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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특단의 '비기(秘技)'
2013-03-18 16:50:22최종 업데이트 : 2013-03-18 16:50:22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어제 휴일 낮, 아내더러 보리밥좀 해먹자고 하자 아이들이 일제히 "보리밥? 그게 뭐예요?"라며 이구동성 합창을 한다.
보리밥이 뭐냐고 묻는 아이들. 하긴 태어났을때부터 보리밥이라는건 구경조차 안해본 아이들이니 보리밥이 뭐냐고 묻는게 당연하다.

매일 하얀 쌀밥만 먹던 아이들에게 보리밥은 정말 먹이기 어려운 음식일까? 어렸을적 질리도록 먹었던 음식 보리밥과 수제비. 정말이지 그 시절, 깡촌에 살때는 너무나 가난해서 보리밥과 수제비를 참 많이 먹었다. 
나는 비빔밥을 비벼 먹을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난다. 그것도 그냥 비빔밥이 아니라 꽁보리밥이 그렇다. 

옛날 시골에서 어렵게 살 때, 어머님은 보리밥을 기피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든 밥을 먹이기 위해 특단의 비기(秘技)를 발휘하곤 하셨다. 어머님표 보리비빔밥이 그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쌀밥 먹기 힘들었던 그때 봄에는 고사리 나물과 콩나물, 여름에는 깻잎과 강된장, 그리고 열무 김치, 가을에는 시래기 나물과 무 나물 등을 넣어 계절마다 고추장에 참기름을 듬뿍 뿌려 비벼 주셨다. 

어머니 특단의 '비기(秘技)'_1
어머니 특단의 '비기(秘技)'_1

우리는 보리밥은 싫어하면서도 어머니가 비벼주신 그것만큼은 누구랄것 없이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 비밤밥은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가난하던 시절, 새마을 운동이 불고 너도나도 잘살자는 구호아래 똘똘 뭉쳐 마을 다리도 놓고 길도 넓히던 그때 보리밥이라도 먹으며 자랐던 우리는 세상 어느것도 견주기 어려웠던 우리 어머니의 그 꿀맛 비빔밥의 비결을 아직도 모른다. 지금 결혼해서 사는 아내도 그 흉내를 내지 못한다.

가끔 어머니가 없을때 누님이 비벼 주면 거기에 어떤 맛난 양념을 넣고 부재료가 좋은게 들어 갔어도 어머니가 비벼준 꽁보리밥 맛의 절반도 내지 못했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어머니의 손맛의 힘이었나보다.

그리고 수제비.
보리밥만으로는 물릴것 같아서였는지 어머니가 또 때때로 만들어 주신게 바로 수제비였다. 그건 돈이 없어 멸치도 넣지 못한 소금물에 밀가루 덩어리 예닐곱개쯤을 넣고 끓인 '밀가루 덩어리 맹탕' 물이었다.
이런 멀건 국물도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수제비 덩어리는 다 건져주고, 소금물만 "시원하다"시며 들이켜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제비 한두덩어리를 어머님 그릇에 넣어드렸는데, 그러면 당신은 역정을 내시며 다시 건네주셨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음식은 양푼 가득 꽁보리밥을 쏟아붓고 열무김치와 얼큰한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이었다. 
우선 수제비보다 배가 부를 정도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꽁보리밥을 먹을 때마다 늘 한 양푼에 둘러앉아 먹게 하셨다. 그러면 우리 남매들은 어머님이 한수저라도 더 드시게 하기 위해 밥을 천천히 먹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두숟갈 뜨시는듯 하다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며 "많이들 먹거라"하시곤 밖으로 나가셨다. 

꽁보리밥 도시락은 또 어떤가.
따끈하게 지은 보리밥을 도시락에 넣고 밥 속에 반찬통을 묻어 김치와 깍두기를 넣었으니 점심때 도시락을 풀어보면 김치 국물이 밥 속으로 배어 쉰 냄새가 나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쌀이 귀했으니 쌀밥은 어른들 밥상에서나 얼핏 보이는 정도였고 명절때와 아버지 생신때,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때나 구경하는 수준이었는데 가끔씩 이 흰 쌀밥을 보리밥에 섞어서 비벼먹을때의 맛 또한 일품이었다. 

가난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보리 죽조차 못먹고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으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던 시절.
그래도 우리 가족은 참으로 단란했고, 아마도 그 시절을 겪어낸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죽을 때까지 수제비와 꽁보리밥 먹던 시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꽁보리밥과 열무김치의 그 애환보다는 '시원한 맛'으로 즐기니 좋은 세월을 사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지금도 궂은 날 수제비집 식당 앞을 지나거나, 보리밥 먹겠다고 식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반가운 미소를 지어본다. 그게 바로 내 고향의 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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