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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가을엔 편지를
정수자 시조시인
2021-09-07 13:35:18최종 업데이트 : 2021-09-09 10:12:10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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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묵은 정서일까. 가을! 하면 편지가 떠오른다. 한때는 빨간 우체통만 봐도 설렜다. 편지의 행간을 서성이다 되읽곤 하던 서정적인 오솔길이 스친다. 가을엔 편지를~ 하고 보니 더더욱.

 

물론 편지가 가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런데 가을과 편지를 더 엮어보는 것은 계절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 꽃보다 곱게 물든 잎들도 곧 낙엽으로 떠날 터, 조락에 따라는 만감이 일고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마음도 생각도 더 오래 켜게 되는 게다. 일찍 어두워지는 가을저녁이면 등불을 더 당겨야 하듯.

 

그렇게 편지의 시간은 좀 다르게 간다. 다른 심연을 거느리기도 한다. 하루를 정갈히 씻고서야 일기장 앞에 앉는 밤의 마음이다. 그래서 편지를 쓰거나 받거나 하는 순간만은 온전히 자기만의 것인 양 오붓하다. 특히 깊은 마음을 담은 교류라면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영혼의 통로를 보유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대상이 딱히 없어도 편지는 쓰였고 또 쓰인다. 가상의 인물에게 쓰다 말고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가을 편지」)라고 흘리기도 했듯.

 

무릇 쓰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편지는 더 마음을 살펴가며 쓰게 된다. 업무용 편지는 다르지만, 마음을 전하는 편지일수록 감정을 돌보는 활동이 커진다. 과잉이나 낭만적 허풍 같은 게 끼어들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찢기는 밤에 쓴 편지의 불행을 편지 좀 써본 사람이면 겪었음직하다. 격하던 밤의 감정들이 맑은 아침에 보면 얼마나 허황되고 치졸하던지.

 

그런 편지도 점점 귀해지고 있다. 이메일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문자며 카카오톡에서 페이스북까지 다양해진 SNS시대 소통으로 공들여 쓰는 손편지들이 사라질 판이다. 예전에 나라 간의 공적인 일부터 개인의 연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교류를 감당했던 편지의 역할도 확 줄었다. 흔히 상투적인 편지 문구로 회자되던 '부모님전상서'나 정작 할 말은 '용돈 좀 빨리 보내주세요'를 '추신'에 넣던 것도 이제는 사라진 풍속도다.

 

돌아보면, 문학만 해도 편지의 힘이 컸다. 서간문집에 서간문체도 있었듯, 편지를 묶어낸 명저도 많았는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름을 높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문학 지망생과 주고받은 5년간의 편지를 책으로 펴낸 필독서였다. 릴케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도 나오는데 독일에서는 괴테 이후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약 7000통의 편지가 책의 형태로 출간됐다니, 일생 하루도 거름 없이 편지를 썼던가 보다.

 

그 독일에 최근 4천여통의 한국 편지가 닿았다.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도 계속 지켜달라는 호소의 편지다. 소녀상 그림이며 삽화도 정성껏 그려 넣은 한국 소녀들의 손편지가 차곡차곡 쌓인 모습은 감동적이다. 위문편지 말고는 기록에 남을 단체편지의 역할이자 참여일 것이다.


손편지는 마음을 내어야 가능하다. 종이 고르듯 마음을 고르고, 할 말과 글씨를 간추려 적고, 우표를 붙여야 하니 말이다. 우표 없는 쪽지나 이메일도 있지만. 그렇게 편지 쓰는 시간과 마음만큼의 보상도 따른다. 매력이든 표현력이든 문장력이든. 그러니 올 가을엔 편지를~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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