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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견딤의 ‘영끌’처럼
정수자 시조시인
2021-08-31 15:50:09최종 업데이트 : 2021-08-31 15:57:54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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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다. 뜨거운 여름을 견딘 후 맞는 하늘이 청량하다. 가을의 전령사라는 풀벌레소리도 한층 맑고 높다. 견디다 보면 끝을 보는 것. 끝이 좋으면 힘들게 참아낸 시간까지 환해진다.

 

견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영끌' 버티기다.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굳센 외유내강 영혼까지 끌어 모으며 참아내기. 그런 면에서 견딤은 우리 일상이나 주변에 매우 많다. 일찍이 '견인주의자'(이양하)라는 은유를 입은 나무들처럼. 눈비와 바람이 오는 대로 다 맞는 나무는 동물과도 달라서 지진 해일조차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견인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그만큼 전에는 견인을 미덕으로 여겼다. 학교 가정통신란에도 '인내심이 강하다'가 있으면 칭찬이라 뿌듯했다. 멀리 보면, 단군신화의 곰에도 토템신앙 외에 인내의 정신성 중시가 나타난다. 널리 쓰여 온 '참을 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나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로 강조해온 것 또한 견인의 힘과 덕성이라 하겠다.

 

그런데 요즘은 인식이 달라진 듯하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닌 게다. 불공정 같은 제도적 문제라면 인내로만 해결할 수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적 어려움도 그냥 참고 견디기는 이제 사절이다. 예컨대 직장생활 힘들다는 신참에게 좀 견뎌보라 하면, 가르치기나 하는 '꼰대' 취급당할지도 모른다. 꿈의 직장도 견디기 어려우면 곧장 퇴사로 자신만의 삶을 행사하는 세태다. 많은 견딤으로 난관을 헤쳐 나온 윗세대는 다시 새로운 가치관과 마주하는 판이다.

 

참지 않는 성향은 세간의 말에서도 많이 보인다. 곱고 바르고 순한 표현들이 무슨 패자의 말인 양 밀려난 것이다. 특히 정치권의 거칠고 무례한 막말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회문제다. 그런 언행을 실어 나르기 바쁜 일부 언론인과 극히 선동적인 유튜버들은 '참을 수 없는 막말의 괴로움'으로 우리의 인내심을 괴롭힌다. 점점 심해지는 국민모욕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인내심과 언어 수준이 같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도처에서 닥치는 욕설도 우리 인내심을 모욕한다. 버스 안에서 해맑은 여학생들이 쏟아내는 욕설을 꼼짝없이 들어야 할 때가 그러하다. 무람없이 들이치는 욕에는 귀를 막거나 씻을 뿐, 어디까지 견뎌야 하나 무력감마저 든다. 그보다 힘든 것은 가까운 사람의 예기치 않은 모욕에 되치기마저 놓쳤을 때가 아닐까. 다음을 벼르는 자존심 추스르기로 견딤의 한계를 넓혀야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견딤은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은 모두가 견딤을 견디는 시절. 거리 두기 강화로 깊어지는 고립부터 잘 견뎌내야 한다. 서로 기대 살아온 사람살이 '人'의 역사에서는 고립이 곧 고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무너져가는 소상공인들의 생계형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비대면 거리 두기로 마음의 방역을 높일 밖에 아직은 별 수가 없나 보다.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정지용, 「장수산 1」) 일제치하 시인이 견뎌낸 치욕을 읽다 견딤의 자세를 다잡는다. 아직은 적극적인 견딤이 필요할 때, 견디는 능력을 발휘해야 바이러스에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견딤이 때로는 삶이므로.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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