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화성 팔달문 내부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화성연구회 팔달문 모니터링
2025-09-04 13:18:19최종 업데이트 : 2025-09-04 13:18:1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
|
수원화성 팔달문 지난 2일 오후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모니터링 분과위원회는 수원화성 남쪽 대문인 팔달문 모니터링을 했다. 팔달문은 수원화성 중 유일하게 도로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어 평상시에 출입할 수 없는 시설물이다. 화성연구회에서는 1년에 한 번 화성사업소 협조를 받아 팔달문 내부에 들어가 시설물을 전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수원화성의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 화홍문,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장대, 화성장대, 동1 포루, 동2 포루 등은 출입이 자유롭고 마루에 올라가 앉을 수 있어 나무마루가 반질반질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팔달문은 위 시설물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마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나무마루가 부패해 있다. 목조건축물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만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유지가 될 수 있다. 수원화성 팔달문 공사 관리자 실명 각자 수원화성 팔달문은 1794년 2월 28일 건설을 시작해 9월 15일 완공했다. 옹성은 1795년 4월 21일 건설을 시작해 5월 20일 완공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팔달문 홍예 안쪽 너비가 18척, 바깥쪽이 16척이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장안문과 같다고 했다. 장안문 홍예는 안쪽 너비가 18척 2촌, 바깥쪽이 16척 2촌이다. 여기서 1척은 영조척으로 약 30,9cm이며 1촌은 3.1cm이다. 따라서 장안문과 팔달문은 홍예 크기에서 약 6.2cm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 기록을 보면 홍예의 크기 외에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장안문 옹성은 벽돌로 되어있고 옹성 홍예는 돌로 되어있지만, 팔달문은 옹성과 홍예가 모두 벽돌로 되어있습니다. 1913년 일제가 팔달문 옹성 홍예와 문루를 철거했습니다. 1977년 옹성 홍예와 문루를 복원하면서 홍예를 돌로 시공해 원래 모습과 다르게 되었습니다." 수원화성 팔달문 문루 내부 모습 화성성역의궤 기록과 실제 건축한 모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창룡문 옹성은 외면은 벽돌, 안쪽은 돌로 쌓았다고 기록했고 실제 모습도 같다. 화서문은 외면과 내면을 벽돌로 쌓았다고 했지만, 현재 모습은 외면은 벽돌, 안쪽은 돌로 쌓아 창룡문 옹성과 같다. 또한, 수원화성의 암문은 아직 복원하지 못한 남암문 홍예만 돌로 쌓고 나머지 암문은 모두 벽돌로 쌓았다. 수원화성을 관람하는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팔달문,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 방화수류정, 화홍문 등의 건축물이 아름답다고 한다. 수원화성 건축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옛 건축물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스러운 비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 팔달문 상량문 현판 서양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비율(1대 1.618)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석가탑, 첨성대, 부석사 무량수전 등은 금강비율(1대 1.414)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화성성역의궤에 기록한 수원화성 건축물의 크기를 수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황금비율과 금강비율 사이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막연히 아름답다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우아하게 아름다움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팔달문을 아름답게 만드는 홍일점은 조윤형이 쓴 '팔달문' 현판이다. 조윤형은 장안문, 방화수류정, 신풍루, 봉수당, 낙남헌 현판을 쓴 당대의 명필이었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에 있는 현판 중 가장 크다. 화성행궁 현판은 105.9 x 319.7cm이며 팔달문 현판은 181.5 x 453cm이다. 수원화성 팔달문 옹성에서 잡초 제거작업 팔달문 2층 문루에는 '팔달문 상량문' 현판이 걸려있다. 수원화성에서 유일한 원본 현판이다. 팔달문 상량문은 1794년 8월 25일 2대 화성유수를 역임한 이명식이 글을 짓고, 그의 아들인 이면응이 글을 썼다. 안진경체로 쓴 상량문은 걸작이다. 상량문 제목이 '화성남문루상량문'으로 되어있어 당대부터 팔달문을 남문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밖에서 봤을 때 팔달문 오른쪽 무사석에는 팔달문을 공사한 관리와 석수 등의 실명이 새겨져 있다.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에도 관리자의 이름을 새겼다. 책임시공과 자부심이란 측면에서 새겼을 것이다. 이런 전통은 의외로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수원화성 팔달문, 팔달문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팔달문과 옹성의 홍예 개판(홍예 안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구름무늬가 있다고만 기록하고 있어 언제 용 그림이 그려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975년부터 수원화성을 복원할 당시에 팔달문의 용 그림을 보고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에도 용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한 회원은 "팔달문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마루뿐 아니라 옹성의 벽돌도 훼손이 심합니다. 깨진 벽돌이 많아 보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해체 복원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목재가 뒤틀리고 휘는 등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든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