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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시절 추억 떠올리게하는 못골시장 손 칼국수
춘궁기 보릿고개 면해준 미국 잉여농산물 밀가루
2022-06-21 14:31:04최종 업데이트 : 2022-06-22 13:36:21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밀가루 반죽을 얇게늘려 몇겹으로 접어서 칼로 썰고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늘려 몇겹으로 접어서 칼로 썰고있다



우리가 먹고사는 음식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빵과 고기가 주식이라면 우리는 쌀밥과 김치가 주식이다. 서양인들은 일 년 내내 밀가루로 만든 빵과 고기를 먹지만 우리는 계절에 따라 주식(主食)과 부식(副食)도 달라진다. 지금은 쌀밥이 우리의 사계절 주식이긴 하지만 옛날에는 쌀은 가을, 겨울, 봄철 주식이고 부식은 김장김치다.

 

여름철 주식은 보리밥과 칼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이고 부식은 열무김치나 얼갈이 배추김치였다. 지금은 과학 영농의 발달로 채소류나 과일류 등 각종 음식들을 계절에 관계없이 사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연농법이라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식품만을 먹고 살았다.

쌀은 5월에 모를 심어 11월에 추수해 이듬해 봄까지 식량이지만 보리와 밀은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에 파종해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6월 하순에 수확해 7,8월 한더위에는 보리밥과 칼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으로 여름 나기를 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밀어 둥글대로 굴리고 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둥굴대로 굴리고 있다
 

친구들과 셋이서 못골시장 구경을 갔다가 시장 맞은편에 '손 칼국수집' 간판이 있어 들어갔다. 점심때라 열댓 평되는 홀이 손님들로 꽉 찼다. 대부분 여성으로 시장을 보고 점심을 때우려는 장꾼들이다. 주방 쪽에는 중국집 주방장 같은 옷차림을 한 40 대로 보이는 남성이 옛날 가정에서 하던 방식으로 밀가루 반죽을 둥굴대로 밀어 얇게 늘리고 몇 겹으로 접어서 칼로 썰어내느라고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 일행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칼국수(4,000원), 수제비(4,500원), 칼제비(4,500원), 잔치국수(3,000원) 등 옛날에 집에서 해 먹던 밀가루 음식은 다 있다. 지금 70~80대 노인들은 가난했던 청소년 시절 여름철이면 꽁보리밥이나 칼국수, 수제비, 칼(뚝) 제비, 국수를 먹고 살았던 옛 추억들이 있다. 옛날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몇 번씩 손으로 치대고 상에 놓고 둥글 대로 밀어가면서 얇게 늘려서 몇 겹으로 접어 부엌칼로 고르게 썰어서 펄펄 끓는 멸칫국물에 애호박을 따다가 채를 썰어서 넣고 끓여 먹었다.

 

요즘 칼국숫집을 가보면 기계로 면을 뽑아 면발이 가락국수처럼 둥글다. 쫄깃쫄깃하니 씹히는 촉감도 좋고 조개국물이라 국물 맛도 시원하니 입맛은 좋으나 옛날 칼국수 맛은 아니다. 어떤 칼국숫집은 칼국수를 끓이는 동안 밥공기에 보리밥과 고추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면 노인들은 옛날 보리밥 먹던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이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운다. 꿀맛이었다.


여름철이면 아낙네들은 도구통에 보리방아 찧는 게 일이었다. 보리는 물에 불려 찧어서 껍질을 벗겨내야 밥을 한다. 밀은 체로 곱게 내려 습기가 차지 않게 단지에 넣고 봉해뒀다가 점심때나 저녁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해 먹었다. 이런저런 추억담을 나누는데 칼국수가 나왔다. 애호박 대신 파를 썰어 넣고 김을 썰어 얹었다. 국물을 물어보니 멸칫국물이라고 한다.

멸치국물에 끓인 옛날 칼국수

멸칫국물에 끓인 옛날 칼국수

 

지금은 집에서 칼국수를 안해먹기 때문에 오랜만에 옛날 칼국수 맛을 보게 된다. 가난해서 쌀밥을 못 먹고 꽁보리밥이나 밀가루 음식만 먹던 시절에는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살기가 좋아져 삼시세끼 쌀밥만 먹다 보니 이제는 옛 추억을 찾아 보리밥이나 칼국수를 사 먹으러 찾아다닌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부잣집들은 쌀에 보리 한 줌을 넣고 밥을 짓지만 서민들은 정 반대로 보리에 쌀 한 줌을 얹어놓고 밥을 지었다. 어머니들은 밥을 풀 때 어른들 밥만 한 그릇 살짝 쌀밥을 푸고 쌀쌀 헤쳐서 꽁보리밥을 푼다. 그러면 어른들(할아버지 할머니나 아버지)은 밥 한술 떠서 어린 막내 밥에 올려놓으신다.

