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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근대 인문기행① 수원의 인사동 '공방거리'
- 여행작가 이승태·박동식
2021-05-26 12:56:33최종 업데이트 : 2021-06-03 10:29:5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아담하고 예쁜 건물들이 많아 눈이 즐거운 공방거리. 걷는 기분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담하고 예쁜 건물들이 많아 눈이 즐거운 공방거리. 걷는 기분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영화와 수원의 예술인이 사랑한 거리 <공방거리>

수원을 찾을 때마다 정조가 생각난다. 진정으로 백성의 삶을 걱정하고 온갖 명분에 부딪치면서도 강한 조선을 세우고자 애썼던 정조가 그토록 사랑했던 곳이 수원이다. 학문을 높이 숭상하던 정조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 군주로 통한다. 행궁광장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형성된 공방거리는 문화를 사랑한 정조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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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은 화강암으로 바닥과 수로를 덮은 길은 유럽의 유서 깊은 거리를 닮았다



'인사동을 옮겨 놓았나?'

공방거리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빛깔을 뽐내는 은 세공품들, 작고 아담한 가게마다 탐스럽고 예쁜 물건들로 가득한 게 그대로 인사동 같다. '가향산방', '수수꽃다리', '달보드레', '한데우물', … 공방거리의 간판들은 하나같이 시(詩)를 쓴다. 어느 가게 할 것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멋진 시인이 맞아줄 것 같은 곳. 화사한 화분이 놓인 벤치는 그 자체로 작품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공방거리의 벽장식. 도자기 타일이 하도 예뻐서 한참을 보았다.

공방거리의 벽장식. 도자기 타일이 하도 예뻐서 한참을 보았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대신 다듬은 화강석을 정성스레 짜 맞춘 길바닥, 역사와 문화가 어 우러진 이 길이 차가 아닌 사람 중심임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배수로를 조각해놓았다. 이리도 예쁘고 정성스레 만든 배수로라니! 배수로 디자인에 감동하기는 또 처음이다. 비가 올 때 다시 찾고 싶을 만큼 근사하다. 보도블록 곳곳엔 '봉돈'이나 '서북공심돈' 같은 수원화성의 독특한 구조물들을 검은 돌에 새긴 장식도 보인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이 역사적인 거리를 격에 맞게 꾸민 재치에 감탄이 터진다.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도 마셨다는 한데우물

예쁜 가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선 공방거리를 걷다가 발길이 멈춘 곳. 아니,시선을 빼앗겼다는 게 맞다. 경주 포석정의 그것 마냥 구불구불한 수로 끝에 예쁜돌확과 지붕까지 갖춘 우물이 여기에 있다. 물 한 모금도 사 먹어야 하는 이 시대의 도심 한가운데서 우물을 본다는 게 너무 신선하다. 가까이 가니 '한데우물'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우리 말 '한데'가 마음에 쏙 든다. 지붕엔 두레박도 매달려 있다. 신기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마침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지나다가 이 우물에 얽힌 추억 한 자락을 들려주신다.

 

"옛날, 여기 남창동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우물물 길어다가 살았어. 나도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부터 이 물로 밥 짓고, 빨래도 했지. 이처럼 번듯하진 않았지만 그 때도 지붕이 있었어. 동네 사람들에게 한데우물은 아주 소중한 곳이었거든. 팔달산에서 내려온 작은 개울도 이 앞으로 흘렀어. 그런데 수도가 들어오고 도시가 커져 개발되며 개울도, 이 우물도 어느새 메워지더라고. 살기는 힘들었어도 이 우물과 함께 살던 그 때가 참 행복한 시절이었지…."
 

공방거리 가운데서 만나는 한데우물.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도 이 우물을 길어 썼을 만큼 유서 깊은 우물이다.

공방거리 가운데서 만나는 한데우물.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도 이 우물을 길어 썼을 만큼 유서 깊은 우물이다.

성벽이 끊어지며 섬이 되어버린 팔달문

성벽이 끊어지며 섬이 되어버린 팔달문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는 이 우물이 더 궁금해져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행궁길발전위원회' 이구림 회장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795년,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유서 깊고 중요한 우물이었던 게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 사람들은 늘 이 우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도시화로 집집마다 수도가 놓이며 이용이 줄자 오염이 진행되었고, 안전의 문제도 있어서 1980년대 들어 뚜껑을 덮고 폐쇄했단다.

 

"2008년에 마을만들기사업을 진행하며 이 우물을 복원하기 위해 뚜껑을 열었었죠. 그때 물이 너무 깨끗하고, 여전히수량이 풍부해서 모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안전을 위해 뚜껑을 다시 덮고, 외부에 새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지붕도 얹었지만 내부는 지금도 옛날 그대로죠."
 

이회장은 젊은 시절 추억의 장소이자 유서 깊은 이 우물이 복원되어 참 다행스럽다며 그 일을 추진했던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복원된 이 우물로인해 일대에서는 매해 '한데우물 한데웃다'라는 마을축제가 열리고 있다. 여행을 하다가 이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물이나 샘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어느 지역이나 우물은 그곳에 뿌리 내린 공동체의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곳이어서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어서다.
 


도자·칠보공방인 '나녕공방' 내부. 한국칠보공예명인인 김난영씨 모녀가 운영하고 있다

도자·칠보공방인 '나녕공방' 내부. 한국칠보공예명인인 김난영씨 모녀가 운영하고 있다

 


P L U S S T O R Y 한국영화가 사랑한 거리

''한데우물'은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작)>의 촬영지기도 하다. 시어머니와 청상과부인 며느리 정숙(최은희 분)이 살고 있는 시골의 명문집에 서울에서 젊은 화가 한선호(김진규 분)가 내려와 사랑방에 머물게 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 마음이 통하지만 구습에 얽매여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도 말 한 마디 주고받지 못한 채 애타는 시간을 흘려보내던 둘의 사랑은 정숙의 다섯 살 난 딸 옥희를 메신저로 간절하고도 아름답게 묘사된다. 수채화처럼 담담하고 한편의 서정시처럼 아름다운 이 영화는 제9회 아시아영화 제 작품상을 받기도 했는데, 놀라운 점은 영화의 주 무대였던 집이 한데우물 맞은편 골목어귀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수원 화성이 복원되기 전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릴 적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나 재밌게 보았던 영화의 촬영지가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니, 정말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다. 아쉽게도 이 집은 개인 사유지로, 주인 가족이 살고 있어서 내부를 둘러볼 수는 없다. 그러나 주인공들 사이에 오가던 6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어투, 특히 최근에도 패러디되고 있는 옥희의 독특한 말투가 귓전을 맴돌고, 금방이라도 대문을 열고 옥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발길은 한참동안 서성인다.

 

공방거리에 있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지.

공방거리에 있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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