화는 서로를 참 피곤하게 하고 많은 지출을 하게 만드니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면서도 실속없이 경쟁하려는 체면문화, 이제는 과감히 던져버려야 할 폐단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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