쌀밥은 입속에서 살살 녹는 것 같다. 그런데 꽁보리밥은 미끈미끈해 잘 씹히지도 않고 입속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대충 씹어 넘기다 보니 소화도 잘 안돼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서나 방귀만 풍풍 뀌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어른들 앞에서 방귀를 뀌면 하시는 말씀이"어! 그 놈 소화 한번 잘 시키네" 하신다.
 

여름철에는 대부분 점심이나 저녁 한 끼는 칼국수나 수제비 국수로 때웠다. 저녁에는 마당에 밀집 방석을 깔고 쑥을 뜯어다가 모깃불을 피우고 온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칼국수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어머니는 이따금 부채질 해주시지만 잠시일 뿐 더위가 식혀지지 않는다. 얼른 한 그릇 비우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바람쐬는 것이 상책이다.

 

여름철에 보리밥과 밀가루 음식을 함께 먹는 이유가 있다. 보리에는 단백질, 식이섬유, 칼륨 등 다양한 영양소가 있어 혈관질환 예방, 노화 예방, 골다공증 예방 등 10여 가지의 효능을 갖고 있으면서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으로 여름철에 보리밥을 먹는 것이다.

밀가루에도 단백질, 미네랄, 토코페롤, 비타민 B2  B6  B E 등 다양한 영양소가 있어 노화방지, 위장강화, 이뇨작용 등 8가지의 효능은 보리와 비슷한 반면 따끈따끈하게 먹는 더운 음식이다. 보리밥으로 낮아진 체온을 더운 칼국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보리밥과 칼국수는 영양을 보완하면서 체온 조절용 음식으로 궁합을 맞춘 여름음식이다. 이런 걸 보면 음식에도 계절 따라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로움을 알 수가 있다.

 

보리와 밀은 밭작물인데 값 싼 밭(밭1평 쌀1~2되. 논1평 쌀 6되~1말)데기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 보리밥과 밀가루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려운 사람들이 밀가루 음식이나마 마음대로 먹을 수 있던 시절은 5.16 군사혁명 이후부터다.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춘궁기(春窮期) 시절이었다. 가을에 수확한 식량은 이듬해 봄이 되면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쳐 여물지 않아 6월에 보리나 밀을 수확할 때까지 먹을 게 없어 끼니를 굶는 사람이 많아 생계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필자가 제대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여름철 식량인 보리가익어 벨때가 됐다

여름철 식량인 보리가익어 벨때가 됐다


혁명군은 의사결정 기구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고 혁명공약 6개항을 발표했다. 혁명공약 제 4항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인다" 라고 했다. 그 시대의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과 국민들의 생활고를 반영한 것이었다.

군사혁명 주역인 박정희 장군은 후일 대통령이 되어 미국을 방문해 식량원조를 요청했다. 미국은 480 양
곡(미 잉여농산물 밀과 밀가루)을 무상 원조를 했다. 정부는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는 밀가루 구호 배급을 주고 일반 영세민들은 장마철 산사태를 대비해 벌거벗은 산에 떼를 입히는 사방사업(沙防事業)을 전개하고 품삯으로 현금 대신 밀가루를 주었다.

이때부터 밀가루가 풍성해지자 어려웠던 사람들도 국수를 빼거나 수제비나 칼국수를 맘대로 해 먹고 간식으로 빵도 쪄먹는 등 보릿고개를 면하게 됐다. 나중에는 집집마다 밀가루가 넘쳐나 국숫집이나 빵집에 밀가루를 팔아 가용 돈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일명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지금도 박 대통령이 보릿고개를 면하게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칼국수를 먹으면서 어려웠던 시절 추억담을 나누는 기회가 됐다.

가을, 겨울, 봄철 양식인 벼가 누렇게익어 콤바인으로 추수를하고 있다

가을, 겨울, 봄철 양식인 벼가 누렇게익어 콤바인으로 추수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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