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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존재감조차 없는 아버지들
2013-02-04 10:53:32최종 업데이트 : 2013-02-04 10:53:32 작성자 : 시민기자   장영환
나보다는 결혼을 좀 일찍해 금년에 딸 아이가 국제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친구가 있는데 작년말에 입시가 끝났을때쯤 일이다.
국제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는 일반 추첨전형이 아니라 영어점수를 가지고 경쟁을 통해 당락을 가리며 실력들도 상당히 좋다. 친구 딸이 국제고에 합격을 했으니 축하해 주기 위해 당시에 소주 한잔 사주려고 만났는데 이녀석은 한숨부터 쉬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기에 그게 서글프다는 이야기였다.

친구가 푸념 섞인 한숨을 쉰 이유는 대강 이랬다.
당시 아이는 수원외고를 갈까 동탄에 있는 국제고를 갈까 고민중이었다고 한다. 아빠인 친구는 수원외고가 더 낫다고 생각해 수원외고를 가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었고 아이는 서로 장단점이 있기에 고민스럽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간에 서로 좀 생각해 보자는 시간을 갖던중 어느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두가지 황당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아빠와는 최종 의견조율도 없이 제 엄마와 둘이 동탄국제고로 결정을 해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그곳에 원서 제출을 해 버렸고, 두 번째는 자기주도학습계획서(직장인들 입사로 치자면 자기소개서)조차도 아빠에게는 보여주지도 않고 엄마와 상의해서 후딱 작성해서 제출해 버렸다는 것이다.

친구는 솔직히 배신감마저 느꼈다며 소주를 들이켰다.
특히 이 친구는 국문과를 나왔고, 회사에서도 기획 파트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문서작성법이나 기획분야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친구였으니 학습계획서조차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은채 엄마에게만 보여주고 상의 한 딸과,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 아내에게 너무나 서운하더라는 것이다.
친구는 이 일로 인해 너무 황당해서 아내와 딸에게 한동안 말조차 하기 싫더라고 토로했다. 

친구의 넋두리를 다 듣고 나도 좀 안타까웠지만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며 위로했다. 그건 이 친구만의 일이 아니라 나도 그렇고 대개의 요즘 아빠들이 다 그렇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른다는 어느 초등학생의 일기 이야기도 해 주면서 그게 요즘 아빠들의 애환이며 그조차도 세월의 변화이니 받아들이는게 옳다고도 했다.

 
권위? 존재감조차 없는 아버지들_1
권위? 존재감조차 없는 아버지들_1

어제는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대부도에 다녀왔다. 나도 좀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바깥에 나가고 싶어해 가족 모두 승용차를 타고 나가 그곳에서 바지락 칼국수 한그릇씩 먹고, 조개구이도 시켜 먹었다.
아이들은 맨날 엄마가 해 주는 밥만 먹다가 다른 사람의 양념으로 해주는 음식을 먹으니 가격의 비싸고 싸고를 떠나 마냥 맛있게 먹었다.

원래 외식이라는게 대단한게 아니다. 비싸야 외식인게 아닌 것이다. 아내가, 그리고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맛이나 질을 떠나 1년 365일 항상 레시피가 비슷비슷 하다 보니 밖에서 어쩌다 한번 음식 담그는 방식이 다른 걸 먹게 되면 그 맛이 새롭기 때문에 외식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5000원짜리 칼국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1인분에 4-5만원짜리 양식을 먹는것 이상으로 색다른 외식의 맛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나선 길에서 칼국수 한그릇에 만족하며 외식도 즐기고 조개구이도 먹고 갈매기 구경에 바닷바람을 쏘이기까지 즐거운 한때였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가 문제였다.
회사에서 날라온 급한 전갈. 월요일까지 만들어 내야 하는 문서 하나가 내게 떨어졌다. 졸지에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인 오늘 한나절 내내 해야만 하는 분량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을 떨궈 놓고 나는 컴퓨터부터 켜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과 아내는 TV를 켜고 휴식을 즐겼다. 저녁에는 고구마를 굽고 토마토주스도 갈아 마시며 여유로운 주말을 즐겼지만 아빠인 나는 일에 파묻히고 말았다. 모든 아빠들의 대략적인 비슷한 패턴. 그게 아버지들의 애환이자 생활의 한 단면이다.
먹고 살기 위해, 처자식 건사하기 위해, 잘리지 않고 회사생활 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긴장하며 고민해야 하는게 아빠들이다.

그런데 아빠들의 권위도 사라지고 아빠와는 거리감도 더 생기다니. 과거 기침 한번만 하면 온 가족이 초긴장 모드로 돌아섰던 우리네 아버지의 권위.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거대한 성벽이지만 그 성벽이 결국에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변하면 변할수록 옹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가 차츰 세상의 중심으로 나가는 동안 아버지라는 존재는 변방으로 밀려나고 비로소 아버지의 쳐진 뒷모습과 야윈 어깨를 이해할 때쯤이면 아버지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래도록 방황하고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눈치채게 된다.
그리고 나서 보니 이제 나의 아이들에 의해 내가 변방으로 밀려나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이제와서 서운하다고 해 봤자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뿐이다. 아빠들이, 당장 나부터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도 돈도 좋지만,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아빠와 잘 노는 아이들이 창의성도 리더십도 사회성도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한국 아빠들은 가족들과 함께 여가를 보내는데 서투르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숨 가쁘게 지나오면서 놀이나 여가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탓에 제대로 놀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도 여기저기서 주워 듣고 책도 보고 배워 보니 조금만 지혜를 짜내면 경제적인 부담 없이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서점 가기, 바둑 장기 체스 등을 두면서 취미 생활 함께하기, 그림이나 만화 함께 그리기, 자전거나 달리기 등 운동 함께 하기, 동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정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하기 등이다.

아빠가 하루 30분 혹은 한두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아이의 창의력과 호기심을 키우는데 결정적이라는 점, 그래야만 아이들이 일기에 아빠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내용을 쓰지 않을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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