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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근대 인문기행② 100년을 지켜 온 교동의 터줏대감, 수원 구 부국원
- 여행작가 이승태·박동식
2021-06-09 13:53:42최종 업데이트 : 2021-06-09 13:59:5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1936년에 인쇄된 '관광의 고도 수원'에 그려진 부국원. 팔달공원 왼쪽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1936년에 인쇄된 '관광의 고도 수원'에 그려진 부국원. 팔달공원 왼쪽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수원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 건 이 매력적인 도시가 지닌 두 얼굴 때문이다. 수원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던 개혁군주 정조대왕이 백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친히 만든 계획도시다. 그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하고 부강한 조선을 만들고자 애썼던 그의 야심적인 계획은 수원화성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수원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옹이처럼 간직한 도시다. 해방이 되고 수원사람들은 일부 일제의 흔적을 애써 지우고 허물었으나 몇몇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오늘의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 그 무대가 교동을 중심으로 알뜰히 펼쳐진다.

 

서남암문에서 곧장 내려서던 성벽이 절해고도가 된 팔달문을 마주한 채 끊어진 지점. 여기서 공방거리가 끝나고 길은 수원화성을 벗어난다. 성 밖 풍광은 어떨까? 더 거칠고 역동적인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살짝 설레기도 한다.

 
수원 구 부국원 모습

수원 구 부국원 모습

행궁로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거리 풍광이 약간 밋밋해질 즈음 오른쪽으로 길이 살짝 꺾이더니 그 끝에 낯선 모양을 한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근처의 빌딩들보다 덩치가 작은데도 독특한 모양에 눈길이 저절로 향한다.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 층수만 높인 맞은편의 상가나 최근에 지은 옆 건물에 비해 외관이 수수하고 고풍스럽다. 겉은 2층 구조지만 주변에 견주니 4층 높이다. 정면은 튀지 않는 색깔의 타일을 붙였고,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은 안정감이 돋보인다. 가까이 가니 '수원 구 부국원(富國園)'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렸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곳'이라니, 무척 매력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아래쪽의 안내판 문구를 읽어보니 부강하게 되는 그 나라는 정조가 꿈꾸던 조선이 아닌 일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지었으며,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건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 이라는 게 주된 내용. 수원시에 몇 안 남은 20세기 초반의 일제강점기 건물이라는 점도 강조되어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모든 방면에서 이토록 치밀하게 준비하고 서서히, 그리고 깊이 파고들었다는 무서운 역사를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수원 구 부국원'의 모습. 타일이 떨어져나가며 쌓아올린 벽돌의 속살이 지난 100여년의 고된 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 구 부국원'의 모습. 타일이 떨어져나가며 쌓아올린 벽돌의 속살이 지난 100여년의 고된 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겉모습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정면과 달리 측면 벽은 타일이 떨어져나 가서 안쪽에 쌓은 벽돌이 드러나 있다. 이 작은 건물이 겪어온 시대가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건물 앞 작은 비석엔 해방 후 수원법원과 검찰청사로도 사용되었다고 새겨져 있다. 일제의 부유함을 위해 만들어졌던 건물이 해방 후 우리의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수원의 사회정의와 평등을 지켜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니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없이 힘들었던 시기를 온 몸으로 버텨온 이 건물은 2017년 10월 23일,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이자 고통과 희망으로 이어온 역사를 증명하는 '유산'인 '수원 구 부국원'은 앞으로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주변의 역사는 근대역사문화탐방로로서, 부국원 건물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사적 공간으로 꾸며진단다. 수원시민이 살아 온 이 '신작로'의 역사와 경험은 미래를 위한 더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낡은 얼굴을 한 채 수없이 주인이 바뀌며 헐릴 위기에까지 몰렸던 '수원 구 부국원'이 이제 교동을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재로써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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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구 부국원의 외형 변화들

수원 구 부국원은 옛날 사진과 비교해 볼 때 외형적으로 몇 곳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수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필요에 따라 내·외부 구조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인 듯하다.

원래 2층 구조의 건물로 지어졌으나 중간에 3층으로 내부 증축되었음을 오른쪽 측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왼쪽 1층에 녹슨 철문이 보이고, 후면에 3층으로 연결된 철구조물과 3층 벽의 철문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개축한 3층으로 물건을 올리고 내리던 도르래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P L U S S T O R Y '박내과 의원'을 아시나요?

나이 지긋한 수원 토박이들에게 '수원 구 부국원' 건물은 '박내과 의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해방 후 한국전쟁과 격동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툭하면 소유주가 바뀌던 부국원 건물은 1981년, 수원예총을 끝으로 개인에게 팔렸다. 이때 병원이 들어선 것이다.

 

박내과 의원은 개원 후 용하다는 소문이 나며 수원지역은 물론, 인근 용인과 화성 등지에서 환자들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이곳은 유명한 '동네의원'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건물은 소독약 냄새 풀풀 풍기는 병원으로 수원시민들의 추억 속에 함께했다. 세월이 지난 후 박내과 의원은 수원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서울로 진출하게 된다.

 

박내과 의원이 떠나자 한 인쇄사가 이사를 와서 간판을 바꿔 달았다.그 간판이 이 질곡 많았던 건축물의 마지막 명패가 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주인이 바뀌면서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던 부국원 건물은 주변땅과 함께 개인에게 팔리며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때 일

제강점기 수원지역사를 연구하던 한 학자의 노력이 더해지며 수원시가 매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2층의 콘크리트 건물은 1920년대에 유행하던 신고 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 이렇듯 '수원 구 부국원'은 수원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버텨내면서 그 모든 흔적을 나이테처럼 간직한 채 지금도 교동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등록문화재'란?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비지정문화재로 나뉜다.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 5장 제53조에 따라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보존되는 가운데 활용이 이루어지도록하기 위해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34조에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은 건설 후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한 것도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가능함)으로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하여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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