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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배움의 산실 서둔야학지를 가다
서둔야학 유적지에서 찾은 보석같은 이야기
2021-04-12 16:26:50최종 업데이트 : 2021-04-13 15:24:21 작성자 : 시민기자   김효임
'서둔야학 유적지'
지금은 탑동시민농장으로 탈바꿈한 옛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 부속실험목장 한 쪽 작은 알림판에 마음이 간다. 

서둔야학 유적지 알림판

서둔야학 유적지 알림판


탑동시민농장은 2018년까지 운영했던 당수동시민농장에 이어 2019년부터 시민에게 개방한 주말농장이다. 도심 속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흙의 소중함을 느끼고 텃밭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농작물을 재배하며 소소하게 식물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며 소확행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무엇보다 바람이 좋고 너른 풍경이 좋고 공기가 좋아 자주 산책을 하는 서둔동의 명소다. 

앙상하게 남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울농대 옛 캠퍼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 그 허름한 건물잔해보다 높게 솟아버린 아름드리나무들과 눈이 시원해지는 탁 트인 풍경이 더 아름답다. 농장 안에는 연꽃연못, 갈대숲길, 메타세콰이어 길 등이 조성돼 산책이 심심하지 않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넓은 벌판을 볼수 있는 수원탑동시민농장

넓은 벌판을 볼수 있는 수원탑동시민농장


탑동시민농장과 서울대수목원사이 아주 작은 옛 건물이 바로 서둔야학 유적지다. 서둔야학은 그 옛날 집이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서울농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무료교육을 해주었던 곳이라고 한다.

안내판의 짧은 내용을 읽으며 '청소년 대상 야학활동', '상록수 정신 계승', '교사와 학생이 직접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했다'는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실화영화를 만난 것처럼 마음의 울림 같은 것을 느꼈다.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배움의 열망이 가득한 아이들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빛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한 웃음으로 봉사하는 소설 같은 청년들의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작은 '서둔야학 유적지'알림판에서 보석 같은 진실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수원 탑동 시민농장 내에 위치한 서둔야학 유적지

수원 탑동 시민농장 내에 위치한 서둔야학 유적지


서둔야학 건물의 외관은 그냥 평범한 작은 건물이다. 단층으로 지은 니은자 모양 건물과 창고나 화장실처럼 보이는 건물이 마당너머에 있었다. 문이 닫혀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학교라고 하기엔 작은 규모다. 하지만 누군가의 꿈이 자라고 선함과 순수를 무기로 젊은 서울대학생들이 참교육을 실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이라는 박애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그녀는 서둔야학을 이렇게 기억했다. 처음에는 학교건물이 없어 서둔교회, 농촌진흥청 강당, 탑동 마을회관 등을 전전하다가 1964년 서울농대의 낡은 계사를 빌려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붕은 짚으로 덮여있었고 벽은 토담 교실 바닥에는 짚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깔고 책걸상도 없이 털썩 주저앉아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1965년 봄부터 학교를 새로 짓기로 시작하고 빌려 쓰던 계사자리 땅을 구입하고 대지 50여 평, 건평 30여 평의 지금의 건물을 야학교사와 아이들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시멘트를 배합하여 기초공사를 직접 하고 야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마다 돌을 나르고 리어카를 빌려 목재나 흙을 담아 나르기도 했다고 한다. 젊은 야학 교사들은 학교를 짓는 동안 매일 작업복과 운동화 워커를 신었으며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다닌 것이 아니라 서둔야학에 다녔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만큼 서둔야학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참을 사랑하자.'
'시처럼 음악처럼 살자.'
'우리나라, 우리민족을 사랑하자.'
라는 교육방침을 가지고 학생들에게는 '으뜸상', '버금상', '더 잘함상', '애씀상' 등 순우리말로 상장이름을 손수 붓으로 적어 학생들의 이름에 꼭 '님'자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서둔야학 유적지

서둔야학 유적지


서둔야학은 1954년 서둔교회에서 시작하여 1965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땅을 구입하고 직접건물을 지어 1983년 서둔야학이 중단될 때까지 1천여 명의 학생과 300여명의 야학교사가 거처 간 지역공동체였다. 서둔야학은 배움이 고팠던 사람들에게 가뭄에 단비였고, 깊은 산 옹달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정신적 지주이자 지역문화의 산실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둔야학, 탑동시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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