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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입춘과 쑥 털털이의 추억
2013-02-04 15:43:49최종 업데이트 : 2013-02-04 15:43:49 작성자 : 시민기자   정순예
일요일 밤이었던 어제, TV로 영화를 보다가 e메일 보낼 것이 있어서 컴퓨터를 켠게 새벽 1시쯤이었다. 결국 시간상으로는 오늘 새벽이 된 것이다.
밖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 왼쪽에 커다랗게 그림처럼 예쁜 모양으로 씌여져 있는 단어 '입춘(立春)'이 보였기 때문이다.

반가운 입춘과 쑥 털털이의 추억_1
반가운 입춘과 쑥 털털이의 추억_1

한문으로 쓴 글씨 주변에 노란색 개나리 꽃으로 알록달록하게 모양을 낸 글씨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마음이 설레던지.
밖에선 눈발이 날리고는 있었지만 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마는가 보다 싶어 새삼 자연의 이치와 흐름에 감탄했다.

우리에게 입춘이라는 절기는 겨우내 춥고 덜덜 떨며 움츠리고 살던 몸과 마음을 한번에 풀어주는 느낌 같은게 온몸에 전달되어 다른 계절과 달리 유난히 반갑다. 여름은 덥고, 가을은 살짝 우울하고, 겨울은 춥다는 느낌이 앞서는데 반해 봄은 역시 '반갑다'.

설은 이번주 토요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어 돌아오는 10일 일요일이다. 보통 설 쇠고 난 후 절기상 입춘이 지나는데 이번에는 설이 좀 늦었다. 
밖에서야 눈발이 날리는 한겨울이지만 입춘이라는 단어를 본 이상 봄은 벌써 마음에 들어와 가득 차 있다.

어릴적 고향에서는 고무신 신고 봄비를 모두가 기다렸기에 봄은 무척이나 반가워 했다.
긴 꽁지 바싹세운 까치도 봄을 노래하고 호호 불었던 입김도 제법 엷어졌는데 문 가까이에
웅웅거리며 어설프게 투정부리는 바람소리가 낯설기만 했지만 마음속에 찾아 든 봄은 봄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뭉게 구름은  따스한 햇살을  등짐에 내려 놓고 바람결 따라 잡힐 듯 휘청거리는 빛바랜 측백나무에 걸터 앉아 작은 미소로 답례하는 새싹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속마음을 알아 차렸다는 듯 뭉게뭉게 맑은 하늘을 떠난다.
마른나무의 고통이 멎고 바람결 따라 새싹들이 밖의 풍경에 눈치를 본다. '내 싹을 쑥 내밀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다. 
그중에 성질 급한 새싹들이 먼저 고개를 들이밀고 세상 구경을 나오면 그 후로는 약속처럼 너도나도 쑥쑥 고개를 내밀어 하룻밤만 자고 나면 온 들판이 푸릇푸릇 해졌다. 

이런 모습은 사실 3월말은 되어야 볼수 있는 풍경이지만 절기가 이렇게 달력에 이른 시간에 맞춰져 있는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겨울의 묵은 때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싶은 우리네 마음을 헤아려서인가 보다.
절기상 입춘이 지나면 어김없이 하얀 목련꽃과 노란 개나리, 분홍색 진달래꽃에 이어 때맞춰 피는 벚꽃까지 우리에게 희망의 봄소식을 가지고 찾아온다. 

꽃소식 말고도 때를 눈치채는 것은 미각으로 전해지는 봄나물이다. 이 역시 약속처럼 우리의 입안에 맛깔난 군침을 돌게 한다. 
바구니 옆에 끼고 작은 호미 손에 들고 앉아 냉이며 쑥을 캐던 마을 아낙들의 모습.  그때 그시절 고향의 맛은 지금 마트에서 파는 그 어떤 인스턴트 음식과 감히 비교를 할수 있을까? 

지금이야 보릿고개가 뭔지도 모르는 세월인지라 그때의 풍경이 더더욱 낭만으로 남아있다. 겨우내 양식도 떨어지고 꽁보리밥 만들어 박박 긁어 먹던 농촌에서의 궁박한 시절이긴 했으나 코끝에 전해진 알싸한 봄나물의 향기는 어지럽도록 황홀한 봄소식이었을지도 모를 기억이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냉이며 달래며 없는게 없지만 이건 모두 다 비닐 하우스 안에서 연탄불 쬐며 자란 것들이다.

하지만 내 어릴적엔 시골에서 먹은 냉이 쑥 달래는 제 때에 제 양준을 먹고 자란 하늘의 선물 그 자체였다. 인공의 어떤 것도 첨가 되지 않은 채, 그해 그 절가에 맞게 자라 우리를 찾아 와 준 고마운 진객들이었다. 
그때 만난 봄나물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으니 바로 쑥에 대한 추억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봄만 되면 어디서 캐왔는지 한 소쿠리 가득 쑥을 담아 와서는 쑥 털털이를 쪄주시고는 했다. 

쑥은 주로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자라기를 좋아했고 달래는 주로 그늘진 나무 밑이나 돌 무더기 속에서 자랐다.  냉이는 주로 양지바르고 고운 흙에서 자라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한 두곳 많이 자라는 쑥 무더기를 발견하면 무슨 보물 발견한것 마냥 가슴은 얼마나 뿌듯했던지....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사는 시골마을에 올망졸망 많기도 많은 아이들이, 갓 찌어낸 쑥 털털이 바구니에 한꺼번에 달려들 정도로 가난하기는 했다. 

그래도 볕도 들지 않은 구석 자리 방에 딸린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쑥 털털이를 찌고 있으면 남부럽지 않았다. 마당을 온통 물들인 그 따뜻하고 풍요로운 향이 가장 좁은 내 집 부엌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린마음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래서 지금도 쑥떡을 보면 "아, 봄이 오는구나" 하면서 마음으로 맞이하는 봄소식을 느껴본다.  기분이 푸근하면서 동시에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린다. 

옹심이 넣어 함께 끓인 쑥국은 또 냉이만큼이나 봄철 떨어진 입맛을 돋워주는데 제격이었다.  오늘은 저녁엔 재래시장에 나가 쑥을 한웅큼 사 들고 가서 그때의 봄소식을 들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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