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궁동 사랑채 설명을 듣고 있다
망포 글빛도서관에서 기획한 '다시 돌아온 핫스팟을 찾아서'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행궁동 일대를 걸으며 탐방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오전에는 구름이 끼어 탐방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행궁동 매표소 앞에서 모여 인사를 나눈 뒤, 역사 강사이자 해설가인 이경희 강사의 흥미로운 해설을 들으며 행궁동 곳곳을 걸었다. 신작로와 행궁동 골목길, 팔부자길, 수원성지까지 역사와 현대를 잇는 행궁동의 핫스팟을 탐방했다. 먼저 신작로 길을 따라 수원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현재 이 길은 도자기 공방과 종이 공방들이 많아 '행궁동 공방 거리'로 불린다.
이어 찾은 행궁동 사랑채는 무료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한옥으로 지어진 이곳은 뒷마당이 예뻐 여행객들의 쉼터로 사랑받는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요즘 행궁'이라는 브랜드 팝업도 열리고 있어 수원 캐릭터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사랑채에서 나오면 맞은편에 한옥집이 보이는데, 이곳은 고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등장한 집이라고 한다. 이 한옥집에서부터 혜경궁 홍씨가 사용했다던 '한데우물'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옛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열린 문화공간 후소
조금 더 내려가면 멋진 소나무와 정갈한 잔디 정원이 어우러진 '열린 문화공간 후소'가 나온다. 이 공간은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오근택이 요양을 위해 지은 대저택 중 일부였다고 한다. 지금의 후소는 그 대저택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니, 당시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후소는 1층은 갤러리로 전시 공간, 2층은 오주석 선생의 서재와 미술사 자료실, 쉼터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상반기 테마전으로 <그림 속 수원화성>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조선시대 군현지도인 <화성전도>, 김홍도의 명작 <서성우렵>, <한정품국>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날은 특별히 관계자의 설명도 함께 들어 전시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졌다. 2층에는 수원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오주석 선생의 뜻을 기려 서재와 자료실을 재현해 놓았다.
이제 다시 행궁으로 돌아왔다. 늘 궁금했던 수원시립미술관 뒤편의 건물은 신풍초등학교 강당이었다.
매산초등학교가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였다면, 신풍초등학교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행궁 복원 사업으로 인해 초등학교는 광교로 이전했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강당 건물은 현재까지 남겨져 있다.

나혜석 기념비 해설을 듣고 있다
행궁동 골목을 돌다 보면 수원 출신의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의 기념비가 있다. 나혜석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신여성으로, 지금과 비교해도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던 인물이다.
행궁동 골목 안에는 나혜석의 생가터도 있다. 기념비에는 그녀의 연보와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으며, 근처 수원시립미술관 2층에 나혜석 관련 상설전시가 마련되어 있어 함께 관람하면 더욱 의미가 깊다.
'경기서점'과 '브로콜리숲'이라는 독립 서점이 있는 골목,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촬영지를 지나며 행궁동 구석구석을 누볐다. 행궁동 골목길은 '행리단길'이라고도 불리며, 트렌디한 카페와 맛집들이 많아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다. 좁고 오래된 골목의 분위기와 감각적인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진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행궁동의 옛 모습을 더 살펴보기 위해 팔부자 거리로 이동했다. 정조 시대에는 팔부자의 대저택들이 있던 거리였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지고 이후에는 문구거리로 변모했다. 현재도 '동광문구' 같은 50년이 넘은 문구점이 남아 있고,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몇 군데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거리 전체가 문구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상점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뽈리화랑의 전경
마지막으로 수원성지를 찾았다. 북수동 성당 내에 있는 뽈리화랑은 주임신부였던 데자레 뽈리 신부가 한국어 수업을 하던 곳으로, 소화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성당 옆에는 6·25 전쟁 중 폭격으로 사라진 옛 성당이 있었으며, 현재의 성당은 교황님의 모자를 형상화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뽈리화랑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의 나무 서까래와 소화초등학교에서 사용했던 나무 의자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나무로 된 좁은 복도, 마룻바닥 등에서 오래된 숨결이 전해진다. 성당을 한 바퀴 돌며 천주교 신자 박해의 역사도 들었다. 이곳은 옛 포도청 자리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로, 지금도 수원 성지 순례의 명소로 꼽힌다. 옆에 있는 종로교회와 천도교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들으며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행궁동에 맛집들이 많아 자주 찾던 곳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가치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알게 되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한 시간 반 남짓, 행궁동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소풍을 나온 듯 들뜬 마음으로 탐방했다.
옛스러움과 현대적인 모습이 어우러진 행궁동이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니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수원의 역사가 담긴 오래된 건물들의 가치를 알고, 오래도록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