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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셋방에 살아보셨는지요?
2013-03-18 14:33:38최종 업데이트 : 2013-03-18 14:33:3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순자

지난 주말에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한다며 짐 정리를 하다가 베란다 창고에서 낡은 장판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에나... 저걸 왜 여태까지 끌어안고 다녔을까?'
그건 우리 부부가 신혼 초기에 반지하 셋방살이를 할때 방바닥에 깔으라며 시어머님이 선물로 사준 한지형 장판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저걸 이사 다닐때마다 들고 다녔을까. 아이들 자라면서 말 안들을때 엄마 아빠가 이렇게 고생했노라며 보여주려고 그런걸까. 아니면 그때의 추억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들고 다닌걸까.

반지하 셋방에 살아보셨는지요?_1
반지하 셋방에 살아보셨는지요?_1

셋방에 살던 기억이 따올라 혼자 풀썩 웃음이 나왔다. 
반지하 셋방. 그곳에서는 여성들이 살 탈까봐 싫어 하는 햇빛이 반갑다. 땅 위로 올라오면 언제든지 보는 빛이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신혼초에 반지하에서 출발했다. 다른 친구들은 남편 잘 만나서 아예 아파트를 사서 출발한 경우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결혼해서 이렇게 사는게 전부인가 싶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너무 창피해 아무에게도 우리 집 구경을 시켜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반지하 셋방이라는게 사람을 참으로 우울하게 만든다. 빛 구경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에는 시간을 눈치채기가 힘들다. 아침에 "빛"이라는게 들어오면 어설프게 잠이 깨기 시작하고, 구름이라도 끼는 날이면 그런 단계가 없으니 늘 한밤중에 깨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남편은 퇴근후 반지하에 딱 들어서서 느끼는 특유의 느낌에 늘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눅눅한 느낌, 음습한 느낌... 어디가 안방이고 어디가 옆방인지 구분이 없다. 모두가 동등한 느낌이 든다.  빛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빛은 항상 간접적으로 집안에 들어오게 된다.  주변에 직접적으로 쏘아진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혀오기 시작하면 그빛이 서서히 지반에 간접적으로 퍼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미안해 여보"만을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그러나 돈이 없어 음습한 반지하에 사는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살다가는 가족들 모두 우울병에 걸릴것 같아 머리를 썼다. 덩굴처럼 길게 자라는 식물이 있는데 그것을 3개 사다 놨더니 이녀석들이 빛을 따라 천정을 녹색잎으로 휘감으며 계속 자라났다. 
덕분에 불을 켜면 녹색천장과 녹색벽이 형성되어 어두운 분위기를 다소 줄일수 있었다. 그때 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수구가 막히면 반지하에서 가장 먼저 안다. 물이 넘칠때도 있고 냄새만 가득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던 적도 있다. 그렇게 여름 장마철을 맞으면 방바닥은 온통 쭈글쭈글한 느낌이 든다. 장판을 들춰보면 안에 물기가 맺혀 습하고 역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장판을 다시 덮으면  신기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미 반지하 셋방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나도 직장에 취직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편도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직장과 친구들 사이에서 짠돌이 소리 들어가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은 이웃집에 맡긴채 직장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또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니 하루하루 파김치가 되었다.
그리고 주방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고,  너무 속상해 남편 앞에서 펑펑 울어버린적도 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4년만에 우리는 '지상'으로 올라갈수 있었다. 
신혼 초에 힘든 시기를 겪으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아껴 쓰면서 알차게 생활한 대가로 우리는 지상에 3칸짜리의 방이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갈수 있었다. 그때 이사를 가면서 마지막으로 본 반지하 셋방에 들어온 이른 아침의 햇살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당시에 처음 반지하에서 떠나 올때 이삿짐 어느 한켠에 척척 접어 끼워 넣은 이 장판이 우리가 이사를 할때마다 굳이 펼쳐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날까지 뭔지도 모른채 함께 따라다닌 모양이었다. 
이제는 장판을 따로 사서 깔지 않아도 되는 집에 살고 있지만 그걸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싸서 베란다에 꼭꼭 숨겨 놓았으니 이젠 골동품이 된 것이다.

버리기는 아까워 다시 꺼내 걸레로 닦아 접어 놓고 보니 지난날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젠, 우리에게 시련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고야 말것이다.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 다 건강하고 행복하다. 더 열심히 살며 지난날 우리에게 희망의 등불이 돼주고, 늘 반 지하 셋방에 찾아와 우리를 밝혀주던 빛처럼 더 밝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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