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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기념물 축만제와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승격한 항미정
2021-10-18 18:09:36최종 업데이트 : 2021-10-27 13:24:0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승격한 항미정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승격한 항미정


수원화성 서쪽에 있는 호수인 축만제 주변은 경관이 수려하다. 동서로 길게 있는 제방에는 100년이 넘은 잘생긴 노송이 몇 그루 있다. 북쪽에는 여기산을 오롯이 품고 있는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들판이 있다. 철새들의 낙원이며 해가 질 때면 호수에 비치는 여기산과 붉게 물든 저녁노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서호낙조(西湖落照)라 하여 오래전부터 수원8경이라 불렀다.

양택동 서예박물관장 글씨

양택동 서예박물관장 글씨



수원화성 축성 당시인 1795년에 만석거를 축조하고 국영농장인 대유평을 개척해 가뭄을 극복하고 크게 풍작을 거두며 농업혁명을 이룬 후 1797년에는 현륭원 근처에 만년제를 축조하고 1799년에는 축만제와 축만제둔(서둔)을 설치한 것이다. 축만제(祝萬堤)란 '천 년 만 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의미로 정조대왕의 깊은 뜻과 애민정신이 담겨있다. 축만제는 2005년 10월 17일 경기도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경기도기념물 축만제

경기도기념물 축만제



축만제 제방 서쪽에는 '축만제'라고 쓴 표석이 서 있다. 호방하고 힘이 넘쳐나는 글씨인데 서체 특징으로 봤을 때 축만제 축조 당시의 글씨로 보인다. 화성 관련 표석(괴목정교, 상류천, 하류천, 남창교)과 함께 2006년 12월 수원시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축만제 제방 서쪽 끝에는 수문이 있고 그 옆에 항미정(杭眉亭)이란 정자가 있다. 1831년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건립한 것이다. 소동파가 읊은 시구(詩句)인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 같다'에서 따다 지었다. 당대 지식인으로서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자존감의 표현이다. 항미정에 앉아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보라와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옛 선인들의 흥취가 느껴지는 듯 하다.

수원시 향토유적인 축만제 표석, 호방하고 힘이 넘치는 글씨

수원시 향토유적인 축만제 표석, 호방하고 힘이 넘치는 글씨



항미정은 1986년 4월 8일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가 2021년 4월 1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건립에 대한 자료가 명확하고 정자의 주요 구조부가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문화재자료로 승격한 것이다.

전에는 항미정 현판이 크기도 작고 서체가 옹졸하고 격에 맞지 않아 볼품이 없었다. 2019년 12월 서예박물관장인 근당 양택동 선생의 예서체 글씨로 바뀌었다. 정자의 품격에 어울리게 멋스럽다. 현판 글씨는 건물의 얼굴이다. 현판 글씨를 교체했을 뿐인데 항미정의 운치가 색다르게 보인다.

 

축만제 제방,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축만제 제방,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순종 황제는 1908년 10월 2일 기차를 타고 융건릉을 참배했다. 참배 후 축만제 제방을 지나 항미정에서 잠시 쉬면서 차를 마신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1920년 6월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을 규합해 구국민단을 조직했다. 항미정은 독립운동 결사체인 서호 구국민단을 조직하고자 비밀리에 준비모임을 하던 곳으로 독립운동 유적지이기도 하다.

축만제와 국영농장인 서둔은 조선 후기 농업생산 기반의 중요한 역할을 했고 농촌진흥청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 농업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배고픔에 고통받던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 후기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기도 하다.

축만제 제방 남쪽의 황금들판, 축만제 축조 당시에는 국영농장인 서둔이었다.

축만제 제방 남쪽의 황금들판, 축만제 축조 당시에는 국영농장인 서둔이었다


오늘날에도 축만제와 서둔은 품종개량을 위한 농업혁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제방 남쪽의 드넓은 서둔 들판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200년을 이어온 축만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6년 11월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됐다.

만석거와 함께 개척했던 국영농장인 대유평이 주택가로 변한 현재 축만제와 서둔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정조대왕이 꿈꿨던 수원의 정체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긴 축만제 제방을 걸으면 서둔 들판에서 풍년가가 들려올 듯하다.

축만제, 항미정, 서호낙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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