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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 판타지가 된다 ① 소곤소곤 골목가베(부제: 숨은 가베를 찾아서)
김가리 작가 편
2021-06-02 13:24:48최종 업데이트 : 2021-06-03 09:52:56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글. 송은지, 노영란

세계문화유산 화성 안 마을 행궁동, 12개 동네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성 안 마을로 묶여 있지만, 마을 골목길이 다르고 생활의 냄새도 다르다. 200년의 역사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삶의 무늬가 다 다른 행궁동에서 예술가들은 판타지를 꿈꾼다. 

 

김가리 작가

김가리 작가

 

김가리작가는 행궁동 골목길을 자주 산책한다. 골목을 걷다가 작은 창문이 나 있는 좁고 깊은 골목 끝에 다다랐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여성이 시와 소설을 쓰려면 년 간 500파운드의 재산과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데, 나만의 방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창문 사이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한나절의 햇빛과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쉽게 죽지 않는 선인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록색 가베를 꺼내 작은 창을 내고 햇볕을 들였다. 커다란 선인장 화분도 놓았다. 이 골목길을 걷는 누군가도 이곳에서 '자기만의 방'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LOVE HOPE

LOVE HOPE


페인트칠이 벗겨진 모퉁이 담벼락 사이, 녹슨 창문틀 아래 회색 벽, 키 작은 풀잎들이 기댄 낡은 담장, 골목 구석구석에서 가베 작업을 했다. 골목의 지형을 살린 작업이었다. 갈라진 틈새에 쥐구멍을, 모퉁이 담벼락에 비상구를, 좁은 골목 입구에 화사한 꽃들을 붙였다. 크지 않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가베 작품들이다. 그래서 더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던 좁은 골목길에서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누군가가 가베를 발견하고 잠깐이라도 즐겁다면 좋겠어요." 알록달록한 가베 작업으로 골목에서 말을 건네는 김작가, 만삭의 몸으로 작업을 하는 내내 즐거웠다고 한다. 신풍, 장안동 골목 14곳에 가베 작품들을 숨겨 놓았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는 가베 작품들을 발견하는 즐거움. 골목 산책자에게 주는 김작가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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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가득 스미어든 나지막한 가베이야기

 

Q. 본인 소개를 부탁해요.

A. 행궁동 가뱅크시(GaBanksy)라고 해요.

 

Q. 가뱅크시란 단어는 처음 들어봐요. 뱅크시 작가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어떤 뜻인가요?

A. '가베'와 '뱅크시'의 합성어로 제가 만든 단어예요. 뱅크시(Banksy)는 영국의 그라피티작가이고 익명의 아티스트로 유명해요. 그는 벽에 낙서를 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작업을 해요. 저 또한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픽토그램' 이미지들을 '가베'라는 도구로 익숙한 동네 골목 벽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게릴라성 이라는 점, 표면적으로 쉽게 읽힌다는 점, 하지만 이면에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점 등이 뱅크시가 추구하는 방향과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가벵크시'라는 단어를 만들게 됐어요.

 

 

Q. 어떤 작업인가요?

A. '가베'라는 블록 조각들을 디자인해서, 행궁동 골목 숨은 공간 곳곳에 미리 디자인한 조각들을 붙이는 작업이에요.

 

Q. 얼마동안 작업하셨나요?

A. 14개의 작품을 했는데, 하루에 2~3개씩 한 달 남짓 걸렸어요.

 

Q. 행궁동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행궁동은 무언가를 품어 내고 수용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그 어떤 상황이나, 건물, 사람 그리고 작품이 비집고 들어와도 행궁동은 그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녹여서 결국은 스며들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행궁동은 한마디로 소화력이 어마어마하고, 행궁동화 하는 능력이 있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편안하고 자신을 수용해 줄 수 있는 곳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곳에 저절로 모이게 되기 마련인데 행궁동에는 그런 요상한 마력이 있는 동네예요.

행궁동이랑은 조금 떨어진 매교동에 살고 있지만, 일부러 행궁동까지 와서 산책을 해요. 또 일부러 골목길에 들어가서 길을 잃어 보기도 해요. 하지만 길을 잃어도 모든 곳이 이어져 있는 '연결감' 덕분에 행궁동을 헤매고 다니며 하는 산책이 참 좋아요. 그 헤맴 속에서 발견하는 의외성의 기쁨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작업적 욕구가 일어났고 그런 마음들이 발전하여 작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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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A. 눈에 띄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외되지도 않은 공간들을 찾으려고 했어요. 아싸 중에 인싸, 인싸 중에 아싸 라고 설명하면 좀 더 와 닿을까요...행궁동의 본래의 모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저의 작업이 더해져서 생기는 작고 소소한 변화들에서 보는 관객들이 즐거움을 얻어 가길 바랐어요. 가베 블럭의 색깔 자체가 알록달록 하다보니까 아무래도 눈에 띄기 마련인데, 너무 큰 소리로 저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큰 주제를 '소근소근 골목 가베'로 정했어요. 균형과 조화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어요.

