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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둣방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네
2013-02-13 08:10:57최종 업데이트 : 2013-02-13 08:10:57 작성자 : 시민기자   오새리
걸음걸이가 조금은 팔자걸음 스타일이라 구두 굽이 쉽게 닳아 버린다. 여성이, 주부가 팔자걸음으로 걷는다는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고 약간 그렇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걷는게 조금 터프하다 보니 구두가 받는 스트레스도 좀 큰가보다. 유난히 잘 닳아 구두 수선을 하기 위해 자주 들르는 회사 근처의 길가 구둣방이 있는데 이곳만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구둣방에는 인생의 스승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구둣방 사장님, "어쩜 저렇게 평온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평 남짓한 구둣방의 작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구두 약 냄새를 마시며 묵묵히 일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은 살아있는 부처님 그 자체다. 
뭐랄까, 해탈을 하신 분 같다고 할까. 언제나 누굴 보나 항상 온화하고 편하게 웃어주는 인상, 얼굴의 어느 한 부분조차 그늘진 곳이 없는 그분은 언제 봐도 천상 내 가족처럼 친근하고 반갑다. 

구둣방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네_1
구둣방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네_1

엊그저께도 굽을 갈기 위해 구둣방으로 갔다. 옆으로 난 조그마한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하는 아주 협소한 장소다. 아파트 근처에서 주워 왔을법한 각기 틀린 2개의 의자와 빨강색 앉은뱅이 의자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는 곳인데, 사장님이 친절해서인지 손님들이 항상 북적댄다.

그런데, 내 구두를 벗어서 맡기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자마자 웬 아줌마가 찾아와 구두 한 켤레를 패대기치듯 사장님 앞에 내던졌다.
"아니 아저씨, 수선한지 1주일도 안돼서 망가지면 어떡해요? 에이 짜증나..."
"어이쿠 죄송합니다. 곧 새로 해드릴께요"
그 중년의 아줌마는 사장님에게 호통치듯 큰소리를 쳤다. 

수선이 잘못 되었나? 일을 하다보면 실수 할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건데 그냥 새로 해달라고 하면 될것을... 자기 아버지뻘 되는 연세 지긋하신분한테 저렇게 독하게 퍼부을게 뭐람. 저 부처님 같은분한테. 
구둣방 사장님은 속도 없는줄 아나?  옆에서 바라보는 내가 더 민망해서 혼났다.

"사장님, 맨날 구두 만지다 보면 혹시 발꼬랑내 안나세요? 우리 남편도 발꼬랑내가 장난 아닌데. 호호"
그 아줌마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을것 같아 내가 분위기를 바꿔 볼려고 사장님한테 농담을 걸었다.
"발꼬랑내요? 허허허... 좀 나지요. 그런데 그건 향기예요 향기. 우리네 같은 사람들한테 발꼬랑내가 싫으면 일 못하지요. 그래서 우리네는 그걸 향기라고 생각해요"
역시 사장님은 부처님이 맞다.  그것마저 향기라고 하시는걸 보면.

사장님은 자신이 만졌던 구두는 꼭 기억한다고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신발의 주인까지 기억하는데 그 기억을 도와주는 것중'향기'라고 하신 발꼬랑내도 한몫 한다고 하셨다. 그 정도면 엄청난 집중력이다. 
"어? 이거 딴데서 어디 날카로운 것에 찍혀서 찢어진건데..."
사장님은 잠시전 그 아줌마의 구두를 만지며 고개를 갸우뚱 하셨다.  사장님이 수리를 잘못한게 아니라 그 아줌마가 구두를 다른데서 찢어 먹은건데 구둣방에 와서 화풀이하며 뒤집어 씌운것이다. 그러나 사장님은 묵묵히 그 찢겨진 부분을 꿰매서 순식간에 새구두처럼 만들어 놨다.

"에이. 억울하잖아요. 그 아줌마 좀 혼내주고 수선비 받으세요. 어쩜 여기 와서 누명을 씌울수 있담."
내가 사장님을 거들자 그저 피식 웃으시면서 "뭘요. 그런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지요."
사장님은 그 아줌마의 구두 수선을 마친후 이내 내 신발을 잡더니 밑에 닳아빠진 고무를 벗겨내고 거기에 박힌 쇠붙이를 뽑아냈다. 늘 하던것처럼 익숙한 솜씨로 새 굽을 찾아 작은 통을 열심히 뒤지시더니 드디어 제 짝을 찾았는지 탕! 탕! 두들기신다. 구두 굽을 갈며 떨어진 연결 부위 수선도 하시고 먼지투성이 구두를 광나게 닦아주시는 서비스까지 순식간에 끝냈다. 손 가득 구두약으로 범벅이 되어도 아무 말씀 없이 열심이시다. 

"사장님, 아무리 화가 나도 매일 웃으며 즐겁게 사시는 비결이 뭐예요?"
내 질문이 느닷없었는지 사장님이 나를 잠깐 쳐다 보신후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늘 웃기는 힘들죠. 그런데. 집에 있는 가족들 얼굴 떠올리면 웃음이 나와요. 화가 안나요"
아, 역시 나와 다른 분이다. 아저씨 말씀이 맞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즐거움을 찾고 분노는 억누른다니. 앞으로 사람들 만날때마다 알려주어야겠다.

신고 들어올 때보다 신고 나갈 때 더 빛나는 구두를 보며 마냥 기분 좋아하는 구둣방 사장님. 왼종일 웃음 내보이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감마저 선물로 주시니 그분은 분명 신선같다.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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