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음조차 단문으로 날릴까 걱정
내용에 맞는 최소한의 '예'는 갖추는 문자와 e메일을 기대함
2013-02-13 02:12:12최종 업데이트 : 2013-02-13 02:12:12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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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문자 왔습니다' 아버지 부음조차 단문으로 날릴까 걱정_1 그런 때와 비교해 볼때 우린 지금 편리하고 간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인터넷 뱅킹을 하느라 열어 본 컴퓨터에는 지난 1주일간 보지 않은 e메일이 수북히 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설을 맞아 안부를 묻는 인사도 많았다. 무엇이든 폰으로도 날리는 메시지와 인터넷으로 보내는 e메일로 다 되는 시대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편지의 형식이 순식간에 이메일로 바뀐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국민들의 대명사인 '빨리빨리'문화의 결과물 아닌가 생각된다. 그 덕분에 모든 이야기는 바로 지금 이루어지고 참으로 편리해졌으며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궁금한 것을 해소시키고 감정전달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우체국에 가는 번거로움이 해소된 것은 이메일이 주는 가장 획기적인 서비스 중 으뜸이다. 친구 사이는 물론 며느리들의 시부모님 안부도 이메일로 보내는 세상이고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에게도 이메일로 안부를 전한다. 그러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마다 느끼는 허전함을 어찌 할 수가 없다. 편지의 형식이 무시되고, 하고 싶은 말만 간단히 하다 보니 참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거기다가 채팅 언어로 서너 줄 채우고 만 메일을 받으면 안 받는 것만 못하다. 무슨 말인지 해독이 불가능하고 무성의한 메일을 받고 나면 가슴속에 남아 있던 그 정겨운 모습마저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난다. 물론 이메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정말 편리한 체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켜야 할 예의가 사라진 체계는 너무나 삭막하다. 앞서 거론한 문자 해고 통보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21세기에 여전히 일일이 편지를 써서 통신을 하는건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이메일이나 문자라도 편지를 대신하는 매체이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슴 속에 넣어 둔 사연을 한올 한올 글자로 엮는 정겨운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종이로 된 편지지든 컴퓨터상의 편지지이든 매체만 다를 뿐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편리하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대충 써서 메일을 띄우는 그런게 아니니까. 부음 같은 경우도 "OOO부친상, 장지 어디, 발인 언제, 빈소 어디, 전화번호 OOOO"이렇게 삭막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춰 "삼가 명복을 빕니다. OOO의 부친께서 영면하셨습니다" 정도의 인사는 올리고 시작해야 하는거 아닐까. 내 생각이 고루하다면 어쩔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고집스레 따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이들이 제 아버지가 작고한 뒤에 다른 가족들에게 '아버지 부음'이라는 단문으로 메시지 날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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