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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인줄 알고 허둥댔던 그날 오후
바쁜 와중에라도 잠시 짬내어 쉬어가며 일하세요
2013-02-04 00:31:19최종 업데이트 : 2013-02-04 00:31:19 작성자 : 시민기자   남준희

비 내리던 한참전 휴일 때 일이다. 아내는 친정에 간 상태에서 아이들도 모두 밖으로 놀러 나가 집안에는 시민기자 혼자 있었다.
밥 해먹기도 귀찮아서 왼종일 방콕 여행을 하던중, 끼니 때가 되어 하는수 없이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라면으로 점심을 대충 때운후 책을 펼쳤다.

방콕여행중에 최고의 휴식은 뭐니뭐니 해도 책이라는걸 나는 안다. 지식 쌓지, 고요한 가운데 마음의 덕도 쌓이지, 세상만사 여유롭고 넓게 보는 안목까지 생기지... 책은 그래서 방콕 여행중에 이만한게 따로 없다는걸 늘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이날, 유난히 졸음이 밀려왔다. 방콕여행중에 역시 졸음은 가장 큰 적이자 가장 이겨내기 힘든 적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이기도 하다.
결국 책 좀 보려던 계획이 곧 수면제 역할을 했다. 천하장사 이만기씨도, 그리고 세계 최고의 역사 장미란 선수도 들어 올리지 못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온다.

이참에 늘어지게 낮잠 한번 자 보자는 생각에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마치 예정된 약속처럼 마취제를 다량으로 투여한 것처럼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미 자장가 같은 음악도 틀어 놓은 상태였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무슨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아차, 저녁도 안먹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다음날 아침까지 잤나 보다. 주위는 이미 밝은 상태였고 나는 출근시간을 놓쳐 버렸다. 지각인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후다닥 일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달음질쳤다.
'아니 이놈의 자식들은 애비가 회사 출근도 안하고 잠을 자고 있으면 알아서 잽싸게 깨워야지, 그냥 놔뒀단 말이야? 참 내 기가 막혀서. 아빠가 그렇게 해서 실직이라도 당하면 어쩌겠다는거지?'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정신없이 문지르다 보니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회사에 가서 뭐라 번명을 해야할지 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나이에 지각이라니. 이건 정말 망신 아닌가.

머리를 감는 둥 마는 둥 대충 씻고 나와 드라이로 말릴 겨를도 없이 와이셔츠를 챙겨 입으려고 장롱을 열어 봤으나...이런, 다림질 해 놓은 와이셔츠가 하나도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이 일을 어쩌나, 마누라가 1주일치 와이셔츠를 한꺼번에 빤 뒤 옷을 다려놓지 않은 것이다. 
하는수 없이 거실 빨래걸이로 나갔다. 거기에 널어 놓은 와이셔츠를 하나 골라 다림질을 할 생각에서였다.

 

아침인줄 알고 허둥댔던 그날 오후 _1
아침인줄 알고 허둥댔던 그날 오후 _1

쿵쿵거리며 거실로 뛰어 나가는 찰나.
"아빠 왜 그러세요? 어디 가세요? 저녁 약속있으신가 봐요"라는 딸내미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약속? 지각해서 정신없이 출근 준비하는 아빠한테 아침부터 웬 저녁약속 타령이란 말인가. 딸내미의 말은 들은척도 안한채 와이셔츠 하나를 집어 드는 순간...뭐? 저녁 약속이라구?

퍼뜩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아, 아침이 아니라 오후 5시였다. 저녁 5시. 
순간 파도처럼 밀려 오는 허탈함. 지각이 아니라는 안도감 대신 그동안 하루하루 살아온 시간들이 얼마나 쫓기고 정신이 없었으면 잠시 눈을 붙인게 깊은 잠에 빠져들게 했으며, 그렇게 달게 자고 난 뒤 아침과 저녁조차 분간을 못해 저녁나절을 아침으로 착각하고 지각했다며 부리나케 출근준비를 하다니.

아이들 듣는데서 '지금이 저녁이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아빠가 얼마나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싶어서였다.
"으응? 아니, 바쁜게 아니고 엄마가 와이셔츠 다림질 하기 힘들거 같아서 아빠가 몇 개 좀 다려 두려고. 엄마는 아직 안왔지?"
"네. 곧 들어오신다고 전화 왔었어요. 아빠랑 식사 먼저 하래요. 우린 치킨 먹고 싶은데"
치킨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귀에 앵앵거렸다. 치킨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짧은 시간 동안 허둥대던 내 모습을 되돌아 보니 나 스스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뒤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창 밖엔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무작정 비오는 날이 좋을 때도 있었다. 낙수물 떨어지는 소리에도 정감을 느껴 한없이 바라보며 생각속에서 멀어졌던 모습들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시골에 살던 어릴적 그때, 시골집은 흙으로 만든 벽집이기 때문에 한여름 오랜 장마에도 고온다습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방이 눅눅하다 싶으면 살짝 군불만 지펴주면 금새 보송보송 해지기 때문에 비오는 날 책이라도 읽다가 잠이 들면 꿀맛 같은 단잠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내가 그 옛날의 단잠에 취해 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수십년전 느꼈던 달콤한 꿀맛같은 잠을 잘수 있었으니 최근 몇 달간의 피로가 단박에 씻긴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지금처럼 생활에 불편없이 가전제품이란 걸 구경도 못하던 그때, 그 흔한 벽시계도 한 집에 겨우 하나 정도 안방에 걸어놓고, 손바닥 만한 내 방에서는 작은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벽에 옷 걸어 놓는 못이 서너개 있을 뿐... 

그러기에 실컷 자고 나면 흐린 날씨에 시간을 분간 못해 후다닥 놀라 학교 늦었다고 울상을 하면 형과 누나들이 웃음을 참지 못해 배를 쥐고 웃었던 기억.
오랜만에 마약같은 단잠을 자고 나서 그런 추억에까지 빠져 볼수 있었다.
생업에 쫓겨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수원시민 여러분, 그래도 가끔씩 마음 추스르고 편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취해 달콤한 휴식도 가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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