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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산과 숙지산 답사 이야기
2020-10-28 07:15:28최종 업데이트 : 2020-10-30 10:27:3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여기산에 있던 돌 뜨던 터를 찾아서

여기산에 있던 돌 뜨던 터를 찾아서


지난 20일 화성연구회 모니터링 위원회 회원들이 수원화성 돌 뜨던 터를 답사했다. 오전에 모여 여기산을 답사하고 점심식사 후 숙지산을 답사했다. 모니터링 위원회에서는 수원화성과 주변 시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수원화성이 온전하게 보존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기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여기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수원화성 화홍문, 방화수류정, 장안문, 화서문, 각루, 포루 등 시설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화성사업소의 협조를 받아 팔달문과 봉돈, 동북공심돈 내부 상태를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모니터링 중 구조적인 문제, 균열, 붕괴 등을 발견하면 즉시 보수 및 시정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조하기도 한다. 수원화성 주변의 영화정도 모니터링의 대상이며, 사직단터, 영화역 등 복원되지 못한 시설에 대해 위치를 고증하고 연구한다. 1년 동안의 모니터링 결과는 문화재청에 보고서로 제출해 향후 복원이나 보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숙지산 입구, 정조대왕의 전교를 새긴 비

숙지산 입구, 정조대왕의 전교를 새긴 비


화성성역의궤에는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돌을 모두 다섯 군데에서 캤다고 기록했다. 숙지산, 여기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이다. 화성부의 서쪽 5리 쯤 되는 공석면에 숙지산이 있고, 그 서쪽으로 5리 되는 곳에 여기산이 있다. 권동은 여기산 맞은편에 있고 모두 돌이라는 한글 정리의궤 기록과, 부의 서쪽 5리에 앵봉이 있고 건릉과 현륭원의 산릉 공역 때 석물을 이곳에서 취해 떠냈다는 기록으로 봤을 때 현재 축만제 옆 철도 근처에 있는 영광아파트 주변일 것으로 추정된다.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서성의 터를 닦던 날 팔달산 왼쪽 등성이에서부터 남쪽으로 용도에 이르기까지 6백-7백보가 모두 석맥으로 되어있어 제자리에서 캔 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모두 합치면 6곳에서 돌을 캔 것이다.

숙지산 돌은 강하면서도 결이 가늘고, 여기산 돌은 부드러우면서도 결은 거칠었다. 권동의 돌은 여기산과 같았으나 결이 조금 더 가늘었다. 팔달산의 돌은 숙지산에 비하면 더 강하고 여기산보다는 더 거칠었다. 돌을 캔 숫자는 숙지산 돌이 약 81,100여 덩어리, 여기산 돌이 약 62,400여 덩어리, 권동의 돌이 약 30,200여 덩어리, 팔달산 돌이 약 13,900여 덩어리였다.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을 관찰하는 회원들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을 관찰하는 회원들

 
여기산 돌 뜨던 터에 가려면 옛 농촌진흥청 뒤 여기산으로 올라가 우장춘 박사 묘역을 지나야 한다. 조금 더 오르면 둘레길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바위에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다. 둘레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걷다보면 길가 비탈면에 돌 뜨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외 대규모로 돌 뜨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여기산 서쪽 구릉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의 선사유적이 있었다. 구멍무늬토기가 출토된 청동기시대 집터와 경질무문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가 출토된 원삼국시대 집터가 확인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축만제 주변 지대에서 벼농사를 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유적을 발굴 후에 보존하지 않고 덮어버려 현재는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여기산 선사유적지는 2005년에 경기도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되었는데 실체도 없는 유적이라 공허할 뿐이다.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숙지산에 있는 돌 뜨던 흔적

 
숙지산 입구에는 '정조대왕이 전교를 내리시어'라 쓰여 있는 비석이 있다. "면 이름을 공석(空石)이라 하고 산의 칭호를 숙지(熟知)라 했으니 이른바 예부터 돌이 없는 땅이라 일컬어졌는데 오늘날 갑자기 셀 수 없이 단단한 돌을 내어 성 쌓는 용도로 됨으로써 돌이 비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암묵 중에 미리 정함이 있었으니 기이하지 아니한가!"라는 1796년 1월 24일자 전교가 숙지산이 돌 뜨던 터였음을 안내하고 있다.

숙지산에 있는 문화재 안내 간판, 훼손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

숙지산에 있는 문화재 안내 간판, 훼손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



숙지산에는 물 놀이터 뒤, 다산도서관 뒤, 영복여자고등학교 뒤 등 여러 곳에 돌 뜨던 흔적이 남아있다. 전 KT&G 맞은편의 대규모 채석장은 입구가 쇠사슬로 막혀있어 들어갈 수 없고, 다른 곳은 안내판이 없어 유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의 안내가 없으면 돌 뜨던 터를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산도서관 앞 숙지공원 있는 문화재 안내 간판, 이 간판을 보고는 돌 뜨던 터를 찾아갈 수 없다.

다산도서관 앞 숙지공원 있는 문화재 안내 간판, 이 간판을 보고는 돌 뜨던 터를 찾아갈 수 없다.

 
김남옥 수원시 문화유산 해설사는 "숙지산 돌 뜨던 터 안내 간판이 다산도서관 앞 숙지공원에 있어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여기산에는 아예 안내간판이 없어 찾아갈 수 없어 아쉽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돌 뜨던 터를 찾을 수 없으니, 안내간판을 추가 설치해 지도로 제작 표시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활성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숙지산 화성 채석장'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과 연계해 유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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