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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바람의 맛과 깔
정수자 시조시인
2021-08-24 15:31:22최종 업데이트 : 2021-08-24 15:31:05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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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상하다. 바람의 맛과 깔을 높여온 형용사. 특히 가을바람에 유다른 촉감을 얹으며 개운한 맛을 돋워준 표현이다. 그래선지 상쾌하고 시원하다로 쓰면 초가을 바람의 맛과 깔이 확 주는 느낌이다.

 

가을바람도 처서 무렵의 바람 맛이 일품이다. 더위에 수고했다고, 긴 여름내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그을린 팔을 쓸어주는 바람은 쾌적한 위로다.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자연의 보약이다. 그런 바람을 맞으면 지친 몸에도 새로운 기운이 돈다. 띵하니 풀죽어 지내온 이맛전에도 서늘한 바람내 같은 감각이 새로이 살아난다.

 

바람의 위로라, 그리 받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다. 바람은 그저 때에 따라 오고 가는 것일 뿐. 그중 가을바람의 일이라면 과일과 곡식을 맛나게 익히는 소임일 터다. 뜨거운 볕 사이를 오가며 오곡백과 잘 익히고 단맛 돋우는 게 오래된 바람의 오래된 노릇이다. 절기에 따른 농사로 밥 먹어온 사람의 일에 바람의 일이 알맞게 들며 간단없이 이어온 것이겠다.

 

그런 바람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대기의 온도와 기압차에 의해 공기가 이동하는 기상현상'이니 공기 움직임으로 인지될 뿐이다. 그런 과학과 무관하게 우리는 바람에 많은 의미를 실어왔다. 이름도 많아 산들바람부터 회오리바람, 명지바람, 하늬바람, 높새바람 등등 대충 봐도 수십 여 가지다. 게다가 '바람의 말'에서 '바람의 사상'에까지 이르면 깊이와 넓이와 층위도 다양하게 문학과 철학 등을 포괄한다.

 

바람은 사람도 키워낸다. 일찍이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자화상」)이라고 한 서정주가 시에 새바람을 일으켰듯. 무엇보다 독자들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는 도발적인 선언이었다. 바람의 역할을 달리 열어젖힌 이 구절은 다양한 패러디로 이어지며 바람을 더 널리 불어넣었다. 나아가 시적 비유 이상의 중의성(바람[風], 바람[願]) 활용에 따른 바람의 맛과 깔의 즐김에도 쓰였다.

 

그런 바람의 힘을 담아낸 캐릭터도 많다. 그중 인상적인 인물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 주인공 히스클리프(원제는 Wuthering Heights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다. 그야말로 황야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같은 집착과 광기의 격정적인 캐릭터로 문학사에 남았다. 그렇듯 거친 바람이 키질한 야성이 있나 하면, 연중 부드러운 미풍이 길렀음직한 낙천성도 있다. 눈앞의 나날을 '영원한 현재'로 여기며 거리낌 없이 즐긴다는 지중해연안 사람들처럼.

 

사실 바람은 무형 무취 무색이다. 어딘가 닿는 순간 감각으로 느껴질 뿐. 풀이나 나무가 흔들리면 바람이 분다고 인지할 뿐. 그럼에도 바람의 일은 쉼이 없고 끝이 없다. 설렁 바람이 스치면 절로 터지는 감사를 바치는 요즘은 더 그렇다. 괜스레 뾰족해진 마음까지 겸손히 눅여주는 까닭이다. 큰 나무 아래 들어서면 큰 어른 같은 그늘에 절하듯, 바람의 길에도 순하게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생명이 삽상한 바람을 받들 때다. 다만 바라기는 농사 망칠 큰비바람만 치지 않기를. 초가을 바람의 맛과 깔을 즐기며 너무 덥다고 미뤄온 일도 꺼내든다. 이 또한 오래된 바람의 일로 이즈음 사람의 일까지 올차게 이끄는 힘이려니.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정수자, 시조시인, 인문, 폭풍의 언덕, 서정주,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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