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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내년 마무리되는 수원 화성행궁 ‘33년 복원 대장정’
김우영 언론인
2021-03-08 09:47:46최종 업데이트 : 2021-03-08 17:49:59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공감칼럼

 

수원시가 올해 화성행궁 2단계 복원공사를 시작, 내년까지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2단계 복원사업 대상은 옛 신풍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우화관(于華館)과 행궁 주차장 자리에 있었던 별주(別廚) 등 1단계 사업에서 복원하지 못한 시설이다. 화성행궁은 총 576칸 규모인데, 1단계 복원공사에서는 482칸만 복원됐다.

 

시는 화성행궁 2단계 복원원칙도 정했다. 첫 번째는 화성행궁 1단계 복원원칙을 확인해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굴 유구(遺構)와 '화성성역의궤'를 기본으로 복원한다. 그러나 유구가 나오지 않은 곳은 복원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대부분의 수원시민들이 화성행궁 완전 복원을 기다려 왔겠지만 화성행궁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는 더욱 기대감이 크다.

1989년 10월 6일 열린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창립총회.(뒷모습 맨 오른쪽이 글 쓴 이) 사진제공/수원문화원

1989년 10월 6일 열린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창립총회.(뒷모습 맨 오른쪽이 글 쓴 이) 사진제공/수원문화원

 

1989년 10월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과 고 이종학, 고 김동휘, 고 이승언, 이홍구 선생 등 지역 원로, 문화예술계, 학계, 지역사회단체 대표, 언론계 등 각계에서 모인 42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역사적인 자리에 나도 있었다. 발기위원에 이어 추진위원으로 참여했고 홍보부장이란 직책도 맡았다.

 

추진위원들은 '화성행궁을 복원하여 화성의 얼과 뿌리를 되찾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차례의 세미나 개최, 자료조사, 지표조사,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화성행궁 복원이 세계문화유산 화성과 짝을 이루는 관광자원의 확보를 위해, 특히 수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화성행궁 부지에 신축 예정이던 수원의료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추진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심재덕 당시 수원문화원장과 김동휘 선생 등 추진위원들은 임사빈 도지사를 만나 화성행궁 복원의 당위성을 설명한 뒤 수원의료원 이전 신축을 건의했다. 임 지사는 흔쾌히 이 건의를 받아들였다. 임사빈 지사의 결단은 수원의 역사에 기록돼야 할 것이다.

 

복원 추진사업의 핵심이었던 심재덕 원장은 1995년 민선 수원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복원 사업은 순풍을 탔다. 수원시는 1995년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을 시작해 2003년 완료됐다.

 

화성행궁 개관식은 그해 10월 9일에 열렸다.

화성행궁 개관식. 2003년 10월 9일, 화성행궁 복원 1단계공사가 끝나고 일반에게 공개됐다. 사진/이용창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

화성행궁 개관식. 2003년 10월 9일, 화성행궁 복원 1단계공사가 끝나고 일반에게 공개됐다. 사진/이용창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
 

은은한 연무와 음악이 깔리고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의 대문이 서서히 열렸던 장면을 기억한다.

 

"어서 오라! 후손들이여...내 너희를 반갑게 맞이하노라..."

 

정조대왕은 활짝 웃으며 후손들을 맞이했다.

 

화성행궁 개관식이 열린 그날, 화성행궁에는 2천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행궁 안팎을 메웠다. 미처 행궁 안 봉수당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은 신풍루 앞에 설치된 대형 중계화면을 보며 개관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나 한사람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 역사적 업적을 이뤄낸 당사자 심재덕 전 시장이었다.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공로를 양보한 것이다.

 

이날 김준혁 교수(한신대)는 "화성행궁은 온 백성들에게 삶의 희망의 공간이요, 새로운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고 복원의 의미를 설명했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행궁으로 정조대왕께서 수원에 행차하실 때마다 묵곤 하시던 궁궐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서린 화성행궁은, 한편으론 원대한 개혁정치의 산실로, 또 한편으론 은퇴한 뒤에 수원으로 와서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공간으로 축조됐다.

 

또 조선시대 최대의 궁중행사였던 정조대왕 모친 혜경궁의 회갑연이 열렸던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죽을 끓여주었으며 수원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임금이 직접 양로연을 베풀어준 곳이다.

 

이제 1989년 시작된 수원 화성행궁 '33년 복원 대장정' 내년에 마무리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화성의 모태 화성행궁, 그 화성행궁의 우화관과 별주까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설렌다.화성행궁 전경. 사진/수원시 제공

화성행궁 전경. 사진/수원시 제공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우영 언론인 프로필 및 사진

 

김우영, 언론인, 수원화성행궁, 정조, 우화관, 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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