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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노점상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위해 날씨라도 빨리 따뜻해졌으면
2013-03-21 10:56:38최종 업데이트 : 2013-03-21 10:56:38 작성자 : 시민기자   오수금
아직도 차가운 꽃샘추위. 길거리의 보행자들은 저마다 흠칫 놀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채 종종 걸음으로 귀갓길을 서두르고 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가는데 그림자가 반쯤 드리워져 있는 주택가 건물 아래 깐 땅콩, 껍데기가 그냥 있는 피땅콩, 은행, 밤 깎는 기계, 면도칼, 고무장갑, 귀후비는 면봉 등을 펼쳐 놓은 노점상이 보였다. 

책읽는 노점상 할아버지_1
책읽는 노점상 할아버지_1

물건들은 꽤나 여러 종류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검정색 자동차가 서 있었고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차피 노점에 손님이 바글바글 들끓을 일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한가한 길가. 아마도 이 노점상 주인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밀려나 이렇게 한가한 곳으로까지 왔나보다 싶었다.
노점 주인. 한눈에 봐도 70세는 충분히 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였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과 깊은 주름살 때문에 더 늙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노점도 중요한 목이 있기에 그런 곳은 목마다 주인이 다 따로 있고 또한 자릿세도 내야 하니 그럴만한 여력이 안돼서 그곳 인적이 뜸한데까지 밀려나신걸까. 
날씨도 춥고 서둘러 집에 돌아가 따끈한 국물과 함께 저녁 먹고 쉬고 싶었지만 그렇게 찬바람을 맞으며 혼자 노점을 펼쳐놓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장사가 은근히 궁금해졌다.
'오늘은 얼마나 파셨을까. 저걸 팔아서 손주들을 가르치시느걸까. 아니면 집에 먹고 사실 돈은 충분히 있지만 그냥 있기 심심해서 소일 삼아 나오신걸까. 집에 돌아가시면 반겨 맞아 줄 아들과 며느리는 계실까'
별의별 부질없는 생각을 다 해 보았다. 내가 어찌 딱히 도움 드릴 방법이 없으니 나의 생각이 부질없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건?... 앗, 책이다. 
잡지책도 아니고 만화책도 아닌 소설책 같다. 누렇게 퇴색한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된 헌 책임이 분명하다. 
책을 들고 계신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자기 물건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물건 하나라도 팔려면 사람들의 표정과 눈을 보면서 호객 활동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행인들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추운 날 시선은 그저 책에만 꽂혀져 있었다. 참으로 여유 있어 보였다. 주변의 번잡함과 찬바람과 먼지 속에서도 저렇게 고요하게 책에 시선을 둘수 있을까 싶을만큼 얼굴의 모습은 넉넉함과 평온 그 자체다.
노점 물건이야 팔리든지 말든지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책. 그 내용이야 무엇이건간에 할아버지는 그저 책 속에 푹 빠져 계시다. 좌판을 거두고 집에 돌아갈 때는 천 원짜리 몇 장뿐이라 하루 장사 헛장사했다고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할아버지는 그저 독서 삼매경일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노점이 일종의 휴식 같았다. 마치 어느 강태공이 반드시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일념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마음의 평온을 구하는 사람처럼, 할아버지는 그저 길바닥에 편히 앉아 노점을 소일삼아 독서를 즐기시는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보면서 약간 춥기는 했지만 그나마 비도 눈도 안 오는 날씨가 고마웠고 하루빨리 날씨라도 풀려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눈비라도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할아버지의 저 고요한 휴식을 방해할것 같아서였다.

문득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물결치던 그때, 학생들의 데모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던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에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군대로 징집되자 어느 서울대학 총장님이 퇴임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매일 아침마다 비가 내리기를 기도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학생들이 데모를 하지 못하니 경찰에 끌려가는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총장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이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는 일을 매일매일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데모를 못 하도록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 총장님과 내가 서로 바라는 것이 경우는 다르지만 나는 잠시 할아버지를 위해 눈비가 내리지 말고 날씨도 따뜻해 지기를 바래 본 것이다.
할아버지가 노점을 접고 집에 돌아가시면 따뜻한 찌개가 바글바글 끓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밥상을 앞에 두고 손주들 이야기를 밤새껏 두런두런 해 주실 할머니가 계셨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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