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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태 콩 봉지 하나 때문에
2013-03-20 11:07:12최종 업데이트 : 2013-03-20 11:07:12 작성자 : 시민기자   장영환
"봄감기 무섭다더라. 옷 잘 챙겨입고 다녀야. 늬 아부지는 감자 싹 틔울라고 모래 짐 지러 갔다가 허리가 삐끗했다는디, 요 메칠 누워 있었다닝께"
퇴근길에 걸려온 전화, 어머니셨다. 아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유치원생더러 온 잘 챙겨 입고 다니라는 말씀을 하시듯 하는걸 보면 환갑 넘은 아들도 어머니가 보기에는 물가에 내 놓은 아이 같을거라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며칠 누워계시며 병원서 물리치료까지 받으셨다고 하셨다. 이젠 일도 좀 적당히 줄이셨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눈 앞에 농삿일을 놔 두고 그냥 구경만 하시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평생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신 고향의 부모님.... 
봄이 다가와 앞산 철새들이 농사일을 재촉하듯 울어대는데 밭에 올라선 트렉터는 종일 적막을 깨고 붕붕거리던 지난 주말.  이제 다시 바빠진 시골의 어른들이 허둥지둥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괜한 조급함이 앞서 앞으로 닥쳐 올 그 많은 농사일을 어찌 다 감당할까 걱정만 하다가 돌아온게 어제 같은데. 거리가 조금 가까우면 자주 와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도 잠시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바쁘신 어머님이... 봄동 얼갈이 김치를 담가 택배로 보냈으니 도착하는 즉시로 냉장고에 넣으라고 전화를 하신게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밤새 다섯 개의 탹배 박스를 싸셨다 했다. 자식이 5남매이니 어느 누구에게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보내시기 위해서다. 두 양반의 손놀림이 영상처럼 그려진다.

똑같은 상자 다섯 개에 똑같은 짐을 넣으셨던 모양이다. 잘 말려 꼭꼭 숨겨 놓았던 하얗고 뽀얀 참깨, 아들이 좋아하는 붉은 팥과 서리태 콩, 농약 구경 한번 안한 고추를 따서 시골에서 햇볕에 말려 빻아 내신 태양초 고춧가루와 말린 호박, 뒷산에서 딴 놓은 토종밤 한 봉지와 매실 장아찌까지 조금씩을 상자마다 나누어 담으셨다 하신다. 
그런건 며느리에게 전화하실 일인데 아내가 바빠서인지 전화를 안받길래 아들한테 하셨다며 며느리도 옷 잘 챙겨입고 다니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주어도 주어도 무엇이 서운한지... 그렇게 싸서 보내는게 행복이고 삶의 낙이시라니 나도 참 복 받은 아들이다. 
거기다가 올해도 자식들에게 신토불이 웰빙 양식을 공급하시려고 애쓰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전화 받다 말고 휴지에 손이 간다. 마음한쪽이 짠해 눈물이 살짝 나와서다.

자식이 많으니 해마다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이런저런 부식재료와 어릴 때 늘 먹고 자라 입에 맛이 붙은 밑반찬을 다섯 자식 모두에게 일일이 챙겨 보내주시는 일 역시 여간 손이 많이 가지 않을텐데. 하지만 당신들은 그게 가장 큰 기쁨이고 낙이시다.
"아참, 그라고... 다 보내고 봉께 큰애(형님) 한티서 전화가 왔는디 거기에는 콩 봉다리가 하나 빠졌더라. 혹시 다섯중에 누구 박스에 그게 하나 더 들어갔는지 알수가 읎어...."
5남매에게 보낼 5개의 택배 박스를 바리바리 싸서 보낸 후 형님네에 전화를 해 보니 콩 봉지 하나가 없더라고 했다. 다섯 개의 상자 가운데 어느 자식 상자엔가 그게 추가로 더 들어간 것이다. 그 상자가 어느 자식에게로 갈까 어머니도 궁금하신 모양이다.

 
서리태 콩 봉지 하나 때문에_1
서리태 콩 봉지 하나 때문에_1

전화 통화를 하던 내가 "아마 그 콩은 젤 예쁜 아들 며느리한테로 간 것 같은데요" 라고 하며 웃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한 그날 저녁 퇴근해 보니 택배가 왔다. 그리고 상자를 연 우리 부부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내 입으로 "제일 예쁜 아들 며느리한테 갈거예요"라고 한 서리태 콩 봉다리가 우리 택배 박스가 들어온 것이다. 

아내더러 "당신, 시부모한테 얼마나 아부를 잘 했길래?"라며 농을 걸자 득달같이 어머니께 전화를 건 아내. 
"그려, 늬덜이 에미한티 젤루다가 잘하는갑다"라고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네, 어머니, 더 잘하는 며느리 될께요"라며 머리를 조아리는걸 보고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서리태가 2봉지나 들어온 택배 박스 하나 덕분에 웃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분, 부디 건강하고 또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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