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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자격증 땄지만..내 유일한 고객은 시어머니
2016-11-24 19:42:29최종 업데이트 : 2016-11-24 19:42:29 작성자 : 시민기자   김소현
오래된 꿈이 있었다. 헤어디자이너다. 20대 중반쯤부터인가 막연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에 대학에 입학해 다행히도 전공을 살려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괴리감도 컸다.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다시금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다시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다니 참으로 답답하지만 나름 진지했다.
그러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꿈이 기억났고 퇴근 후 우선 필기시험부터 준비했다. 먼저 필기 합격 후 실기시험을 준비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필기에 합격했고 실기시험을 위해 미용학원에 찾아갔었다. 주변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학원은 비싼 학원비와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녀야 하는 등의 이유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 시간은 지나갔고 직장생활에도 적응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게 되었다.

10
년이 넘게 매일 쳇바퀴 도는 일상에 몸도 마음도 지칠 때쯤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직장을 휴직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 번 해보리라'. 막연하게 꿈 꿨던 일들을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경험하고 싶었다.
휴직 후 바로 다음날 미용학원 수강신청을 했다. 그렇게 매일 학원에 다니며 헤어국가자격증 취득을 위해 노력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커트하고 파마를 말았다. 하루 종일 서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11초로 시험의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역시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3개월 만에 국가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자격증만 취득하면 무언가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자격증 취득 후 더 많은 배움과 노력이 필요했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수련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헤어자격증을 따고자 한 것은 헤어디자이너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한번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능력이 된다면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미용일이 욕심이 나서 그 후 1년간 미용관련 자격증을 몇 개를 더 땄다. 그리고 요양원과 장애인시설에 봉사활동도 잠시 동안이지만 나갈 수 있었다.
서투른 솜씨로 가족들의 머리를 컷하고 파마를 해주기도 했다. 아들은 언제 머리카락 잘라 주느냐며 엄마의 실력을 궁금해 했다. 식구들을 상대로 한 미용솜씨는 당연히 미용실 보다 나을 리 없었다. 집안에 머리카락이 날린다는 핑계로 가위와 미용도구들은 상자에 곱게 모셔놓게 되었다.

미용 자격증 땄지만..내 유일한 고객은 시어머니_1
미용 자격증 땄지만..내 유일한 고객은 시어머니_1
그 후로 오랬동안 잠자던 미용도구들이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바로 시어머니 덕분이었다.
"이번 주 일요일 제사에 일찍 와서 파마 말아 줄 수 있니?"
"네 파마약 챙겨 갈게요."
 얼마 만에 온 고객인지 내심 반갑다. 매일 출근하고 주말에도 쉬지도 못하고 제사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 머리를 말았다. 하지만 힘들지 않았다.
어머니 머리에 파마 액을 뿌려 루프로 말고 있는데 아들이 들어온다. 그러더니 곁에 서서 고무줄과 루프를 집어 주며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어 엄마, 그러고 있으니까 되게 있어 보인다. 미용실 같아. 신기하고 재미있어."
 
파마가 잘 나와야 한다고 오래 방치한 탓인지 다행히도 어머니의 머리는 뽀글뽀글 파마로 완성되었다
"
며느리, 수고했어. 잘 나왔네." 하며 손자들 용돈을 주신다.
누구는 힘들게 자격증은 왜 땄냐고도 하고 누구는 장롱면허라도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한다.
지금 당장 무엇이 되기 위한 뚜렷한 목표가 없더라도 내가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때 나중에 그것들이 모여 무엇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그 일을 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일을 낙()으로 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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