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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봉돈의 역할
수원화성 봉돈은 용인 석성산 봉수와 화성 서봉산 봉수의 신호를 받기만 했다
2021-07-10 20:09:14최종 업데이트 : 2021-07-12 13:17:4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봉돈, 자세한 기록과 그림, 설계도가 남아있다.

수원화성 봉돈, 자세한 기록과 그림, 설계도가 남아있다


지난 4월 용인시에서 126년 만에 원삼면 건지산에 있는 '건지산 봉수'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 봉수제도가 사라진 후 멸실 된 상태로 건지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고 추정되었는데 4차에 걸친 현장조사를 통해 건지산 정상에서 남서쪽 아래 약 300m 거리의 능선에서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봉수 전문가인 김주홍 박사는 "건지산 봉수의 연조는 석성산 봉수 방향으로 설치돼 있다. 보통 봉수 중앙에 배치되는 것과는 달리 방호벽에 덧붙여 연조를 조성하는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태이다.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해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서현 학예연구사는 "건지산 봉수를 발견하고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창호 교육문화국장 덕분이다"라고 말한다. 이창호 국장은 "용인시에 있는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는데 문헌 기록에 있는 건지산 봉수터를 찾는 것은 용인시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2020년 6월에 문화재팀장, 이서현, 김대순 학예연구사와 건지산 봉수를 찾아 나섰는데 위치를 잘못 추정해 못 찾았다. 관련기록을 검토하고 주변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지난 4월에 봉수터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건지산 봉수 찾은 배경을 설명했다.

용인 건지산 봉수터 위치, [사진 출처] 용인시 이서현 학예연구사 블로그

용인 건지산 봉수터 위치, [사진 출처] 용인시 이서현 학예연구사 블로그



건지산 봉수 원위치 발견으로 '석성산 봉수터'와 함께 용인시 관내의 2개 봉수터를 모두 확인했다. 석성상 봉수터는 지난 2017년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해 지난해 경기도 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되었다. 건지산 봉수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담당자들의 문화재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봉수는 고대로부터 변방의 급한 소식을 한양에 알리는 국가의 통신제도이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로 신호를 보냈다. 1808년에 편찬한 '만기요람, 군정 1, 봉수(烽燧)' 편에 의하면 '평시에는 횃불이 하나요, 적이 나타나면 횃불이 둘이요, 국경에 가까이 오면 횃불이 셋이요,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이 넷이요, 교전 상태에 들어가면 횃불이 다섯이다'라고 기록하면서 조선시대 5개의 봉수 노선을 지명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제1로는 함경도 경흥 서수라보에서 출발해 양주의 아차산 봉수로 온 것을 목면산 동쪽에서 첫 번째 봉수에서 받았다. 직로봉수 120개소, 사잇봉수 60개소가 있다. 제2로는 경상도 동래 다대포에서 출발해 용인의 건지산 봉수, 석성산 봉수를 거쳐 광주의 천림산 봉수로 온 것을 목면산 동쪽 두 번째 봉수에서 받았다. 직로봉수 40개소, 사잇봉수 123개소가 있다.

용인 건지산 봉수터, [사진 출처] 용인시 이서현 학예연구사 블로그

용인 건지산 봉수터, [사진 출처] 용인시 이서현 학예연구사 블로그


제3로는 평안도 강계 만포진에서 출발해 모악의 동쪽 봉수로 온 것을 목면산 동쪽 세 번째 봉수에서 받았다. 직로봉수 78개소, 사잇봉수 22개소가 있다. 제4로는 평안도 의주 고정주에서 출발해 모악의 서쪽 봉수로 온 것을 목면산 동쪽 네 번째 봉수에서 받았다. 직로봉수 71개소, 사잇봉수 35개소가 있다. 제5로는 전라도 순천 방답진에서 출발해 수원을 거쳐 양천의 개화산 봉수로 온 것을 목면산 동쪽 다섯 번째 봉수에서 받았다. 직로봉수 60개소, 사잇봉수 34개소가 있다.

봉수의 최종 목적지는 목면산인데 오늘날 남산이다. 목면산에는 북쪽에서 3곳, 남쪽에서 2곳 등 5곳에서 오는 봉수의 신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5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1895년 봉수제도가 공식적으로 폐기되면서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존재했던 1,000여 개 이상의 봉수는 방치된 채 사라져갔다.

수원화성 봉돈은 수원화성 축성 중에 설치했다. 수원화성 봉돈에 대해서는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일성록 등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봉돈의 역할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수원 유수 조심태는 "수원부는 행궁을 모시고 있으니 중요성이 특별합니다. 더구나 또 성첩이 완공되었으니 관방(關防)은 더욱 긴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동성(東城)과 서봉산(棲鳳山)에 중간 봉대를 설치하여 동쪽으로는 용인(龍仁) 석성산(石城山)에 있는 육지의 봉수와 호응하며 서쪽으로는 수원부 경내에 있는 흥천대(興天臺)의 해안 봉수와 의준(依準)하여 급변(急變)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봉대를 설치하고 장졸을 정하여 이번 9월 25일부터 시작하여 봉화를 올려 서로 의준할 수 있도록 병조에 공문을 보내고 용인현에도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보고하자 그대로 시행하라고 했다.

한글 정리의궤의 수원화성 봉돈, 평상시에는 남쪽 화구에서 일정시간 횃불이 올라갔다.

한글 정리의궤의 수원화성 봉돈, 평상시에는 남쪽 화구에서 일정시간 횃불이 올라갔다


수원화성 봉돈은 제2로의 용인 석성산 봉수와 제5로의 서봉산 봉수의 신호를 받는 데 목적이 있다. 석성산의 육로 봉화와 서봉산의 해로 봉화에 횃불이 켜지면 수원화성 봉돈에서도 그 신호를 보고 횃불을 켜는데, 평상시에는 남쪽의 한 둑에만 횃불을 올린다. 화성 백성들은 횃불 하나를 보면서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할 수 있다. 횃불 하나는 평화의 상징인 것이다.

수원화성 봉돈은 신호만 받고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을까? 보냈을 수도 있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위 기록에서 용인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은 신호를 받기만 하는 수원화성 봉돈에서 봉화가 먼저 올라가면 용인 석성산 봉수에서 받아서 한양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으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수원화성 봉돈은 행궁의 중요성으로 인해 목면산 봉돈처럼 받기만 하는 역할과 최초의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동시에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원화성 봉돈에서 최초로 올린 신호를 석성산 봉수, 광주 천림산 봉수를 통해 목면산 봉수에서 받았다면, 한양에서 봤을 때 수원화성에서 보낸 신호인지 경상도 동래 다대포에서 출발한 제2로의 신호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봉수 신호체계에 혼선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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