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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과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
2013-02-12 00:45:47최종 업데이트 : 2013-02-12 00:45:47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본관과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_1
본관과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_1

어제는 우리민족 최대의 고유 명절 설이었고 모든 국민들이 그동안의 시름과 걱정 모두 내려놓고 3일동안 연휴를 즐기며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에 내려가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라는 시조가 떠오를 정도로 적막하여 무척 애잔하기는 했지만, 그 산천이라도 의구하여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삼을수 있기에 다행이었다.

이번 설에는 이웃에 사는 사촌 형님댁에 금년 봄에 결혼할 사윗감이 결혼 전에 미리 처가쪽 어른들을 한번 뵙고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며 명절을 맞이하여 잠깐 들렀다.
나 역시 결혼 당사자의 사촌오빠 자격으로 형님 댁에 들러 청문회(?) 하는 분위기로 사윗감을 맞아 인사도 하며 덕담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대개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어떤 말부터 해야할지 몰라 서먹하게 되니 서로의 대화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집이 어디냐, 나이가 어찌 되냐는 식의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는게 일반적인 상례이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젠 직업이 뭐냐, 구체적으로 하는 업무는 뭐냐 등으로 진도가 나가지만 결혼하는 당사자의 아버지도 아닌 내가 그런것까지 물을 처지는 아니어서 이 젊은 친구에게 나는 간단히 물었다.
"본관이 어디이고, 고향은 어디인가"
이 두가지였다.

고씨 성을 가진 이 친구는 내 질문을 받자마자 "본관은 제주이고 저는 제주고씨 9대분파인 전서공파 57대손입니다"라며 마치 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또렷하게 답했다.
이어 현재 고향은 전남 장흥이고 장흥에는 제주고씨 집성촌을 이룬 일가가 살고 계신다 했다.
더 물을게 없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고 대답할 줄 아는 젊은이라면 행실이 바르고 깊이가 있을걸로 생각되어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만족스러웠다.

본관과 고향 이야기 하나만으로 모든걸 평가한다면 요즘 세상에 그렇게 고리타분한 생각이어디 있느냐라고 할수 있겠으나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요즘 30대 후반까지의 나이 또래 젊은이중 본관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20%나 될까 싶다. 
20대까지는 아마도 10% 내외일걸로 본다. 그 10% 내외인 젊은이에 속한다는 것은 가정에서 생각 있고 엄하신 부모가 바르게 가정교육을 시켰을 것이고, 그렇게 배운 젊은이라면 다른건 몰라도 행실 하나는 바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전통적으로 고향이 두 개였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성씨의 고향이다.
성씨의 고향을 본관이라 하는데 제삿날 신위를 밝히는 지방을 쓸 때는 반드시 본관을 적어놓았다. 이처럼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령이 되었어도 본관이 존속하는게 우리의 전통 예법이다.

옛날 선비들은 여행길이나 벼슬살이 가는 도중에 자신의 본관을 지나갈 때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그만큼 성씨의 원적에 대한 예를 다 한 것이고, 초면에 인사를 나눌 때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대는 것이 아니라 본관을 대어 제주인이니 전주인이니 혹은 경주인이니 했다고 한다.

일전에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고등학교 친구가 일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만나기 어려운 친구를 봤으니 반가운 마음에 소주 한잔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뜻밖의 일화를 하나 건넸다. 
친구는 이민을 갔기 때문에 주권자이지만 미국에서 살다 보니 현지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이 아이는 아빠와 달리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그렇게 낳은 아이가 상당히 자란 어느날, TV를 보다가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TV에서 나오자 제 아빠더러 "아빠의 나라가 나와요(영어로)"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 친구는 "내 나라는 아직도 한국"이라고 생각하여 비록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는 쓰고 있지만 자신의 아들 역시 한국의 아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한국 관련 방송을 보면서 "아빠의 나라"라며 자연스럽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사실 미국인인 그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적인 것, 아이의 본관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놀란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어릴적부터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고 배웠던 본관이란 말이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후 친구는 아차 싶은 마음에 뒤늦게라도 이미 완전한 미국인이 된 아들에게 "너의 또 하나의 고향은 '한국'이다"라고 설명하며 그것의 의미를 이해시키는데 상당히 오랫동안 시간을 투자 했고, 지금은 그 한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본관이든 고향이든 이는 우리에게는 소중한 뿌리이고, 우리 정체성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 지고 뿌리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진다 한들 본관과 고향에 대해 올바르게 말할줄 아는 20대의 젊은이를 보니 새삼 명절날 고향 간 기분이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인걸이야 죄다 도시로 빠져나갔다 해도 본관이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히 변치 않은채 우리의 고향에 대해서는 늘 애틋하고 정겨운 마음을 남겨두고 싶다. 우리 가슴 한쪽에는 항상 고향에 대한 그 깊은 정을 간직할 공간을 영원히 놔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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