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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었지만 고향에 못가신 분들
2013-02-13 00:54:24최종 업데이트 : 2013-02-13 00:54:24 작성자 : 시민기자   남민배

명절을 쇠러 간 고향에서 성묘를 마치고 돌아 오던 길에 납골묘가 있는 산자락 바로 아랫집에서 한복을 예쁘게 차려 입은 새댁이 어린 아이와 함께 마당에 나와 노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 색과 이미지는 우리들과 약간 다른, 다문화 가정 주부였다. 다문화 가정 주부이므로 이제는 한국민이지만 얼굴만으로는 외국인이기에 한복을 입은 모습을 외국인의 이미지와 대비시켜 바라보니 한복이 참 잘 어울려 보였다.

평소에 TV 프로그램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출연한 외국인 여성들의 맵시를 보면서 한복은 어느나라 누구에게 입혀도 참 잘 어울리는 옷이구나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고향에서 다문화 가정 외국인 주부가 입은 모습을 보니 더욱 새롭고 예쁘게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고향에 간 참에 인사 겸 오랜만의 회포도 풀고자 해서 함께 성묘를 나섰던 다른 형제와 조카들은 먼저 가시라 하고 그 댁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집은 고향 마을 선배 형님댁이기도 해서 술 한잔 얻어 마실 생각에서였다.

"안녕하세요. 형수님"
설날 아침, 전혀 낯 모르는 남자가 "형수님"이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자 다문화 가정 주부인 이분이 난감해 하신다.
이 댁 형님이 국제 결혼을 하신지 벌써 6-7년 가까이 된걸로 기억하는데 그동안의 세월이면 "형수님"이라는 말이 어떤건지는 알 것이기에 낯모르는 남자가 그렇게 불러주자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아무리 다문화 가정 주부라 해도 이젠 한국인이니 응당 우리의 풍습에 맞춰 형수님 대접을 해드리는게 옳은 것이다.

"예?... 예. 네네. 어서 오세요"
약간 얼떨결에 더듬거리는 한국말이었지만 손님인 나를 반겼고, 인기척에 이내 방문이 열리면서 형님과 그 댁 가족들이 보였다. 반갑게 정초 인사를 드리며 안에 들어가 어르신들께 세배부터 드린 후 형님과는 따로 사랑방에 마주 앉았다. 

마을에서 한우를 키우며 오랫동안 고향을 지키고 있어서 항상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가는 선배 형님이었다.
형수님은 베트남에서 오셨고 현재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 둘이라 했다.
형님과는 한우 가격 이야기,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봉고차에 태워 1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오가야 하는 어려움, 다른 농삿일과 관련한 어려움, 그리고 나의 도시생활에 대해 그동안 쌓아 두었던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었다.

명절이었지만 고향에 못가신 분들_1
명절이었지만 고향에 못가신 분들_1

그리고 말씀 끝에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어려움과 남편으로써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우리야 명절이라며 즐겁고 설레는 설을 쇠고 있지만 형수님은 베트남인 고향에 자주 갈수가 없으니 고향 생각이 얼마나 절실하겠냐는 말이었다. 
결혼후 6년이 지났지만 처갓집에는 한번 갔다 왔다며 형수는 지금도 가끔씩 고향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다른 때는 그래도 잊고 사는데 특히 이번 설 같은 때, 추석이나 부모님 생신 등 온 가족이 모일때면 유난히 더 고향 생각에 젖곤 한다는 것이다. 그 애닯은 마음이야 이루 다 말할수 있을까 싶었다. 

오래전에 배호라는 가수가 부른 '내 고향 남촌'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노래 가사 속에는 고향에 못 가는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남촌이 그리워서 눈을 감으면/ 남풍 따라 스며드는 찔레꽃 냄새/ 황토길 10리 고개, 재 넘어 오면/ 얼룩무늬 황소가 울던 내 고향/ 언제 다시 가보나, 내 고향 남촌. 남촌에 부는 바람, 꽃이 피는데/ 남풍 따라 밀려오는 고향 냄새/ 꽃구름 흘러가는 정든 포구/ 떠날 때는 몰랐네, 그리울 줄은/ 어이해서 못 가나, 내 고향 남촌.' 
가사중의 찔레꽃이라든가 황토길 같은 내용은 고향이 베트남인 이 분의 마을 풍경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고향을 그리워 하고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해마다 설과 추석때만 되면 차가 막혀 두세시간 갈 거리조차 8시간씩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를 쓰고 찾아 가는 곳이 고향이다. 
그만큼 태어난 곳, 부모님이 계신 곳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크기 때문인데 그보다 훨씬 먼 이역만리 타국에서 시집 온 분들이야 그 마음이 오죽할까.

수구초심, 여우도 죽을 때엔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고 했다. 타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은 평생을 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게 마련이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 들면 거기가 고향이지. 고향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하면 이런 체념의 반어법이 나왔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감성 중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선물 보따리 들고 오가는 행렬을 바라보며 남들 안보는 곳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 먼 이국에서 시집 온 후 오직 모국어 하나만을 잊지 않은 채 희미해져 가는 고향 추억을 더듬고 있는 해외 다문화가정 주부들. 

이분들에게 우리는 항상 마음이나마 따뜻하게 전하자. 또한 주변에서 이분들에게 고향 보내주는 이벤트나 행사가 있으면 꼭 조금이라도 뜻을 더해서 도와 드리자.
내가 떠나 온 고향을 지키며 열심히 사시는 마을의 선배 형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으로 술 한잔 더 권해 드리고 나왔다. 
설날 아침부터 낀 구름 사이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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