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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
2016-08-19 16:31:17최종 업데이트 : 2016-08-19 16:31: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전기 누진세 무서워 식구들 한 두 명은 들어온 후에야 에어컨을 켠다. 그러니 대부분의 시간을 선풍기 바람에 의존하는 셈인데 사상 초유의 더위로 인해 뭔 일을 해도 좀체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 더위도 피할 겸 기분 전환도 할 겸해서 7월말 나만의 휴가를 다녀오고, 이어 가족여행을 떠나 잠시 머리를 식히기도 했지만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내일이면 사그라지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아침이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장기간의 폭염은 주부들의 생활패턴까지 바꿔 놨다. 국과 찌개는 끓여봤자 누구하나 숟가락 꽂는 이 없기에 냉국 한 가득 만들어 작은 그릇에 나눠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장보기는 해가 넘어간 지 오래된 한밤중 24시간 마트를 이용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은 무조건 시원한 백화점 안을 선택한다. 아무 일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니 책 한 줄 읽기도 버겁기에 집안일 끝나기 무섭게 집을 나선다.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1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1

낮 온도 35도를 기록한 지난 금요일에도 그랬다. 더위팔기라는 핑계로 나와 남편은 전북 고창 선운사의 여름을 맞으러 갔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현상으로 괴로울 테니 선운사 계곡물에 발도 담겨보고, 오래간만에 시골 풍경도 접하면서 장기간의 폭염으로 찌들었던 마음도 씻어내고 오자는 심사였다. 

고창 선운사하면 단연코 동백나무 숲이며, 미당 서정주 선생의 '선운사 동구'를 떠올린다. 대웅전 뒤란 동백나무 숲의 기품이야 두말할 나위 없이 절경이다. 이 고장 출신 시인은 부친이 세상과 등지자 고향을 찾았다가 '선운사 골째기로...'시작하는 절창(絶唱)을 남겼다. 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절집의 기품을 만나보기도 전에 머릿속에 떠올리며 풍경을 갈무리한다.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2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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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3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3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호남 땅 대부분의 사찰들이 원효, 의상, 자장 등 신라의 고승들이 세웠다는 창건설화와는 달리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도솔산 선운사' 입구를 지나 10분정도 걸어 들어가면 미당시비와 만난다. 서정주 시인이 쓴 육필원고를 그대로 새겼다는 '선운사 동구', 1974년 5월 지역의 한 단체가 '향토를 빛내주신 한국의 시성 미당 서정주님의 높은 뜻을 모시고자 정성을 다해 세웠다'는 글귀가 새겨진 시비가 길모퉁이에 세워져 오가는 이들을 맞이한다.

동백꽃하면 제주도와 울릉도, 여수 오동도 등이 이름 높지만 시인의 탁월한 시적 감수성으로 그린 연유 때문인지 고창선운사 동백꽃을 더 높이 치는 이들이 상당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대략 500년은 족히 됐다는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이곳 동백나무 숲에 서 본 이라면 매료되고 만다.
그런데 시인도 때가 일러 꽃을 보지 못했듯 이곳은 여느 곳과는 달리 늦게 핀다. 보통 4월말이나 되어야 절정을 이루는데 요즘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자칫하다간 놓치고 만다.

폭염을 피해 달려온 인파가 계곡 물길을 따라 차지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물빛은 별로인데, 온가족이 물놀이하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을 준다. 주차장 입구 편의점에 산 먹거리를 바리바리 들고 일주문으로 향했다. 미당시비를 만나 또박또박 읽어보기도 하고, 그늘진 곳 장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동창생 모임인지 50대 초반 중년들이 길 한가운데서 웃음꽃을 피우며 점프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우정과 추억은 뜨거운 햇살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는지 각도를 바꾸며 연신 포즈를 취한다.

그들을 뒤로 하고 그늘진 에코 길로 빠진다. 어느새 사천왕문 앞이다. 사람도 많은데다가 전각도 쫌 더 들어선 것 같아 복잡해 보였다. 30여 년 전부터 꽤나 드나들었던 사찰이지만 '최근엔 언제 다녀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게 다가왔다. 입구에서 보이는 기와불사 천막으로 다가가는데 와! 만개한 여름날의 목백일홍이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인공적으로 색을 내려야 낼 수도 없는 자연의 색이 나의 눈을 멀게 했다. 꽃나무 그늘아래 서니 솔솔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들며 더 이상의 낯섦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4
고창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 그늘의 피서_4
 
선운사를 찾는 날이면 간간이 다녀왔던 뒷산 낙조대며 국사봉, 도솔암 석각여래 등은 이번에 포기하기로 한다. 대웅전 주변을 돌아본 후 마지막 하이라이트 명소 동백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땅의 연륜이 느껴지는 노목들이 축대 위로 병풍처럼 서서는 선운사 절집을 온몸으로 품어내고 있었다. 튼실하고 윤기 반지르르한 진초록의 잎들은 여전히 힘 있고, 사이사이로 꽃 떨어지고 난 자리를 메운 붉디붉은 열매들이 불을 환히 밝혀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다. 위대한 화가의 명화를 보고 있는 듯 한동안 감동에 몸을 맡겼다.

동백나무 숲을 등지고 앉는다. 사찰 경내를 눈에 담는다. 잠시 눈을 감는다. 동학농민전쟁의 이야기를 남긴 암각여래상 감실과 비기 이야기, 고창 출신 미당 시인 이전의 백파 선사와 추사 김정희와의 선(禪)논쟁, 그리고 초의 선사, 추사체의 백미라는 백파비문, 석전스님 박한영의 인연 등 선운사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굳이 보물들을 열거하지 않아도 거찰로서의 위용은 충분하다. 
'선운사 골째기' 그 어디쯤에서 피서(避暑)를 했다. 당분간은 그 효과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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