 

Q. 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A. 야외작업이다 보니까, 날씨의 영향과 시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비가 오면 설치하러 가기가 어려웠고 저녁에 날이 어두워지면 잘 보이지 않고 작업이 단단히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들이 좀 어려웠어요. 그리고 이 공간에 붙였을 때 혹시나 여기는 붙여서는 안 될 공간이라거나, 이런 작업들을 싫어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들이 마음을 어렵게 했어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쨘-' 이라는 작업을 붙일 때 생긴 에피소드인데, 작업하는 벽 바로 옆집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집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막걸리 좀 그만 마시라고 엄청 잔소리를 하고 계셨는데, 저는 정작 그 옆에서 술의 흥을 부추기는 '쨘-' 이라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괜히 양심에 찔리더라고요. 근데 할머니는 이런 잔소리가 매우 익숙하다는 듯 할아버지한테 대꾸 한마디 안하고 꿋꿋이 막걸리를 드시고 계셔서 그 상황이 괜히 웃겼어요. '쨘-' 이라는 작업으로써 할머니의 즐거움(?)을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뿌듯하기도 했어요.

 

또 '문자메시지' 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말을 거셨어요. 동네에 이런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하시고, 제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할아버지도 프로산책러이셨던 거 같아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예쁜 벽화나 이런 작업물들을 보면서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셨어요. 저의 작업의도랑 결이 맞아서 그런 말을 들을 때 엄청 힘이 나죠.

 

'민들레 홀씨'라는 작업을 할 때는 정말 붙이고 싶은 공간을 발견했었는데, 그 공간이 하필 금속공예 하시는 분의 작업실 앞이었어요. 엄청 용기를 내어, 여기다 작업을 설치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결과물에 대해서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작업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교류들의 기억들이 쌓여가며 작업에 대한 깊이가 더해졌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Q. 가배는 어떤 재료인가요?

A. 점, 선, 면으로 이루어졌고 크기와 모양이 다양해요. 이 조각들을 사용해 여러 가지 모양을 구상할 수 있어요. 독일어로 가벤(gaben)+베가붕(begabung)의 합성어이고, '신의 선물'이란 뜻이에요. 단어를 직역하면 '은물(恩物)'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선 '은물가베'라고 불러요. 어린아이들의 창의성을 발달시켜주는 교구로 만들어진 블록이에요.

 

Q. 가베를 설치할 골목은 어떻게 정했나요?

A. 행궁동을 산책하면서 구석의 골목길들을 직접 찾아 다녔어요. 그리고 이 골목길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생각했고, 그 이야기들의 주제 이미지를 가베블럭으로 구현하고 디자인했어요. 어떤 부분에, 어떤 위치에, 어떤 디자인을 붙여야 이야기가 잘 전달될까에 대해 가장 깊게 고민을 했어요. 순간접착제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한번 붙이는 결정을 내리면 다시 무르기가 굉장히 난감했으므로 장소와 가베 디자인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골목들을 정해나갔어요.

 

Q. 작업한 골목을 걷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안녕하세요. 혹시 산책을 좋아하시나요? 아, 그렇군요. 저도 산책을 참 좋아해요.

어떤 곳을 걷는 게 좋으세요? 저는 큰길보다는 도둑고양이처럼 이런 좁은 길들을 걷는 게 좋더라고요. 당신도 그러신가요 ?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곳을 걸으면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막연함에 사로잡히진 않으시나요? 저는 좀 그렇더라고요. 제가 골목길들을 걸으면서 했던 몽상들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조금은 위로가 되나요? 큰소리로 떠들지 않을게요. 여긴 아무래도 좁은 골목길이니까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떠들기에는 참 좋아요. 제가 목소리가 작거든요. 그래서 행궁동을 좋아한다고요? 사실 저도 그래요. 만약 또 마주치게 된다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어 주세요. 저도 반갑게 인사할게요. 조금만 헤매다 보면 또 길이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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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삭의 몸으로 작업을 했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요?

A. 이번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애기가 생겼어요.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경험들을 하는 중이었죠. 신체적 변화와 들쭉날쭉한 컨디션들에 조금 힘이 들었어요. 입덧이 심해서 다음날의 컨디션이 예측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유를 길게 갖고 성실히 작업에 임하려고 나름 애를 썼어요.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께서 많이 신경써주시고 또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임신기간 동안 잊지 못할 추억들이 많이 쌓였고 개인적으로 작업적 발전으로 성장하게 되어서 힘듦보단 기쁨이 훨씬 더 컸어요.

 

Q.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걸 느끼셨나요?

A.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것들로 엉뚱하고 웃긴 것들을 만들어보자는 놀이로 가베를 시작했는데, 작업을 하면서 깊이가 더해지고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아웃풋이 점점 늘어났어요. 내가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 하고, 어떤 포인트들에 감동하는지, 또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스스로 주도해 나가는 작업의 적극성과 재미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시간이었어요.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세요?

A. 어떤 재료나 주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욕심을 많이 내고 싶어요. 앞으로 저에게 다가올 크고 작은 영감들을 놓치지 않고 여러 시도를 하고 싶어요. 그게 글이 되거나, 페인팅, 드로잉, 혹은 퍼포먼스, 설치미술, 영상 등등 그 어떤 매체가 되더라도 내가 '나'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일맥상통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방향의 작업들도 도전해보고 싶고, 지금 하는 작업에 더 깊이 들어가서 발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삶이 흐르는 대로, 거기에 따라오는 나의 이야기들을 작업으로써 풀어내고 싶어요. 그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 지는 미지수지만, 그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나다울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어요. 결국은 항상 도전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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