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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물자절약을 가르치고 싶네요
혹시 가리방이라는걸 아시는지?
2013-02-03 10:12:42최종 업데이트 : 2013-02-03 10:12:42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석원

외식산업의 성장과 식당 일을 좀 편하게 해 보려는 생각에서인지 요즘 웬만한 전문음식점에 가면 고급스런 시설에 식탁 위에는 '세팅지'라는 화려하게 인쇄된 종이가 손님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럴때는 손님으로서는 대접을 잘 받는구나 하는 좋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식탁 종이는 지질도 상급지에다가 그냥 칼로 잘라서 필기용 종이로 써도 무방한 종이일만큼 상당히 고급이어서 "이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안할수 없다.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고급스럽다는 뜻이다. 이게 특히 대형 혼례식장 뷔페 식당에 가면 더욱 그렇다.

한번은 식당에 가서 종업원에게 이렇게 고급 용지를 따로 사서 식당용으로만 쓰는건지, 아니면 일반 문구용 용지를 사다가 식당에서 쓰는건지 물었더니 업소용으로 그렇게 고급 용지가 따로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아예 업소용으로 고급 용지를 만들어 판다는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무래야 산에 손나무만 빽빽하고 산업용으로는 그다지 쌀만한 나무가 많지 않아 펄프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데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젊은이들에게 물자절약을 가르치고 싶네요_1
젊은이들에게 물자절약을 가르치고 싶네요_1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물자절약 얘기하면 콧방귀도 안뀌겠지만 옛날에는 안그랬다.
지금이야 먹는 것, 쓰는 것, 입는 것 모두다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 오죽하랴만 다른건 몰라도 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 그리고 목재가 풍부하지 않아 거의다 수입하는 펄프도 마찬가지여서 그것만이라도 좀 아껴서 썼으면 하는 생각에 옛날 얘기좀 해볼까 한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배고픔을 면해보자고 온 나라에 새마을운동이 불붙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에 들어 가 보면 사무용품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서류의 재질은 몽땅 16절지 갱지였고 필기구는 볼펜 한자루가 고작이었다. 
그때 '가리방' 이라는게 있었다. 검정색 등사 잉크를 묻혀 롤러같은 손잡이를 드르륵 밀면 마치 복사하듯이 계속해서 같은 문서를 찍어내던 수동식 등사판이었다.  

문서를 등사하기 위해 많은 용지가 필요할 때면 선생님께서는 자물통이 달린 교무실 캐비넷을 열고 16절지를 한묶음 꺼내셨다.
당시에 일거리가 많아 학생인 우리를 불러 잡무를 시키셨을때 일인데 학생들에게 나눠줄 알림의 내용이나 학부모에세 보낼 안내장 같은것을 등사하기 위해 선생님 일손을 도와 드리다 보면 늘 겪는 일이었다.
그 싯누런 16절 갱지일망정 한 면을 쓰면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뒷면에 다른 내용을 또 등사해서 썼고 재활용해야 했다. 

선생님은 문서를 정리해야 할 때는 폐기해야 할 문서철에서 쓸 만한 이면지를 몽땅 추려냈고 흑표지나 철근까지 한 묶음 챙겨 다시 활용해 썼다. 
요즘 아이들은 흑표지나 철끈이라는거 구경도 안해 봤을 것이다.
스위치 하나면 초등학생도 컬러 프린트 종이를 쭉쭉 뽑아내는 지금은 어떤가. 컴퓨터가 가정마다 한 대씩, 직장에서는 직원 1명당 1대씩 책상을 차지하고 있고 16절 갱지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수 있을 정도로 고급복사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쓰고 있으니 식당에서 김칫국물 떨어진 그것글 한번 쓰고 버릴 생각에 식탁마다 깔아 놓고 쓰는게 고급용지이니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니 격세지감이라며 그냥 느끼고 말 일이 아니라 우리의 니나친 과소비와 낭비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요즘엔 과거의 우리네가 그랬던것처럼 가리방의 검은 유액을 더 이상 손에 묻힐 필요가 없고 형형색색의 호화로운 필기구를 필통에 한 무더기씩 꽂아 놓고 쓴다. 희디흰 고급 복사지가 문서철을 꽉꽉 채워 나가고 그보다 더욱 많은 양의 복사용지가 폐기돼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스위치 한번만 누르면 수백 수천장 가릴것 없이 순식간에 국화빵같은 복사내용을 죽죽죽 뽑아 내는 최첨단 복사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조차 젊은 직원들에게 이면지를 활용하라, 폴더를 다시 활용해 써라고 잔소리를 하면 그들은 '제 봉급으로 샀나, 별꼴 다보겠다'는 듯이 떨떠름한 기색이다.  문서정리할 때 종이도 그렇지만 폴더와 파일등은 그 재질과 종류가 얼마나 고급스럽고 다양한지. 몇해를 써도 끄떡없을 것들이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한해는 고사하고 몇 달 사용후 몽땅 버려지는게 너무나 많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뭘 그런걸 가지고 고민하냐, 그냥 살지'라고 말하니 너무도 아까워 참을 수 없다. 문득 옛날 시절이 떠오르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시절 풍경을 너무 쉽게 잊고 자만에 빠져 사는건 아닌지, 그 때문에 지금같은 무서운 불경기와 경제한파, 대량실업에 시달리는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하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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