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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안점순 기억의 방’에서 일본의 후안무치를 생각한다
김우영 언론인
2021-08-20 13:23:10최종 업데이트 : 2021-08-20 13:22:37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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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창궐 이후 기쁜 일이 많이 없어졌다. 특히 내 삶의 큰 낙 가운데 하나인 벗들과의 만남이 제약을 받으면서 극히 일부 소수끼리만 자리를 함께 하니 왁자지껄한 재미가 줄었다.

 

매년 설레며 기다렸던 (사)화성연구회의 해외 문화유산 답사여행도 2019년 8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를 끝으로 멈췄다. 1년이면 두 차례 이상 떠났던 국내 성곽 비교답사도 가지 못하고 있다. 동생들과 매년 국내·외로 떠나던 여행도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르니 그저 답답하다.

 

이런 가운데 맞은 8월도 벌써 중반을 넘겼다. 매년 성대하게 치렀던 8.15 행사도 열리지 못했다. 이런 중에도 그나마 위로가 되는 소식이 두 가지 있었다.

 

76주년 광복절인 15일 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공항에서 홍 장군을 맞이했다. 17일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홍 장군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중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5000km 떨어진 이역만리 타향 카자흐스탄에서 세상을 떠난 이후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잠들지 못했을 장군의 영혼은 18일 고국의 대전 현충원에서 안식에 들어갔다.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미래와 후손들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홍범도 장군이 서거한 것은 1943년이니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 온 것이다. 비록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에서 영면하시게 돼 다행이다.

 

또 하나의 뜻 깊은 소식은 수원시가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내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은 옛 수원시청으로 지어졌던 건물로써 권선구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기억의 방은 다음달 1일부터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다.

 2017년 3월 8일 수원시민의 성금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안점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2017년 3월 8일 수원시민의 성금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안점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안점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시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을 정식 명칭으로 운영되는 곳은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이 최초"라고 밝힌다.

 

전시실은 안점순 할머니의 생애와 경험을 통해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한 내용들로 짜여 있다. 전시실엔 구형 저울이 눈에 띄는데 이 앞에 서면 할머니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영상이 상영된다. 이 저울로부터 할머니의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는 "쌀집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가 55㎏이 넘자 트럭에 실려 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 땅에 여성으로 잘 못 태어난 탓에 그 끔찍한 질곡의 세월을 보낸 위안부 피해자들. 일본의 후안무치한 역사왜곡에 치가 떨린다.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는 이른바 '토착왜구'들의 행태에도 분노가 치민다.

 

전시장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자료와 작품들을 통해 일제의 만행과 피해자들의 한 많은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안 할머니는 지난 2018년 2월 공개된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에서 "억만금을 준다고 한들 내 청춘이 돌아올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곁에 와서 말 한마디라도 하는 게 원칙 아니냐" "이제라도 사죄 한마디 하면 다 끝날 일"이라면서 일본정부의 사과를 바랐지만 2018년 3월 30일 90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그 염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일부. 사진/수원시포토뱅크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일부. 사진/수원시포토뱅크
 

1997년 나는 극단 성 김성열 대표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정신대 아픔 나누기'란 총체극을 만들어 공연했다. 김성열 연출로 극단 성 단원들의 연극과 정수자 시인이 쓴 '도라지'라는 시가 노래로 만들어져 공연됐다. 공연에 필요한 제작비는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행사 위원장은 지역 문화예술계의 원로인 김동휘 선생이 맡았다.

 

공연을 하면서 위안부 피해자 돕기 모금도 했는데 공연 제작비와 공연장 사용료, 팸플릿 제작비, 포스터와 현수막 제작비 등을 제외하고 200만 원 정도가 남아 수원시에 기탁했다. 당시 심재덕 시장은 안점순 할머니를 시장실로 초청해 성금을 직접 전달했다. 나는 이때 안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그 기억이 어제일 같은데 안점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김성열도, 심재덕 시장과 김동휘 선생도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기억의 방에서 나는 안 할머니 뿐 아니라 이렇게 안 할머니와 함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많은 수원시민들이 기억의 방을 방문하면 좋겠다.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우영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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