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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동산 거래는 어떻게했을까?
수원광교박물관 테마 전시회
2021-09-23 13:56:25최종 업데이트 : 2021-09-23 13:56:19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광교박물관 전경

수원광교박물관 전경



수원광교박물관은 광교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세워졌다. 1층에 있는 광교 역사문화실은 광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발굴유물 전시를 통해 광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소강 민관식실', '사운 이종학실'이 있다. 특히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사료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조선시대 고서, 고지도, 독도 관련 자료는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지난 6월 10일부터 2021 수원광교박물관 테마전인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운 이종학 선생의 기증 자료 중 조선시대 고문서, 관습조사자료를 통해 조신시대 부동산 거래와 공증절차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에 사고팔았던 논밭, 집, 산, 묘지, 염전, 어장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농업중심 사회였던 조선에서 부동산이 지녔던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주거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었는데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전통사회에서 부동산은 주거와 함께 생산 활동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오늘날보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조선시대 부동산 거래의 종류를 보면 매도인이 영구적으로 소유권을 매도하는 거래인 '영매', 경작지를 빌리고 그 대가로 생산물을 나누어 가지거나 임대료를 지급하는 거래인 '소작', 가옥을 빌리고 그 대가를 주었다가 돌려받는 거래인 '전세', 부동산을 맡기고 기한을 정하여 돈을 빌리되 못 지키면 처분토록 하는 거래인 '전당', 매수자에게 기한부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가 매도자에게 다시 반환되는 거래인 '환퇴', 비슷한 가치의 부동산을 서로 바꾸는 거래인 '상환', 주로 자손에게 혼례, 급제 등의 경사가 있을 때 대가 없이 소유권을 이전하는 거래인 '증여',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자손들이 부모의 재산을 나누어 가지는 거래인 '상속' 등 현재의 부동산 거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조선시대 부동산 계약서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조선시대 부동산 계약서



1722년 김진창의 아내인 밭 주인 홍씨가 최태악에게 밭을 매도하며 작성한 계약서인 '홍씨 밭 매매 명문'을 통해 조선시대 부동산 거래 중 밭을 매매한 사례를 볼 수 있다. 거래 대상은 '밭 반일갈이 12부(負)'를 동전 100냥에 매매했는데 거래 사유는 과부의 몸으로 생계가 곤란하다고 했다. 밭의 대략적인 위치와 세부 위치, 거래에 참여한 증인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반일갈이'란 하루갈이의 반으로 하루갈이는 한 사람이 소와 쟁기로 하루 낮 동안 갈 수 있는 대략적인 경작지의 단위이다. 단위의 기준이 노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밭 반일갈이 12부(負)'를 100냥에 매매했다고 했는데 현재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얼마나 될까?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밭 매매 계약서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밭 매매 계약서


조선후기 정부 주도의 동전, 은화 등 금속화폐 통용책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쌀(米), 삼베(布), 목면(木綿) 등의 현물화폐 또한 결제수단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화폐와 현물화폐 등 결제수단의 상대가치는 정부 정책, 전황, 농사의 풍흉 등의 변수로 일정하지는 않았다.

18세기 중엽을 기준으로 1푼은 동전 1닙, 1전은 10푼, 1냥은 10전이다. 상평통보 2.5냥의 가치는 풍년일 때 쌀 0.5섬(약 45kg), 흉년일 때 쌀 0.25섬(약 22.5kg)과 비슷하고 면포 1필(폭 8촌 x 길이 35척 = 37.4cm x 16.35m)과 비슷하다. 풍년일 때 상평통보 1냥으로 쌀 20kg 정도를 구매할 수 있었다. 현재 쌀 20kg의 소매가는 약 51,000원에서 64,000원 정도이다. 100냥이면 쌀 2,000kg이고, 600만 원 내외였다. 다만 도량형의 기준이 일정하지 않아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조선후기와 비교해보면, 화성성역의궤에는 쌀 1섬이 3냥 ~ 4냥,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1섬이 5냥, 화성지에는 1섬이 4냥 등 일정하지 않다. 쌀 1섬은 15말이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성역 감독은 매월 돈 12냥과 쌀 10말을, 성역 기술자들은 돈 6냥과 쌀 9두를, 모군(일일 노동자)은 매일 2전 5푼을 급료로 받았다. 모군은 4일을 일해야 쌀 20kg을 살 수 있었다.

'조선 부동산 움직이다' 전시회는 내년 1월 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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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광교박물관, 조선시대 부동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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