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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함자도 모른다고?
2013-02-04 08:06:25최종 업데이트 : 2013-02-04 08:06:25 작성자 : 시민기자   임정화

설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벌써 머리 굴리기에 분주하다. 설 명절에 제수용품 준비하는 엄마와, 막히는 길 뚫고 운전해서 외갓집에 내려 갔다 와야 하는 아빠 말고 아이들이 머리 굴릴 일이 뭐가 있을까.
이 녀석들 세뱃돈 받을 궁리 하느라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벌써 목록표까지 만들어 놓았다. 주로 작년에 받았던 액수를 기본 근거로 삼아 거기에 증감을 더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운 좋으면 고모들까지.

그만할때는 다 그러려니 하지만 결국 이녀석들 세뱃돈도 알고 보면 전부 다 제 엄마아빠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걸까. 내 아이들이 세뱃돈 받으려면 나도 다른 가족 조카들에게 똑같이 세뱃돈을 줘야 하니 그것도 알고보면 아주 합리적인 품앗이인 셈이다.  아이들만 신나는 어른들의 품앗이라고나 할까. 

두 녀석이 앉아서 그 궁리를 하고 있자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이 정색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 참, 큰애부터 이리 와봐. 너 할머니 할아버지 함자(銜字)가 어떻게 되는지 말해 봐"
성함도 아니고 함자라고까지 극존칭을 쓰는 정도라면 아이들이 절대 몰라서는 안되는 이름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제 아빠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이시다. 물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엄마에겐 마찬가지 존재시고.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남편의 얼굴도 굳어졌다. 이미 지난번 추석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일러주었건만 그 사이에 또 까먹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세뱃돈 받을 궁리부터 하다니, 남편의 표정이 밝지 않은게 당연했다. 하물며 할머니 할버지 함자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함자를 대보라고 하는건 하나마나 한 일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헛 가르치고 있었구나. 쯔쯔쯧"
남편이 혀를 차자 큰 아이가 눈치를 보며 "죄송해요"라면서 제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남편도 어이가 없어서 가르쳐줄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지 그런 아이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아빠의 처분만 기다리는 듯 했다.

잠시후, 방으로 들어갔던 아이가 다시 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손에는 싸인펜과 조그만 노트가 들려 있었다.
"써주세요. 한문도 함께요. 다시 외울께요. 그리고 이제는 절대 안 까먹을게요"
"짜식... 너, 할머니 할아버지 함자보다 세뱃돈이 더 궁한거지 임마?"
남편은 어르신들의 함자를 다시금 제대로 배워보겠다며 대오각성 하고 필기구까지 준비해온 아이에게 구박을 주면서도 안가르쳐 줄수 없는 일이어서 결국 노트에다 우리말 존함과 한자까지 큼지막하게 써서 두 아이에게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함자도 모른다고?_1
할머니, 할아버지 함자도 모른다고?_1

"절대 까먹지 마. 또 한번 그러면 그땐 정말 혼날거야"
"지금 당장 외울게요"
남편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 노트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 두 아이. 이젠 다시는 안 까먹겠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자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보도를 가끔 접하곤 하는데 이건 부모의 책임이 100%이다. 아이들에게 효도를 바랄수 없는 세대이긴 하지만 이것은 효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게 된 연유로써 뿌리의 문제이다.

예부터 어르신들이 젊은이를 만나면 본관부터 물어 보았다. 
내가 남편을 처음 친정 부모님에게 소개시켜 드릴때도 아버지는 맨 먼저 남편에게 본관을 물으셨고, 또한 시조의 함자에다가 몇 대 후손인지를 물었다. 
이럴 경우 대개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은 젊은이일수록 의젓하게 대답을 해 어른들을 흐뭇하게 했다. 이와 반대로 대답을 못 하면 부모나 일가 어른들이 망신을 당하며 수치로 여겼다. 

그날 다행히 남편은 이 첫 관문을 무사하게 통과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윗감 자격중 70%는 따고 들어갔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 핵가족 시대를 살면서 요즘에는 조부모의 존함조차 모르는 젊은이가 흔해졌다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남편도 그럴때마다 혀를 차면서 내 아이들만큼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자주 아이들을 불러 가르쳐온 일이건만 아이들이 자꾸 까먹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그런데 조부모의 함자를 모르는게 초중고생도 아닌 대학생들조차도 그런다는게 문제다.  게다가 본관이 무엇인지 시조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한때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라는 유행가가 히트한 적이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이나, 그런 아이들을 그대로 놔두는 부모들이나 해도 너무한다.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한 조상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건 그냥 두고 볼 일만은 아닌듯 하다.
아무리 물질만능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런 개념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그동안 어떻게 지켜온 가문이고 민족이었던가. 생각할수록 조상님들께 죄송스럽다. 

이번 설날을 맞아 친가 조부모님은 물론이고 외가 조부모님의 함자는 모두 알아두도록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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