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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지 사용하신 정조대왕님
고물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늘날에 다시 느끼는 절약정신
2013-02-06 13:11:35최종 업데이트 : 2013-02-06 13:11:35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숙자
"고물 삽니다. 고물! 철근, 빈병, 비료포대 삽니다. 고물 사요. 솥단지, 쭈그러진 양은냄비 다 삽니다. 고물 사요" 
오래 전, 시골마을 동네 안 골목길을 누비듯 허름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팔라고 외쳐대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여름철엔 '아이스케키'를 바꾸어 주었고 겨울철엔 엿을 바꿔 주었다.
그러던게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다들 먹고 살만 해졌는지 고물장수도 다 사라진듯 했다. 그때 고물과 맞바꿔 주었던 아이스크림이나 엿 같은 군것질거리는 마트에 나가면 잔돈푼에도 듬뿍듬뿍 살수 있어서일까.

그렇게 사라진줄 알았던 고물장수를 본게 얼마전이었다.
두달전쯤이었던 작년 말에 시골의 시댁에 내려가던 길에 마을 안에 들어 온 고물장수를 본 것이다. 다만 달라진게 있다면 수십년전 끌고 다니던 리어카가 아니라 이젠 낡긴 했지만 자그마한 트럭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병이나 비료포대 같은건 취급을 안하고 쇠뭉치, 철근, 구리 전깃줄이 주요 품목이라 했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에 고물은 이렇게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모으기 시작해 그것을 더 크게 모으고 다시 재활용하여 산업자재로 또 쓰고 했던 우리의 절약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절약의 노력은 70년대에 불어닥친 농촌의 새마을 운동과 함께 아주 활발하게 추진되지 않았나 싶은데 과연 우리 선조들중에는 이런 절약과 물건 아껴 쓰는데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수원의 자랑인 정조대왕께서 그 정답을 우리 후손들에게 큰 가르침으로 내려 주셨다.
엊그제 모 일간지에 난 기사를 보니 조선시대 정조대왕께서 남인 영수인 채제공과 노론 거두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종이는 재생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장서각에 소장된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2첩을 번역한 결과 알아낸 것이라 한다.

거기에 보면 정조가 세손 시절 외할아버지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와 왕위에 오른 뒤 홍봉한의 아들인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를 보낸 내용이 있는데, 편지를 보면 스무 살 정조는 얼굴에 난 부스럼 때문에 고민하고, 왕이 된 뒤에는 외가 친척들에게 떡국 만들 쌀 한 말을 선물하는 등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에는 "깨끗하고 두터운 편지지는 사용하기가 너무 사치스러워, 매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휴지를 다시 뜬 것으로 편지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300폭(幅)을 보냅니다."라고 씌여져 있다고 한다. 
정조어찰첩 해제를 밑은 분은 단국대 김문식 교수님이라는 분인데 그 분의 연구 결과로는  정조대왕은 오랫동안 재생 편지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정조대왕님은 어느 한군데 본받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요즘 자라는 아이들에게 과거 시민기자가 자라던 시절의 고물장수 이갸기며, 더 나아가 정조대왕이 사시던 조선시대에조차 재생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물자 절약을 하라고 이른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른의 말씀이니 대답이야 "네"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콧방귀도 안 낄 것이다.

그런 고물장수를 어릴적에 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 직접 눈으로 보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대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데도 저렇게 고물을 수집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걸 보면, 요즘 세상 살기가 소문을 들은 대로 넉넉지 못하고 매우 어렵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고물도 고물 나름이지 쓰다 버린 것이라고 다 고물이 아니다. 사실 요즘 농촌마을 형편을 보면 힘없고 경제력 없는 노인들만 살고 있는 집들이 허다한데 노인들이 무슨 소비활동이라도 해야 고물이 나올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기껏해야 종이 박스나 헌 신문지 쪼가리 정도이니 돈이 될 만한 알루미늄 냄비 깨진 것이나 헌 양은솥 같은 값나가는 고물은 과거에 걷어갈 만큼 다 걷어가고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헌 옷가지나 운반하기 어렵고 무겁기만 한 빈 소주병들이나 있을 뿐인데 하루 종일 이 동네 저 동네 누비고 다니는 저분들은 하루에 얼마 벌이나 하고 사실까? 

고물을 트럭에 싣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고물장수고, 도시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리어카에 빈 박스나 종이류 같은걸 모아서 파신다.
그걸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용돈에 얼마나 충당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용돈 벌이도 하시고, 우리의 자원 재활용도 되니 여러 면에서 좋다.

 
재생지 사용하신 정조대왕님_1
재생지 사용하신 정조대왕님_1

수원에 살기 전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살던 중에 우리 집 뒷담장 밖에는 엄청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해마다 가을이면 바람에 떨어지는 은행을 줍기 위해서 날이 새기가 무섭게 새벽잠 없는 할머니들이 몇 분씩이나 오셔서 주워 가셨다. 
그까짓 은행이 뭐 그리 대수라고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우신 노인들이 식전부터 차가운 이슬에 손을 적셔가며 그걸 줍는게 너무 안쓰럽게 보였는지 주인집에서는 그래도 마음을 써서 그동안 버려두었던 헌 비닐 장판을 가져다가 은행나무 밑에 깔아 놓았다. 

그 후부터는 떨어지는 은행을 줍는 일이 훨씬 좋게 되었다고 무척 고맙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채 1주일도 안돼 어느날 나가 보니 거기 깔아 놓았던 비닐 장판을 누가 다 걷어가 버렸다. 필시 고물장수가 그런 것이다.
그냥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자며 웃어 넘기겼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그걸 재활용 할수 있다니 다행이라고도 생각 되었다.

예전에는 아까운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버리기만 하던 작은 쇳조각이나 비닐 등 무엇 하나 나부랭이들도 이제는 모두 소중한 자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도시에서도 요즘 들어서 고물 수집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갑자기 많이 늘어난 것을 좋은 현상이라고 해야만 할까? 말아야 할까? 

어찌됐든지 조선시대때 이미 정조대왕께서 재생지를 사용하신 절약정신을 본받아 오늘 우리도 모두 다 고물장수의 마음으로 하나라도 더 아끼고 주워 모으고 절약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한다. 
특히 주변에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며 빈 박스와 폐지를 모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면 박스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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