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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먹으며
2013-02-25 00:03:55최종 업데이트 : 2013-02-25 00:03:55 작성자 : 시민기자   남준희

아내가 오곡밥을 지어냈다. 찹쌀, 서리태, 팥, 찰 수수까지 넣어 만든 오곡밥이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까닥 넘어가는 그것을 자주 좀 먹을수 없을까 하는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건고사리를 물에 불려 익혀 무치고, 호박 말랭이 나물에 시래기와 무 무침까지 정말 진수성찬이 차려져 나왔다. 지난번 설에 고향의 어머님이 담가 주신 나박김치가 함께 상차림으로 나온 것은 실로 환상이었다.

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먹으며_1
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먹으며_1

우리에게 대보름이라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 있는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한다. 당연히 선조들께 고마워 한다는 뜻이다. 평소에 얻어먹기 힘든 오곡밥에 웰빙 나물무침을 실컷 먹게 해주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가족과 이웃을 무사안일로 지켜주시는 감사함을 표할 기회를 주시니까.

우리에게 명절이라 하면 설과 추석만 있는걸로 착각할수 있지만 실상은 대보름도 3대 명절에 드는 큰 행사이자 절기이고 기념일이다.
설과 추석이 조상님들께 대한 감사와 추념일이라면 정월 대보름은 우리나라, 우리마을, 우리가족 모두를 둘러싸고 관장하시는 모든 신들께 대한 감사의 날이고 축원의 날이며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보름날로서 농사의 시작일이라 하여 매우 큰 명절로 여겼고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과 당일에는 여러 곳에서 새해의 운수에 관한 여러 풍습들을 행했다.
대보름날에는 점도 치고 온 가족이 부럼을 깨 먹으며 액운을 쫓았고 밤에는 들로 산으로 나가 불놀이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적 시골에 살때의 대보름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스타크래프트와 핸드폰 문자질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그때의 추억을 어찌 알까. 
정월 대보름날 뜨는 만월을 제일 먼저 보고 소원을 빌면 빨리 이뤄진다는 소망으로 높은 곳까지 오르시던 아버지의 모습. 가슴속에 응어리진 소원이 하도 많아 과묵하신 아버지 발걸음은 어찌 그리도 빠르셨는지....

대보름날에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팔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를 하였다. 
그때 고향에서는 대보름날 천신제를 지냈다. 천신제는 일년동안 마을사람들이 무탈하게 해 달라고 신께 제를 올리는 일이었다. 
우리집 바로 옆에 천신제 모시는 장소와 웃동네 서낭당 나무에 제를 올렸는데 대보름 전날 오후가 되면 천신제 장소에 사람들 통행을 금지하고 길 위 아래로 금줄을 쳤다.

그리고 제를 모시는 사람들은 강물에 목욕을 하고 몸을 정갈하게 한다음 천신제 모시는 장소 앞에 밖에 솥을 걸고 떡을 쪘고 돼지머리를  삶았다. 그리고는 초저녁에 징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천신제 주위를 돌며 마을의 평온을 빌었고 동네도 한바퀴 돌았다.

보름차례를 준비하시는 어머님에게는 관심 없고 나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천신제 지내는걸 보는게 무척 재밌었다.
몇사람의 아저씨들이 제복을 입고 정성껏 제를 지내고... 징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웃동네로 올라간다. 천신제는 그렇게 계속됐는데, 그러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커다란 시루에 오곡 찰밥을 찌시고 여러가지 나물도 장만하시고 정성껏 차례를 준비 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어제 준비 해 두었던  대나무를 마당에 모아놓고 불을 피웠다. 불꽃이 하늘높이 올라가야 그해 운수가 좋다고 했기 때문에 나무도 듬뿍 던져 넣었다. 툭툭 터지는 대나무의 마디소리 ... 활활 타는 대나무의 툭툭 터지는 마디 소리를 들으며 우리 형제들은 "와와~"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후에 불꽃이 약간 사그라 들면 모두 자기 나이만큼의 숫자대로 불을 뛰어 넘었다. 사뿐 사뿐 불위를 뛰어넘으며 일년동안 무탈하게 자라게 해 달라고 소원도 빌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 불을 넘는 즐거움을 누가 알랴.
 그리고는 모두 다 마을 앞 논두렁 밭두렁으로 뛰쳐 나가 불놀이를 시작한다. 그 어릴적에는 지금은 흔한 깡통조차 구하기 힘들어 몇날 며칠을 들로 냇가로 깡통을 주우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주워온 깡통 바닥에 촘촘히 못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나뭇가지를 조그맣게 잘라 깡통 가득 담아놓고 집앞 논두렁에서 쥐불놀이를 하며 보름달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몇몇 여자친구들은 대보름전날 큰 그릇 두개를 준비해서 오곡밥을 얻으러 다녔다. 
그날 하루 만큼은 부모님 눈치 안보며 밤새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얻어온 밥을 양푼에 넣고 비빈 다음 친구들과 골방에 박혀서 밤새 먹고 놀았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어른들에 말 때문에 아무도 잠을 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옆집 아이들이 부르러 와서는 "친구야~" 하고 이름을 부르면 아무도 대답을 안했다. 보름날 이름 부를때 대답을 하면은 그 친구의 여름 더위까지 다 사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보름날은 정신 바짝 차리고 대답을 안했다. 참 재밌고 정겨운 전통이었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지나간 그 시절이 눈물나게 그립지만 다시 돌아갈수는 없어서 안타깝기는 하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아내가 해 주는 오곡밥을 먹으며 그 시절을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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