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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을 바르게 쓴 고마운 아이
2013-02-07 11:44:17최종 업데이트 : 2013-02-07 11:44: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순자

우리집 둘째. 초등학교 4학년인 이 아들녀석이 요즘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겨울방학때  풀어줘서 그런게 아닌가 싶을만큼. 공부도 적당히는 페이스를 유지 했으면 좋겠는데, 컴퓨터 게임에 친구들하고 어울려 돌아다니며 노는 일에 열중이다.
그러면서 친구들 줄줄이 몰고 다니며 주말에 아이들 데려와 난리 북새통이다. 제 녀석이 의리 하나는 짱이라니 원.

잘 놀아 주고 건강하니 고맙기는 하다. 하지만 나도 아이들이 공부는 좀 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주부인지라 그래도 웬만큼은 좀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 또한 숨길수는 없다. 아이가 언제쯤에 그런 부분에 필이 팍 꽂힐까 기다리는 중이다.
그동안에는 용돈을 매주 주다가 며칠 전에는 아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돈을 사용하게 해 보려고 3주일치 용돈을 한꺼번에 주었다. 

용돈을 바르게 쓴 고마운 아이_1
용돈을 바르게 쓴 고마운 아이_1

사건은 그 다음날 학교 방과 후에 일어났다.
 퇴근해서 집에 와 보니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아이의 그림자는 커녕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그렇다고 늦는다는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은근히 약이 올라 '들어오기만 해 봐라'며 무딘 칼을 갈고 기다리는데, 큰 딸 아이가 먼저 쫄래쫄래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엄마 분위기기 착 가라앉아 있음을 눈치 챈 딸 아이는 알아서 손을 씻고 책을 펴들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귀가시간을 한참 넘기고 들어온 둘째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콧노래까지 불어대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런 얼굴이었다.

순간 열이 확 뻗친 내가 "뭐야 너?"라며 소리를 꽥 지르자 녀석이 움찔 하며 멈춰섰다. 나는 마치 전쟁터에서 소대장이 뭔가 지시하듯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키며 "너?"라고 소리쳤다. 
"너, 또 PC방 가서 그 돈을 다 썼지? 으이구, 내가 정말. 이젠 다시는 용돈 한꺼번에 안줄거야. 알았지!"
아이는 지은 죄를 알았는지 아무소리 못한채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었다. 전에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대오각성이라도 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그런 면피성 발언조차 없이 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아이를 방안에 들어가라 해 놓고선 누나인 딸 아이에게 둘째 녀석의 용돈의 쓰임새가 정말 궁금해서 혹시 아는거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가 그 시간까지 집에 안들어 오고 밖에서 싸돌아다닌건 필시 PC방에 가서 여태 게임이나 하느라 그랬을거라는 대답이 나올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딸 아이는 동생이 문방구에서 돈을 다 쓴거같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문방구? 웬 문방구지?

당연히 PC방에 가서 제 친구녀석들 PC방 비용까지 다 대주며 놀았을걸로 예상하며 질문한 내게 큰 애의 대답은 약간 의외였다. 
궁금한 마음에 아들 방문을 열고 들어가 혹시나 하여 이젠 화를 좀 누그러뜨리고 약간 목소리를 낮춰 "너 용돈 전부 어디 다 썼어? 내놔 봐"라고 추궁을 했다.
그러자 아이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떨구었다. 잠시후 상황을 지켜보던 큰애가 들어오더니 "너, 그거 너네반 아이 찰흙하고 색종이 사줬다며? 왜 엄마한테 말 안해 바보야"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뭐? 다른 아이 차~알 흙과 색종이?"
그때까지 입 다물고 말 안하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자기네 반 아이중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는데 그 엄마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며 걔가 돈이 없는것 같아 제녀석 용돈으로 미술시간 실습 준비물을 몽땅 사주었다는 것이다. 문방구에 들러 그걸 사주고 오느라 늦었고, 엄마 허락없이 용돈 죄다 썼기 때문에 꾸중을 들을거 같아서 말을 못했다며. 전화기는 밧데리가 다 돼서 꺼져 있었고.

아, 그랬구나. 아무것도 모른채 괜히 소리부터 질렀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미안해졌고, 또 어린 녀석이 제 또래 아이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어 마음을 쓴 대견함에 내 머리가 다 숙여졌다. 
"그래. 잘했다. 착하구다. 그런걸 왜 미리 엄마한테 말 안했니? 참 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그제서야 잔뜩 굳어있던 얼굴에 긴장이 풀렸는지 피식 웃었다.

마음을 다독여줄 요량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돈까스를 만들어 저녁을 준비했다. 아직도 철부지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엄마에게 당한 한(恨)을 조금 풀지 않을까 생각하며 밥상을 차려주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매일 말썽만 피우는 녀석인줄 알았는데 공부만 잘하라고 닥달하는 제 에미보다 더 큰 마음의 도량을 가지고 있었다니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래, 항상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자란다면 옆길로 새는 일만큼은 없겠구나 싶어 다시한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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