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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 어귀에서 찾은 미용장인
2017-02-23 16:00:48최종 업데이트 : 2017-02-23 16:00:48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요즘 동네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기는 게 미용실, 프랜차이즈 빵집이란다. 전에 살던 집 인근(권선구 곡반정동 일대)도 그랬다. 영통 삼성반도체와 중소기업 들이 근처에 있어 원룸 밀집 지역이었는데, 골목 사이사이 크고 작은 미용실이 참 많았다. 2030세대들이 자주 찾는 듯했다. 

나 역시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직원을 두지 않고 예약제 중심으로 혼자 하는 분이셨다. 가게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여주인 나이가 어려 보여 '괜찮을까' 우려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그녀와 몇 마디를 나누니 의심은 사라졌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을 무렵 신상 파악에 나섰다. 나름 큰 규모의 미용실을 어떻게 운영하게 됐는지, 보통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들어가서 스텝(인턴 점원)으로 시작하지 않는지 등등 하나씩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불편한 기색없이 들려줬다. 

"전 대학을 안 나왔어요. 고등학교 때 미용 자격증을 땄고 바로 대형 미용실에 들어가서 밑바닥부터 일을 했어요.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었죠. 다행히 적성에 맞았어요. 단골손님도 늘고 디자이너도 나름 일찍 됐거든요. 제가 이거 차린 이유요? 몇 달 전까지 일했던 곳에서 월급도 밀리고 나이가 어리다고 경력을 무시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나와서 가게 알아보고 한 달 만에 준비해서 차린 거 에요. 혼자 하니 바쁘지만 마음은 참 편하네요. 제가 다 모아둔 돈으로 차린 거예요. 물론 조금 대출도 받았지만요." 

동네 골목 어귀에서 찾은 미용장인_1
동네 골목 어귀에서 찾은 미용장인_1

세상의 쓴 맛, 단 맛을 또래보다 먼저 경험했다 길래, 나이가 궁금했다. 아뿔싸, 알고 보니 나랑 동갑! 그런데 사회생활은 한 참 먼저 한 선배! 그녀의 빠른 의사결정력, 추진력과 행동력, 특유의 유쾌한 성격은 나를 홀렸다. 물론 미용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기자라고요? 우와 그럼 아는 것도 많겠다!"라고 말하는 그녀였지만, 내가 봤을 때 실속 있는 건 그녀였다.

신랑에게 그 집을 추천했다. 신랑은 부대 사람 모두 그 집이 아닌 옆집을 간다했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짙은 화장을 하는 여직원이 많은 곳이었다. (대신 자기는 부대 미용실을 이용한다는 점을 은근 강조했다.) 기가 찼다. 뭐 취향이야 다르겠지만, 진정한 기술자를 몰라보는듯해서 아쉬웠다.

이사 후에도 머리를 자주 잘라야하는 직업군인인 신랑과 함께 온 동네를 휩쓸고 다녔다.
마음에 드는 미용사를 찾기 위해. 프랜차이즈 미용실보다 전통시장 안에 있는 미용실, 개인이 하는 곳을 주로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찾아가는 곳마다 예약이 꽉 차서 혹은 생각보다 비싸서 등의 이유로 허름한 미용실을 갔는데 여기에 보석이 있었다. 미용경력만 50여 년. 한 자리에서 30여 년. 할머니 미용사셨다.

미용실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쇠고데기(옛날 미장원에서 사용했던 쇠로 된 도구)까지 있었다. 아직도 쓰신다 했다. 훨씬 오래가고 좋다고 극찬하는 할머니 미용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그 옛날, 서울에 가서(유학이나 마찬가지셨단다.) 미용을 배우고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의 머리를 책임지셨단다. 미용 봉사활동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했지만, 지금은 몸이 약해져 힘에 부쳐 그만 뒀다고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음에 행복하시다고. 
실제로 미용실은 응접실, 동네 아지트였다. 그 후미진 곳에 계속해서 단골손님들이 몰려왔다. 신랑 미용 후 현금 8천원을 냈더니, 할머니는 2천원을 도로 우리 아이 세뱃돈이라며 꽉 쥐어주셨다. 따뜻한 인간미에 울컥!

골목 안에서 만난 미용실에서 삶의 풍파를 견뎌낸 미용사들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 빠른 손놀림, 세상 살아가는 지혜 등 배울점이 많았다. 4차 혁명이 온다고 해서 단순 암기의 시대는 갔고, 창의성이 주목받는다 하는데 '머리 자르는 손기술'은 어떨까도 생각해봤다. 두 아들(큰아들-신랑, 작은아들-대튼이)을 키우니까 바리깡이라도 사서 연습하면? 도망가려나?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 몇 십년 후에는 내가 이미용봉사를 하게 될 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닌가?

아! 기사를 통해 또 한명의 장인을 발견했다. 얼마전 제7회 KBCA 전국이용기능경기대회에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상을 받은 신태민(바버샵 대표) 씨다. 1997년 수원 화서역 앞 아파트 상가에 효원이용원이란 이름으로 첫 가게를 열었다는 이 분은 수원시 기술 강사로 18년째 활동 중이란다. 이제 국내에는 40여명밖에 없는 이용 기능장이기도 하단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어떻게 깎아야 할지 설계 도면이 나온다"하니 신랑을 데리고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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