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인문학 강의
방화수류정, 영화정, 미로한정
2025-06-09 11:17:43최종 업데이트 : 2025-06-09 11:17:4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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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강의가 열린 수원화성박물관 지난 5일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테마전인 '방화수류정' 전시회 연계로 '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이날 박정애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연구교수는 '화성 누정의 시각적 이미지 : 기록과 재현의 혼융'이란 세부 주제로 동아시아 회화 속에서의 누정을 소개하고 수원화성의 누정을 기록과 그림을 비교하며 강의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특이한 점은 동양화와 서양화에서 산수(山水)가 그림에 등장한 것이 1천 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동양화에서 산수, 자연이 주제로 등장한 것은 당나라 시대인 반면 서양화에서는 19세기에 들어서야 자연이 주제로 등장했다고 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종교, 철학적 관점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양은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서양은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당나라 이후 송나라 시대에는 자연을 그린 산수화가 주류로 등장했다. 북송대의 화가 곽희(1023-1085)는 '임천고치', '산수훈'에서 "산을 물로 혈맥을 삼고 초목으로 터럭을 삼고 안개와 구름으로 정신과 풍채를 삼는다. 그러므로 산은 물을 얻어 활기가 생기고 초목을 얻어 화려해지고 안개와 구름을 얻어 수려해진다. 물은 산으로 낯을 삼고 누정(樓亭)으로 눈썹과 눈을 삼고 고기를 잡고 낚시를 하는 모습으로 정신을 삼는다. 그러므로 물은 산을 얻어 나오고 누정을 얻어 밝고 시원해지고 고기잡이와 낚시하는 경치를 얻어 넓게 트여 고적하게 된다. 이것이 산수를 배치하는 법이다." 산수화에서 핵심적인 경관이 누정 이라는 것으로 동양화 속에서 누정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 '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강의가 열린 수원화성박물관 중국에서는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등의 누정이 오랜 세월 명승으로 그려졌고, 조선에서도 이들 중국의 명승을 그리면서 조선의 아름다운 누정도 그림으로 남겼다. 누정은 아름다운 명승에 세워지기 때문에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누정에 오르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아름답다. 누정 안에 걸려 있는 시인 묵객들의 시 현판은 누정의 운치를 더한다. 정조대왕은 차비대령화원제도를 통해 회화적 기량을 단련시켜 김홍도, 최득현, 김득신, 이명규, 장한종, 윤석근, 허식, 이인문 등 걸출한 화가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이들이 '화성원행도', 의궤의 도설 등을 그렸다. 화성성역의궤는 현전하는 유일한 축성 의궤답게 건축 도설이 많고 회화 표현이나 기법 면에서 비견되는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하다. 수원화성과 관련해서는 '화성원행도', '화성전도', '의궤 도설'. '화성 춘추 8경 병풍', '한글 정리의궤 그림' 등 현전하는 시각자료가 많아 미술사학계의 관심이 많다고 한다. 여러 그림에 등장하는 누정들은 복합적 기능과 장소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군사, '영화정'은 경제, '미로한정'은 문화라는 측면에서 수원화성이 지니는 의미를 알아봤다. ![]() '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강의 중, 방화수류정 세부도 비교 수원화성의 시설물인 방화수류정의 장소적 정체성은 군사적 목적에 있다. 1797년 1월 29일 방화수류정을 방문한 정조대왕은 신하들과 활쏘기를 한 후, 구경하던 백성들도 활쏘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활쏘기를 한 후 정조대왕은 시 한 수를 짓고 채제공이 현판으로 써서 걸라고 했다. '歷遍春城日未斜(역편춘성일미사) 小亭雲物轉晴佳(소정운물전청가) 鑾旂慣報參連妙(난기관보삼연묘) 萬柳陰中簇似花(만류음중족사화), 춘성을 두루 보고도 해가 아직 기울지 않고 소정의 풍경은 한결 더 맑고 아름답구나. 난기가 계속 연이어 세 번 맞춤을 알리니 수많은 버들 그늘 속에 살촉이 꽃 같구나.' 작은 정자는 풍광이 뛰어나고 정취가 있는 방화수류정인 것이다. '화성성역의궤'와 '한글 정리의궤'의 방화수류정 내도, 외도 모습을 자세히 비교하며 수원화성에 대한 정조대왕의 관심과 애착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화성 추8경인 '용연제월'의 공간적인 배경이다. 영화정의 장소적 정체성은 경제적 목적에 있다. 수원화성 성역 당시 전국적인 가뭄에 직면하자 성역을 일시 중단했었다. 1795년 봄에 수원화성 북쪽에 만석거라는 저수지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대유평이라는 국영농장을 건설했다. 이후의 가뭄에서 수원화성 백성들은 풍년가를 부를 수 있었다. 만석거 남쪽 언덕에 지은 정자가 영화정이다. 영화정에서 내려다보는 '맑고 깨끗한 물과 평평하고 기름진 들판'은 화성 추8경의 '석거황운'이라 할 수 있다. ![]() '그림으로 보는 수원화성의 누정' 강의 중,화성전도 병풍과 족자 미로한정은 화성행궁 후원에 있는 정자로 문화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미로한정은 6각형의 평면 구조로 화성 추8경 '한정품국'의 공간적 배경이다. 김홍도가 그린 병풍 그림을 보면 오른쪽 위에 화성장대를 배치하고 중간에 미로한정, 왼쪽 아래에 화성행궁의 낙남헌을 사선으로 배치하면서 상단의 왼쪽과 하단의 오른쪽은 여백으로 처리했다. 특히 상단 왼쪽에 '미로한정'이라고 단정하게 예서체로 그림의 제목을 쓰고 '신홍도', '취화사인'이란 김홍도의 낙관을 찍었다. 오늘날, 깊어가는 가을날 미로한정에 올라 국화를 바라보면서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2시간 동안 열띤 강연을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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