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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동백꽃 보며 봄을 기다린다
2013-03-13 12:33:45최종 업데이트 : 2013-03-13 12:33:45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출근길에 주택가 안쪽에서 담장너머로 팔을 길게 뻗은 목련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슬슬 꽃망울을 피울 자태로 가지 끄트머리마다 언제든지 터트리고야 말겠다는 듯한 꽃눈이 싱싱하게 달려 있었다.

'하얗고 탐스러운 백목련이면 좋겠다'
혼자 생각이었다. 남의 집 울타리 안에 있는 꽃 색깔이 분홍이든 빨강이든 그 꽃 마음이거늘, 그마저도 내 마음대로 흰색이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품어 보며 나도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해마다 이맘때 일찍 피는 꽃은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가슴을 조금이나마 녹여주고 화사한 봄을 맞게 하는 활력소 아닌가. 야산의 진달래와 길가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집안 울타리에서 피는 목련과 담장에 늘어선 노란 개나리까지. 전부다 우중충한 겨울 묵은 때를 털어내라며 우리 곁에 일찍이 찾아와 주는 꽃들이고 봄의 전령사들이다.

거실 동백꽃 보며 봄을 기다린다_1
거실 동백꽃 보며 봄을 기다린다_1

1년 사계절중 꽃은 항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난 방에도 탄생의 기쁨은 꽃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일생을 다 보낸 사후세계인 무덤 앞에까지 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어릴 적 아침 일찍 마당가에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화단에 제일먼저 가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백합이 풍겨주는 향기. 수많은 꽃잎으로 겹겹이 쌓아 몸을 흔드는 다알리아. 꽃의 종류가 너무 많아 거기에 찾아 노는 벌, 나비 손님까지 쪼그리고 앉아 온정신을 꽃에게 빼앗겨버려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데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젠 도시에 살고 콘크리트 건물 안에 살게 되어 그런 화단을 꾸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거실 안에 몇 가지 꽃과 나무를 키운다. 지금 우리 집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동백꽃이다.

좀처럼 흰 눈을 보기 어려운 남쪽 섬, 불붙듯 피어난 붉은 동백꽃잎에 바다 소금이 변하여 된 듯 흰 눈발이라도 흩날리다 앉으면 동백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된다는데 그 붉은 동백이 우리 집 거실에 있다. 

언제 보아도 싱그러운 잎새는 사시사철 윤기로 반질거린다. 또 잎겨드랑이에 꽃자루도 없이 달리는 꽃은 조금씩 겹쳐져 달리는 그 붉은 꽃잎 사이로 드러나는 수많은 노란 수술은 마치 일렬로 붙여 돌돌 말아 놓은 듯 단정해 짙푸른 잎새와 함께 멋진 색의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오래돼 회갈색으로 매끈거리는 그 운치 있는 나무껍질은 귀족나무라고 일컬어지는 자작나무의 멋스러움에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그 붉은 꽃송이가 그대로 툭툭 떨어지는 선연한 낙화의 모습도 요즘 말로 쿨 하다고나 할까.

지난 일요일에는 햇빛이 쏟아지는 베란다 창가에 서서 이 동백을 옆에 두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보았다. 어쩜 그리도 고운 색으로 예쁜 꽃을 피워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는지...

지난겨울은 너무나 추워 혹시나 베란다의 화초들이 죄다 얼어 죽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너무 추운 날씨를 디지 못해 꽃봉오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냥 져버리지나 않을는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나마 실내에 있는 우리집 화초들은 복 받은 축에 든다. 아침 출근길에 본 남의 집 담장 안에 있는 목련은 지난겨울 그 모진 혹한기 강추위를 견뎌 내야 했으니 얼마나 추웠을까. 그래도 꿋꿋이 이겨냈으니 참 장하고 대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화사한 꽃망울을 보란 듯이 터트려 줄 것이고.

자연의 이치와, 이 한 치의 어그러짐 없는 조화로운 섭리를 주재하는 신의 뜻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우리 집 거실의 동백도 날씨가 조금 풀리는 듯 하던 얼마 전부터 베란다 햇빛이 잘 드는 창 쪽에 놨더니,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꽃망울이 보인 것이다.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물주고 이파리도 수건으로 항상 잘 닦아주며 내손으로 키워 꽃을 보게 된 것이니 더 예뻐서 마음이 흐뭇하다. 그 행복감이 긴 겨울 동안 회색빛이던 마음에 밝은 미소를 떠올려 주고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은 봄이라지만 아직도 성큼 다가오기엔 조금 먼 당신이다. 마음처럼 내 가슴에 확 안기지 못하는 봄을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경제와 살림살이도 확 풀려서 우리 생활을 조금 나아지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과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루 뻘리 더 따사로운 봄 햇살이 찾아와 온 대지를 온기로 가득차게 하고 다 같이 얼어붙은 우리 사회 주변의 모든 것들이 확 녹아내리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집 거실의 동백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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