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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인생 살겠다는 다짐을 했던 등산
2013-02-03 12:33:20최종 업데이트 : 2013-02-03 12:33:20 작성자 : 시민기자   권혁조

이제 내일 2월4일은 벌써 입춘이다. 오늘 같은 날씨는 그동안의 칼바람과 혹한에 비하면야 양반같은 날씨지만 최근 지난 한달동안은 빙하기 같은 혹한이 몰아쳤었다.
그리고 이제 입춘이라는 절기와 상관없이 곧 또다시 혹한이 몰아칠거라는 기상대 예보다.

날씨야 춥고 덥고간에 달력에 나와있는 입춘이라는 절기가 떡하니 쓰여진 글씨를 보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저저번 주말에는 친구들 몇을 불러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최근에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마저 살가운 판에 한 폭의 그림 같은 겨울풍경이 펼쳐진 산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였다.

친구 둘과 가벼운 등짐을 챙겨 발걸음을 재촉한 곳은 무주의 덕유산. 구천동 계곡이 드리워진 아름다운 1600미터의 덕유산에는 운해가 내려놓고 간 상고대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 그곳 지인의 전갈에 더이상 미루다가는 그 장관을 못볼것 같아 부랴부랴 나선 것이다.
산을 향해 오르는 기쁨은 가슴 벅찬 그 무엇 이상이 있다.

산행이란 고통마저도 즐기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상에 머무는 짧은 순간만 행복하다 생각한다면 등산은 괴로운 일이고, 비생산적인 일이 되고 말겠지만  오르는 과정 모두를 고통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등산은 전 과정이 의미있는 일이며,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아마도 산에 오르는 모든이들의 똑같은 생각 아닐까. 어느 산이든 오르막이 없는 산은 없으니, 산은 헐떡임이 있어야 하고 평상시 쓰지 않는 근육을 쓰니 어느 정도 고통은 따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 기쁨을 주기도 하는 등산에서 모든 과정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면 산처럼 위대한 스승도 없을 것이다.

덕유산 계곡은 깊고 맑다. 은근히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가는 길을 많이 닮았다. 이미 쌓여진 지난 가을의 낙엽은 거의 씻겨 내려가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하늘로 향하고 있다. 겨울 서정이 이런 것일까. 
덕유산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눈꽃이다. 눈꽃은 철쭉과 주목군락, 구상나무에 피고 덕유산을 품은 백두대간 자락도 순백의 물결이 연봉을 따라 요동친다. 가히 눈의 나라에 온 듯한 설경이 펼쳐진다. 청량한 겨울하늘과 은빛 물결, 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태초부터 한 몸인 듯 황홀하다. 조물주가 내린 빙화는 겨울산의 운치를 더해주니 선유의 세상이 바로 여기다. 

8부 능선에서 구름과 만났다. 힘든 산행에서 변화를 맞는다는 것은 반갑다. 땅으로 내몰렸던 물고기가 다시 물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구름 속에 든다. 구름과 아름다운 눈꽃을 보고 있노라면 설국인지 하얀 천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잎을 털어낸 나뭇가지들이 새 잎을 달고 있다. 하얀 잎이다. 뽀얗게 가지를 덮고 있던 하얀 잎, qkh 눈꽃이다. 덕유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저마다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는 눈꽃.  이것은 높이 오를수록 무성하다. 9부 능선쯤 됐을까. 눈이 내린 것처럼 천지가 완전히 하얗다. 상고대이다. 구름이나 안개가 추위속을 지나가다가 나뭇가지나 바위에 붙어 얼어버린 것이다. 두터운 서리라고 보면 된다. 
 

순백인생 살겠다는 다짐을 했던 등산_1
순백인생 살겠다는 다짐을 했던 등산_1

사진작가들이 절경을 렌즈에 담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다가 셔텨 누르는 일을 잊고 입만 벌린채 서있게 된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덕유산의 상고대는 바람을 마주보며 피어있다. 북풍이 불면 북쪽으로, 남풍이 불면 남쪽으로 자란다. 영하 10도 이하로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면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하얗게 된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나무계단을 따라 줄곧 눈꽃터널이 이어지는데 겨울 햇살에 부서지는 눈밭은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반짝이고, 나무가지 위에 피어난 새하얀 눈꽃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향적봉에 다다랐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서면 누구나 겨울신선이 된다. 시원하게 트이고 이어진 크고 작은 연봉들이 새하얀 눈가루를 공중에 날리며 등산객들을 맞는다. 사방으로 흩어진 시야와 함께 산 동남쪽으로 이어진 산 그림자는 맑고 푸른 겨울 하늘 아래 겹치고 이어져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눈꽃세상은 차갑고 매서운 바람과 함께 사람의 넋을 빼놓는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모습의 설화와 상고대 터널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것이 무주의 절정이요 겨울 덕유산의 진면목이다.

말로만 들었던 구천동 계곡의 33경이 길 옆으로 나타난다. 예부터 구천동 계곡 물은 깊고 맑기로 정평이 나 있다. 계곡을 지나가면 계곡물에 흘려내려간 낙엽과 지난 시간들의 서정과 추억도 묻혀 버린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구름을 서서히 걷어냈다. 발아래로 낮게 깔리는가 싶더니 거짓말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겨울인데도 하늘은 가을 하늘보다 푸르다. 멀리 지리산의 연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도 머리 꼭대기에 하얀 상고대를 이고 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런 기분을 맛보려고 등산을 한다. 그 과정을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등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행복한 삶을 느낄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맑은 대기를 뚫고 태양이 거침없이 내리쬐는 하얗던 세상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오며 인생의 한 행로를 기억해 보며 예순 넘은 나의 앞으로의 행로를 다짐해 본다.  
"그래, 저 하얗고 맑은 순백의 눈처럼 조금의 흠결도 없는 인생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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