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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 달이 금방
2015-06-25 23:21:03최종 업데이트 : 2015-06-25 23:21:03 작성자 : 시민기자   이명선
인생에서 한 달의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새털처럼 많은 날들'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 날 중에 그저 '딱 한 달'이니 잠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그 시간동안 편치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일부러 찾지도 않았다. 외면하며 아무렇지 않다고 보낸 시간들, 결국 만 한 달을 채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찾았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일까? 수원시의 시민기자가 되고 기사를 올리지 않고 보낸 시간이 만 한 달이란 이야기다. 그게 별일일까 하겠지만 내겐 별일이다. 
작년 가을에 시민기자라는 명분에 매달 십여 개의 글을 올리며 시험점수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다음날을 기다리며 올라온 기사를 읽어보았다. 제일 먼저 자신의 기사를 읽고 그 다음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며 자책도 하고, 한탄도 했지만 숙제를 끝마친 후의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그 희열이 좋았다.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되어 '오늘은 어떤 소재의 글을 쓰면 좋을까'로 시작하고 끝을 맺을 정도였다. 본의 아니게 그 생활을 끊으니 금단현상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막상 새로이 시작하려는 두려움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더욱 유명소설가의 표절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써도 되는지 괜히 오금저린 사람이 되어 아예 몰랐던 때로 돌아가 잊은 듯 살아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수원뉴스에서 차지하는 내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호들갑을 떠냐며 스스로에게 반문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다. 인생의 가치를 논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성실함'이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야 하고, 지각, 결석은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나만의 원칙이 있었는데 이제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다'는 쪽으로 기우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간 딸이 엄마, 아빠를 정식으로 초대했다. 만 5년이 넘어가는 생활동안 단 한 번도 아이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보러 가지 않았다. 먹고 사는 일도 급했고, 두 아이를 가르치려면 단 며칠의 휴가도 내기가 어려웠다. 집안 환경이 넉넉하여 보낸 유학이 아니었기에 아이도 일을 할 수 있는 법정나이가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 아이가 졸업을 하고 취업이 되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겠다며 덜 바쁜 지금 꼭 와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14시간의 비행이 필요한 나라로 남편과 같이 떠났다. 한 직장에서 20년 넘게 일을 한 남편도 처음으로 장기간의 휴가를 내고, 나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아이를 보고 싶음이 첫 번째이나 지금 아니면 언제 우리가 외국을 갈 수 있을지, 더 나이를 먹는다고 생활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았다. 선망으로 바라보던 물 건너의 세상을 보고 오면 사는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도 함께 말이다. 

짐을 싸는 일도 쉽지 않고, 장시간의 비행기를 타는 일도 고역이었지만 기내식과 몽글거리는 구름을 타고 비행을 하는 일만큼은 최고였다. 솟은 산 위로 하얗게 덮인 눈을 바라보며 여름인 우리나라와 반대의 계절임을 눈으로 보는 것이 신기했다. 
넓은 평원에 펼쳐진 그림같은 집들이 보이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진 호수에 손을 담가 짙푸른색을 건져보고도 싶었다. 태평양을 지나면서 표시되는 날짜 변경선이 삐뚤 수밖에 없음이 이해되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상 위의 세상을 구경하느라 창문을 연신 열었다 닫는 촌극을 벌이는 우리는 영락없는 초짜여행객이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 달이 금방_3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구름
 
그러나 그것도 잠시만 좋을 뿐이다. 14시간이 그리 긴 시간임을 처음 알았다. 때맞춰 나오는 기내식을 먹고 나면 어두워지는 조명, 그럼 사람들은 잠을 잔다. 다시 밥 먹고 잠을 재우는데 사육 당한다는 표현이 딱 맞다. 어두컴컴한 조명이건만 잠이 오지 않아 눈뜨고 두리번거리는 이들은 우리 부부밖에 없다. 

그래도 도는 시계바늘 덕에 토론토 공항에 도착은 했다. 까다로운 출입국 심사, 복불복으로 길어질 수 있다 했는데 딸이 미리 보내준 여러 가지 서류로 짧게 끝났다. 짧은 영어를 써볼 겨를도 없이 무사통과로 끝나고 겨우 '땡큐~~' 한마디만 했다. 
밖으로 나오니 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과 딸은 한참이나 서로를 안고 우는데 나는 '창피하게 이산가족 상봉 티내지 말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드디어 물 건너 왔으니 여기 식대로 한 번 안아보는 것으로 끝내자'는 내 말에 울다 웃는 것으로 캐나다 입성기념식이 끝났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 달이 금방_4
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한 도시
 
토론토 공항에서 아이가 살고 있는 지역까지 가는 30여 분의 시간동안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진짜 이곳에 왔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고, 회색빛의 건물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곳, 삭막함이 먼저 다가오는 이곳에 내 딸이 살고 있고, 우린 그 딸을 보러왔다.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는 순간 어지럽게 보이는 수많은 영어들의 아우성이 날 깨운다. 그래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영어를 써야 하는 이곳에 내 두 발이 있다. 얼마나 고군분투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언제 영어를 써봤는지도 아득한데 어찌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새로운 기대감이 더 크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 달이 금방_1
편안함과 자유로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한 달이 금방_2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자전거타기도 부녀에겐 어려웠다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 가치관 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며 얻어지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비록 받고 있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던 일, 시민기자로 미미한 글을 쓰고 있는 일들을 잠시 멈춰야 했지만 딸과 보내는 시간과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봄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시인의 시처럼 나도 그렇다고 우겨본다. 다시 되돌아온 자리에서 그동안 소홀했던 일들을 성실함으로 되찾는 일이 먼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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