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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선수를 만들지 마세요
2013-02-06 16:57:32최종 업데이트 : 2013-02-06 16:57:32 작성자 : 시민기자   김대환

 

글짓기 선수를 만들지 마세요_1
글짓기 선수를 만들지 마세요_1

"아빠, 배드민턴 치러 가요!" 
날씨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지난 토요일, 몸이 근질근질 했는지 아들녀석이 무릎으로 바싹 다가와 유난히 살갑게 묻는다.
"바람 불잖아. 바람 불면 배드민턴 공이 날려서 어려워." 
"그래도 배드민턴 치고 싶어요" 

언젠가 우연히 이용대 선수의 호쾌하면서 다이나믹한 배드민턴 치는 모습을 본 아이가 그날 당장 라켓을 사 달라고 조를 때만 해도 '저녀석이 그러다 말거야'라며 별거 아닌걸로 치부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름이어서 덥기는 했지만 바람도 많지 않았고 저녁나절에 배드민턴 치기에 적절한 날씨여서 한동안 아이의 배드민턴 스파링 파트너가 돼 주었다.

슬슬 실력이 늘기 시작한 아이가 이제는 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시시때때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드민턴을 치고 다니며 즐거워 했다.
방구석에 앉아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스마트폰 붙잡고 왼종일 카톡만 주물럭거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싶어 내심 기특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아빠의 휴식시간마저 넘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내마저 "아이가 놀아 달라는데 뭐하고 있어요? 같이 나가서 좀 해주지 않구선"이라며 지원사격을 해대니 나도 별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고집은 고집이고, 바람이 불면 배드민턴은 정말 불가능하기에 아이를 달래야만 했다.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가두어 버리는 바람. 하고 싶은 배드민턴을 못하게 된 것이 바람이기에 아이는 슬슬 바람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짜증을 낸다. 

그 짜증은 그대로 식구들에게 전이되었다. 
아빠하고 배드민턴 치기는 글러 먹어었다고 판단한 아이는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내고 트집을 잡고 짜증을 부렸다. 
아이를 어떻게 달랠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학창시절에 배우고 실천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럴 때는 글쓰기를 시켜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게 좋다는게 결론이었다. 글쓰기를 하려면 어떤걸 쓸지 글감을 찾아야 하고, 글감을 찾노라면 일단 마음을 안정시킨 후 차근차근 생각을 해야 하는 단계부터 벌써 지금 당장 뿔이 난 마음을 진정시킬수 있다.
그리고 글감을 찾은 뒤 글쓰기에 접어들고 글을 완성시키고 난 후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며 스스로 감상하는 단계까지 가면 잠시전의 일들과는 전혀 별개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이더러 우선 하얀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 설명 없이 아이를 창가로 데리고 갔다. 바람 부는 바깥의 주택가 도시 모습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했다. 
"저기 가로수 나무 좀 봐라, 가지가 어떻게 하고 있니? 잎은? 다 떨어져서 없지? 가지는 가늘게 흔들리고 있잖아. 바람이 불기 때문이지. 하늘도 봐봐. 구름이 가득하네.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모르지만 맑은 날은 아니라서 날씨가 약간 을씨년스럽지? "

눈으로 볼 수 있는 활동이 끝나면 글에서 보았던, 혹은 영화나 TV나 라디오 같은데서 들어보았던 소리를 기억하게 한다.
"봐봐, 구름이 끼어서 비가 온다고 생각해봐.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아니요, 쉬익 톡, 쉬익 툭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 여름 장마철이라면 주룩주룩 내리겠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게 많이는 안오는구나. 맞지?"
약간의 내 생각과 설명을 섞어 충분히 듣고 보고 느끼도록 했다.

어느 정도 현실과 상상에 몰입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에 앉힌후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무엇을 보았는지, 상상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아이의 종이에 우리 두 사람의 대화중 중심이 되는 말들을 적게 했다.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 구름, 그리고 상상속에서 만난 비까지.
이쯤 되면 아이의 가슴속에는 뭔가 쓸거리가 생길것 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시선을 다른 하얀 종이로 향하게 한다. 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느낌, 소리, 모습들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 아이의 경험 속에 살아있는 것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도록 했다. 

동시든, 편지글이든, 대화글이든, 생활문이든, 아빠와 대화한 내용이든 뭐든지간에 아이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줄줄 써 내려가도록 했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아이와 살아있는 글쓰기를 했다. 배드민턴을 치지 못하게 만든 바람 덕분이었다.

원래 아이들더러 글쓰기를 시키면 그 나이와 능력에 맞는 글쓰기가 아니라 괜한 기교나 어른스러운 구성을 해보려는 과욕을 부린다. 그건 아이들다운 순수한 글쓰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글쓰기를 시키고 있는지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으면 한다.  글짓기 대회에 나갈 선수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글짓기 꾼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그런게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시원하게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글쓰기를 하도록 놔뒀으면 좋겠다. 
덕분에 나도 그날은 배드민턴 때문에 짜증부리던 아이의 심기(?)를 여유롭게 가라앉힐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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