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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속에 감춘 강인함... 수원화성과 장용영
수원시립공연단 무예 인문학 교실 ‘정조의 꿈, 정조의 힘’을 듣고
2024-04-09 11:20:27최종 업데이트 : 2024-04-09 11:20:20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세계유산 화성은 규장각 문신과 장용영 무신이 함께 만들고 발전시켰다. 이는 정조 문무 겸비 정신의 완성이다.

세계유산 화성은 규장각 문신과 장용영 무신이 함께 만들고 발전시켰다. 이는 정조 문무 겸비 정신의 완성이다.


 수원시립공연단이 지난 6일 최형국 역사학 박사(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전수 교육 담당)를 초청해 정조테마공연장(팔달구 정조로 817)에서 '무예 인문학 교실' 강연을 열었다.  

 강의 첫 화제는 '무예와 인문학 연결'이었다. 둘은 낯선 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최 박사는 무예가 곧 인문학이라고 설명한다. 무예는 단순히 무기를 들고 총을 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내 몸을 이해하고 분석할 때 그 쓰임이 제대로 이뤄진다. 현대에 와서는 총칼을 직접 쓰지 않는다. 대신 몸을 단련하는 수단이 됐다. 결국 무예는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며, 인간다움을 연구하는 인문학 학문의 범주에 충분하다. 무예를 몸 문화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인문학적 가치를 발견하는 인식에 공감이 된다. 

정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성곽 외형의 아름다움과 기술의 우월함은 비례한다. 이런 사유와 지각이 바탕이 되어 화성은 최고의 성곽이 된다.

정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성곽 외형의 아름다움과 기술의 우월함은 비례한다. 이런 사유와 지각이 바탕이 되어 화성은 최고의 성곽이 된다.


 수원화성과 장용영 이야기를 위해서는 정조의 개인사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본다. 이는 정조가 아버지를 빼앗긴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평생 아버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정조가 국왕으로서 정치적 입문하는 과정에 핵심을 1778년(정조 2년) '경장대고'를 선포하며 국정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본다. 민산(民産,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인재(人才, 좋은 교육을 통해 사람을 길러내는 것), 융정(戎政, 군사적인 바탕으로 정치를 풀어나가는 것), 재용(財用, 국가의 재정 상태를 건전하게 운용하겠다는 것) 등 4대 개혁 표방이다. 

장용영 부대 창설은 군사적인 바탕으로 정치를 풀어나가는 방편이었다.

장용영 부대 창설은 군사적인 바탕으로 정치를 풀어나가는 방편이었다.


  수원화성 건설은 아버지를 찾고 융정의 개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는 시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병란을 겪으며 한양 방어를 강화해야 했다. 특히, 임진왜란을 겪으며 남쪽에도 한양을 지키는 거점 도시가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군사적 의미가 가해진 행정시 수원유수부다. 이로써 한양 북쪽은 개성, 서쪽은 강화, 동쪽은 광주, 남쪽은 수원으로 네 개의 유수부를 뒀다. 

수원화성 야간 군사 훈련. 강의 중에 최 박사는 정조의 수원화성 건설은 성안에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 본질이라고 역설한다.

수원화성 야간 군사 훈련. 강의 중에 최 박사는 정조의 수원화성 건설은 성안에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 본질이라고 역설한다.


 수원유수부의 첫 사업은 화성 건설이다.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해 백성을 안전하게 하는 도읍 건설이었다. '수원화성 성곽은 튼튼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야 하는 성을 왜 이토록 아름답게 짓습니까?"라는 신하들의 물음에 정조 임금은 이렇게 한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 

 강의 시간에 최형국 박사가 띄운 글이다. 정조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보는 순간 감탄하게 된다. 감탄은 성곽 외형의 아름다움과 기술의 우월함과 비례한다. 이런 사유와 지각이 바탕이 되어 화성은 최고의 성곽이 된다. 성곽은 수원천 변에 줄지어 있던 버드나무 잎 모양으로 부드러운 굴곡을 자랑한다.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제안한 옹성을 화성 4개 문에 모두 뒀다. 이 또한 성의 방어력을 높이고, 독특한 멋을 낸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왜군을 막는 전초기지를 하는 수원화성은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와 최첨단 기술이 만나 작품이다.
 
정조는 1778년(정조 2년) '경장대고'를 선포하며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최 박사는 이 사건을 정조가 국왕으로서 정치적 입문하는 과정에 핵심이라고 말한다.

정조는 1778년(정조 2년) '경장대고'를 선포하며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최 박사는 이 사건을 정조가 국왕으로서 정치적 입문하는 과정에 핵심이라고 말한다.


 최 박사는 정조의 수원화성 건설은 성안에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 본질이라고 역설한다. 이것이 애민 정신이고 민본정치다. 성만 볼 게 아니라 성 밖도 봐야 한다. 만석거, 축만제 등을 만들고, 둔전을 설치해 먹을거리를 해결했다. 

 정조는 국왕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숙위소라는 기구를 만들고, 이후 새롭게 조직한 부대가 바로 굳세고 용맹한 부대라는 이름의 장용영이다. 초기에는 정조의 호위 역할에 있었지만, 국방 체제 개혁의 일환이었다. 

'정조의 꿈, 정조의 힘'은 수원시립공연단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수원화성, 정조대왕의 민생철학, 조선 무예사 등을 배울 수 있다.

'정조의 꿈, 정조의 힘'은 수원시립공연단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수원화성, 정조대왕의 민생철학, 조선 무예사 등을 배울 수 있다.


 최형국 박사는 무예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동시에 무예24기 전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강의 중에도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정조가 생각했던 것 그리고 무엇을 위해 정책을 실천했는지 문화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안내한다. 강의 도중에 옛것에 대해 재음미하고 언어화하는데, 듣는 내내 마음을 움직인다. 

 최 박사는 조선 시대 무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무예적인 성격을 강화해 보기 위해 갑옷 느낌이 나는 옷을 입었다고 한다. 날렵한 몸매에 콧수염이 있고, 머리는 길게 땋았다. 그 모습이 은연중에 조선 시대로 이끄는 힘이 느껴진다. 

최 박사는 조선 시대 무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날렵한 몸매에 콧수염이 있고, 머리는 길게 땋았다. 그 모습이 은연중에 조선 시대로 이끄는 힘이 느껴진다.

최 박사는 조선 시대 무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날렵한 몸매에 콧수염이 있고, 머리는 길게 땋았다. 그 모습이 은연중에 조선 시대로 이끄는 힘이 느껴진다.


 잠깐 봤는데도 자신을 평생 무예 공부로 몰아붙인 헌신이 보인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아둔하게 보일 정도다. 그 행색을 초라하게 볼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평생 우리 무예를 어루만지고 터득한 자신감으로 차 있다. 오직 한 길을 걸어온 학문의 세계에서 나오는 박식함은 일상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신비가 있다. 

최형국 박사는 무예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동시에 무예24기 전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정조가 생각했던 것 그리고 무엇을 위해 정책을 실천했는지 문화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안내한다.

최형국 박사는 무예사와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동시에 무예24기 전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정조가 생각했던 것 그리고 무엇을 위해 정책을 실천했는지 문화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안내한다.


 겉치레 없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야릇한 분위기가 난다.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틀에서 벗어나 순진무구의 삶을 실천하는 선비의 모습이다. 위선과 가식, 허무로 가득 찬 세상 사람들에게 진실과 순수의 모습을 가르쳐준다. 산속에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정담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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