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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주부의 애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
2013-02-12 12:33:51최종 업데이트 : 2013-02-12 12:33:5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엄마, 언제 와?"
"엄마, 시골 안갈거야? 빨리 와"
운 없게도 설 직전에 출장이 잡혀 있어 당초에 계획했던 금요일 이른 오후 출발이 늦어지자 기다리다 못한 아이들이 쉴새 없이 날린 문자의 내용이다.

설날 고향에 가는 기분에 누구나 설레게 마련이어서 아이들 역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는걸 학수고대 하고 있었는데 출장 덕분에 운 없게 지방에 다녀 오느라 일이 늦어진 것이다.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은 좀 늦어졌지만 출장 핑계로 모처럼만에 도시를 떠나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 가는 기분은 은근히 화려한 외출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회사 업무라는 사유도 그렇고 요 최근에 좀 멀리 나설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가정을 '버리고(?)' 12시간 가까이를 바깥에서 보냈으니 이정도면 가정 있는 주부로써 화려한 외출 아닐까. 
그동안 너무 추웠다. 꽁꽁 언 새벽, 얼음과 눈이 범벅 된 길, 아침에 집에서 나서면 볼살을 할퀴는 매서운 북풍... 내복을 끼어 입었지만 매일 그렇게 꽁꽁 언 몸과 마음을 추슬러 직장으로 나서는 길에 온몸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서류 한 장 달랑 들고 차를 몰고 나섰으니 그것 참, 홀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출장이라고 해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회사와 상대방 회사간의 계약 사항을 확인하고 그쪽의 요구 조건을 문서로 받아 오는 정도였다. 인터넷도 있기는 했지만 서류만으로 직접 확인할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내려간 것이었다.

출장지 회사에서 업무는 원만히 처리 되었고, 설 앞이다 보니 서로 기분들도 좋게 웃으며 수다를 떤 듯한 유쾌한 미팅이었다. 만약 회사 업무상 출장이 아니었다면 그쪽 여 사장님과 함께 나이 먹은 중년 여성으로써 서로 터 놓고 별별 이야기를 다 하며 긴장감 없이 호호 웃으며 박수를 치면서 보내도 좋았을 시간이었다. 
일정 중간에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보니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어 놓은 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채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 열어보니 벌써 3통의 문자와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설인데 엄마는 언제 오냐는 아이들의 기다림. 처음 날린 문자에 답이 없었으니 연달아 두통을 더 본고 그래도 연락이 없자 전화까지 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통화를 시도했더니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아빠는 곧 들어오신다 했는데 엄마가 기약이 없으니 일찍 가기는 틀렸다며 실망하는 목소리가 역력했다.
아침은 겨우 차려주고 나왔지만 점심은 토스트로 해결하라고 일러주었는데 제대로 먹기나 했는지 불멘 소리 안에는 허기마저 엿보였다.

 

직장인 주부의 애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_1
직장인 주부의 애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_1

"엄마 언제 와?"
"일찍 갈게."
말은 쉽게 했지만 회사 업무로 내려 간 출장길이 그렇게 쉽게 끝나는 일은 아니었는지라 시간을 정확히 약속하기는 어려웠다.
그곳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위해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식당에 들어갔건만 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이미 어두워졌다. 

그동안 수도 없이 울리는 내 핸드폰 벨소리에 누군가 그랬다. 
"가정에 충실하시군요" 
오늘날 이땅에서 살아가는 여성 직장인으로써 당연히 가정에 우선 충실해야 마땅하거늘, 실제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주부이지만 "충실한게 아니라 매어 사는 거 같아요"하며 서둘러 대답하면서 사실은 매어 산다고 할만큼 충실하지 못한게 늘 마음에 걸려 오던 참이었다. 

아이들 낳은 후 직장을 놓칠까봐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한채 출산 휴가 에누리 없이 끝나자마자 출근해서 지금까지 계속 회사에 다닌 탓에 아이들 모두 다 보모 아줌마부터 친정 엄마, 시어머니 등 여기저기 떠돌면서(?) 자라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잘 자라준게 늘 고마워 아이들을 볼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가자마자 엄마가 거실에서 "우리아이 돌아왔구나"하며 안아준다는데 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밤 7시가 넘어 역귀성 하는 차들을 비집고 차를 몰아 서둘러 집에 돌아와보니 밤 9시가 넘었다. 주방에는 남편이 만든 김치 볶음밥으로 세 남자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빈 그릇들이 놓여져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결국 그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시골로 출발했는데 차 안에서 그래도 아내의 건강 걱정을 해 주며 출장 갔다 오느라 피곤할텐데 잠 한숨 푹 자 두라는 남편과, 뒷좌석에서 이미 꿈나라 여행을 떠난 두 아이를 보면서 자그마한 행복감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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