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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 답사
수원시의 관광 명소, 고궁의 정취와 색다른 운치가 있는 화성행궁
2023-03-16 10:51:41최종 업데이트 : 2023-07-20 11:15:59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후

후원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전경

후원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전경


15일 필자는 팔달구 행궁로에 있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을 시민들과 함께 답사했다.
평일 오후라 비교적 한적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오붓하게 구석구석을 답사하기에 매우 좋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지만 65세 이상 경로라 입장료는 무료였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궁궐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서울의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13년, 1789)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행궁인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온양행궁 중 규모나 기능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대왕 행차 시에는 화성행궁에서 머무르며, 혜경궁 홍씨 회갑연(진찬연) 및 과거 시험, 활쏘기 등 여러 행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낙담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 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현재도 화성 행궁 옆에 우화관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한류의 중심지로 대장금, 이산, 왕의 남자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화성행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차를 했다.

 

화성행궁을 둘러보면 처음 접하는 곳이 '신풍루' 정문이다. 정문 앞에는 350여 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 고목 3그루가 있어 이곳의 역사적 애환을 산증이라도 하듯 버티고 있다. 신풍이란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이다. 정조대왕이 참석한 가운데 신풍루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평소에는 이곳 신풍루 앞에서 '장용영 국왕 호위부대 교대식', '무예 24' 등 각종 전통 문화행사가 개최되어 시민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화성행궁 신풍루와 보호수 느티나무

화성행궁 신풍루와 보호수 느티나무


신풍루를 통과하여 궁내로 들어서니 오른쪽 뜰에 매화꽃망울이 반갑게 맞이하여 봄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중양문을 통과하면 봉수당으로 들어가는 삼도(三道)를 지나는데 삼도의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니는 어도이이다. 문관이 오른쪽, 무관이 왼쪽으로 통행하였다. 궁궐에서 어도는 국왕 외에는 함부로 걸을 수가 없다.
 

화성 행궁내 매화 꽃나무

화성 행궁내 매화 꽃나무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이며, 정당(正堂)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다. 현재는 당시 정조대왕의 신하 접견 및 휴식, 진찬연 모습을 관람의 편의를 위해 연출되었다. 
 

화성행궁의 주된 건물인 봉수당

화성행궁의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인 봉수당

정조대왕의 신하 접견 연출장면

정조대왕의 신하 접견 연출 장면

혜경궁 홍씨 진찬연 연출장면

혜경궁 홍씨 진찬연 연출장면

 

장락당은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정조는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의 담장에 다복문과 장복문을 설치하여 이를 통해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다.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처소 장낙당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처소 장락당


한편, 정조는 유여택(維與宅)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신하에게 정사를 보고 받는 곳 및 정조 초상화 모신곳

신하에게 정사를 보고 받는 곳 및 정조 초상화 모시던 유여택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복내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라는 뜻이다.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복내당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복내당


행궁내에는 임금님의 수라상을 차리는 곳으로 드라마 '대장금' 속 수라간을 연출한 곳도 있다. 건물 벽에는 '화성성역의궤'와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있어 그 당시 행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별했다.

 

낙남헌은 일제 강점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다.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특별 과거 시험과 양로연을 열었다. 다른 건물과 달리 기초 돌이 원형대로 보존되었다는 것을 시민들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래당(老來堂)은 낙남헌에 잇대어서 지은 화성 행궁의 별당이다. 정조는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늙음이 찾아온다'라는 뜻을 지닌 노래당을 짓고, 아들 순조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이다.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건물 노래당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건물 노래당


이외에도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뒤주를 전시해 놓아 사도세자가 8일간 뒤주에 갇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함과 왕실문화의 엄격함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화성행궁 후원에 있는 작은 정자 미로한정(未老閑亭)에 올라 화성 행궁의 전경을 사진 촬영했다. 미로한정은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라는 뜻이다.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화성 축성을 막 시작한 1794년 정월, 정조는 미로한정에 올라가 허허벌판이던 수원부에 1천여 집이 들어서 번성한 모습을 바라보며 관리들을 칭찬했다고 전해진다.
 

화성행궁 후원의 정자 미로한정

화성행궁 후원의 정자 미로한정


마침 화성행궁 방문객 중 대학생(4년 재학)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정자2동)를 만났다. 대학생은 본인이 사는 고장에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그 문화재를 소개한 소감을 제출하는 과제 때문에 화성행궁에 왔다. 필자가 동행하며 화성 행궁의 곳곳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니 매우 고마워한 모자(母子)이다. 

 

이처럼 고궁의 정취와 색다른 운치가 있고,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을 보존과 복원하는 사업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 등 매우 뜻깊은 일이다. 또한 정조의 효심을 본받아 우리도 부모님과 조상님께 효도를 실천해야겠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적 문화재를 가진 수원시를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관광명소인 화성행궁 관람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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