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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해봐...나는 할줄 모르니까
요양원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미술봉사
2013-03-07 22:16:52최종 업데이트 : 2013-03-07 22:16:52 작성자 : 시민기자   이연자

한달에 두번 딸과 함께 노인 요양병원으로 색채 심리 미술 봉사를 간다.  그 동안은 일상 지원 봉사를 했는데 요양원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할머님들과 만나기 위해 지난달부터 색채 미술 봉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님들 가운데 비교적 건강하시고 손을 자유롭게 쓰실 수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할머님들이 좋아하실 만한 소재를 가지고 커리큘럼을 만들고 재료를 준비하는 시작부터 수업시간을 이끄는 것까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어 책임감이 더 크다. 

우리가 가는 요양원은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생활하는 어려운 계층의 어르신들이 머물고 계신 곳이다. 대부분 자식들도 생활이 어려워 자주 찾아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양원 방문을 하고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청소나 시설관련 봉사는 일회성으로 그쳐도 큰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정서지원의 경우 반드시 지속적이고 규칙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우리의 봉사로 인해 자칫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역시 그림을 그리며 나누는 이야기 중 자식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소재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우리와 함께 미술활동을 하시는 할머님들은 모두 긍정적이시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본인의 처지를 두고 자식을 원망하는 어르신은 단 한분도 계시지 않다. 자식 이야기 이외에도 어르신들의 젊은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흥미진진해서 귀를 쫑긋세우고 듣게 된다. 

미술 활동에 참여하는 어르신 모두가 차분하고 정적이시다. 천상 여인의 모습이다. 조금은 감정을 표출하고 약간은 기분을 들뜨게 해드리려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교구로 접근한다. 
미술활동 속에서 자신감과 적극정,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어르신들은 '난 못해'라고 선을 긋고 처음에는 참여를 하지 않으신다. 혹시라고 예쁘게 그려진 밑그림을 망칠까봐 주저하시는 것이다. 망쳐봐야 그림이고 그래봐야 종이 한 장인데 말이다. 

자네가 해봐...나는 할줄 모르니까_1
배운 적도 없는데 그라데이션까지 넣는 재주많은 할머님

한 두 글자 틀렸다고 노트를 찢어 버리는 요즘 아이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지만 항상 부족했던 그 시절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는 종이 한 장을 버릴까봐 조마조마 하신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자신감과 사기를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면서 재롱도 떨고 무조건 칭찬을 해 드린다. 그런데 칭찬에도 방법이 있다. 공평하게 그러나 내용은 개인에 맞춰서 해드려야 한다. 

어떤 날은 간식을 준비해 가기도 한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간식만 손에 들고 학습에는 관심이 없으신 어르신도 계신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유도가 어렵지 일단 참여하시면 쉬엄쉬엄하시는 법이 없다. 너무 열중하셔서 자칫 어르신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조금씩 그림이 완성되면 무척 좋아하신다. 못하신다고 하시던 어르신들께서도 슬쩍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시고는 '나도 할래' 하시며 참여하신다. 그 때의 표정은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얼굴에 수놓아 진다. 

한 번은 어떤 어르신께서 내 딸아이에게 '집이가 해봐' 라고 말씀을 하셨다. 
우리 딸은 "할머니랑 같이 할거에요. 왜 자꾸 나보고 집에가래요."라고 대답하고 할머님은 계속해서 집이가 해보라고 하셨다. 딸아이는 할머님의 말씀을 전혀 못 알아 듣는 듯 했다. 두 사람이 언쟁 아닌 언쟁을 벌이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머지 사람들은 한참을 웃었다.  

"집이가 해봐"에서 '집'이는 '너' 를 높이는 말이다. 딸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니 자기가 싫어서 집에 가라는 줄 알고 당황했었다고 한다. 
그 할머님께서는 유독 자신감이 없으시다. "자네가 해봐. 나는 할 줄 모르니까"라며 항상 머뭇거리신다. 그럴 때면 딸아이는 애교를 부리면서 같이할거라고 할머니 손을 잡고 색칠을 한다. 

할머님의 기분을 맞춰드리고 칭찬도 해드리며 활동에 함께한 후 그 할머님께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활동을 하다 말고 누우시지 않으시고 "집이가 해봐"라는 말 대신 "집이가 먼저 시작해봐"라고 하시며 함께 하신다. 못하신다고 자신없어 하던 할머니께서 누구보다 꼼꼼하게 색칠하신다. 그림을 완성하면 딸은 할머니께 하이 파이브를 청한다. 그러면 할머님은 밝게 웃으신다. 아마 하이 파이브의 손벽을 마주치며 소리내는 것이 재미있으신 모양이다. 

다른 어르신들도 본인의 그림을 보여주며 확인 받으시려 하신다. 칭찬을 해드리면 소녀처럼 웃으시고 다른 분 옆에 오래 있으면 샘을 부리신다. 아이들처럼 순수하신 모습을 보면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샘을 부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는 계속 돌아다니며 한분 한분 봐드려야 한다. 어르신 한분 한분이 개성이 뚜렷하고 좋아하시는 색이 다르므로 같은 그림이라도 완성해 놓으면 느낌이 다르다. 

자네가 해봐...나는 할줄 모르니까_2
고생의 흔적인 할머님의 손은 색연필을 잡기도 힘들다.

마음이 청춘이신 할머니의 색은 분홍색을 많이 쓰시고 조금은 어두운 색으로 그림을 채우는 어르신도 계셨다. 색감을 보고 우리는 어르신들의 심리상태와 기분을 미약하게나마 예측하고 대처를 한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색감을 유독 많이 쓰시는 어르신이 계시면 더욱 긴장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그 분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낸다.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이야기 할 상대가 필요하다. 듣고 대꾸해 줄, 우리에게는 흔한 주변의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한다. 

알차게 1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양한 완성품이 생긴다. 작품을 한쪽으로 모아 작은 전시회를 열어 드린다. 사진도 찍고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게 해드리는 것으로 수업은 마무리한다. 가끔은 어르신들께서 서로 경쟁이 붙어 지나치게 열중하신다. 활동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까봐 그럴때면 중간 중간 손운동을 하면서 이완하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점심식사 시간이 된다.  할머니 한분은 항상 우리에게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고, 밥 꼭 먹고 가라고 당부를 하신다. 그러면 나는 따뜻해진다. 정이라는 것이 이런게 아닐까.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했기 때문에 극진한 손님대접은 밥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어르신들께 따뜻하고 극진한 대접을 되려 받고 온다.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다음에 온다는 약속을 몇 번을 하고 나서야 요양원을 나설 수 있게 된다. 어르신들과 활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들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고 아프기도 하다. 

자식들과 같이 생활을 하실 수 있으면 더욱 좋으실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식들은 부모에 대해 소홀한 부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원망하고 짜증내는데 부모는 자식들한테는 조건없는 사랑을 퍼 붓는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길어 나르는 것처럼. 
나 역시도 생활을 하다 보면 부모님을 잊고 지내는 순간들이 많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그 반의 반만이라도 자식들이 헤아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처음보다는 지금이, 지금보다는 다음이, 조금씩 익숙해질 것을 믿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재밌는 계획을 세우고다양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와의 시간이 어르신들에게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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