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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가을볕을 받들며
정수자 시조시인
2021-09-14 13:41:06최종 업데이트 : 2021-09-14 13:39:43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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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햇볕을 받드는 나날이다. 가을볕도 한가위 전후가 제일 따갑게 쬔다. 아직 덜 익은 과일과 곡식을 익혀가는 가을볕의 행보에 눈이 부시다. 비바람에 쓰러진 벼이삭에까지 고르게 찾아 드는 볕살 속에서 지상의 양식들도 살이 오른다.

 

밝은 볕은 우리 몸에도 좋은 보약이다. 비타민D 같은 영양소를 무상으로 주사하니 말이다. 볕쬐기가 피부에는 기미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지만, 몸에는 무한정의 보약을 하사받는 셈이다. 특히 볕쬐기로 예방하는 골다공증은 물론 습도에 따라 통증의 강도가 달라지는 관절염이나 만성염증 보유자들에게는 햇볕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보약이다.

 

맑은 볕은 상처에도 좋은 연고다. 여름내 주변을 점령한 물것들로 인해 생긴 상처들을 아물게 해주는 것이다. 높은 습도에서는 잘 덧나던 상처들이 습도가 낮아지면서 꾸덕꾸덕 빨리 아물기 때문이다. 곰팡이며 모기 같은 여름 벌레들 활동이 확연히 줄어드니 물리는 상처 자체가 적어지기도 한다. 여름 물것들에 물린 자국마다 가을볕이라는 쾌청한 연고를 바르다 보면 자연의 보약에 새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인가, 가을볕은 눅눅한 마음에도 좋은 약이다. 비가 연중 많이 내리는 나라 사람들은 우울지수가 높다고 한다. 장마철 외에는 비가 매일 내리지 않는 우리네와 달리 침울한 성향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비가 그리 많지 않은 기후인 우리나라는 비가 사나흘만 내리 와도 울적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초가을장마가 높여놓은 불쾌지수와 우울지수 따위를 가을햇볕이 환히 물리쳐주니 그저 받들게 된다.

 

햇볕, 하면 오래전부터 빌려 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센 바람에는 옷을 껴입기만 하던 행인이 부드러운 햇볕 아래서는 두꺼운 옷들을 벗더라는 우화. 그래서 햇볕의 이름으로 펼쳐온 통 큰 정책도 있었다. 결과는 우화처럼 빨리 나타날 수 없지만, 지금도 이런저런 복지정책에 햇볕의 비유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만큼 높거나 낮거나 가리지 않고 두루 공평한 햇볕의 덕이 큰 까닭이겠다.

 

그런 가을볕 아래 홍옥은 쨍하니 더 빛났다. 과일가게마다 쌓아올린 빨간 홍옥이 가을의 첫 과일처럼 각인되며 미각도 자극해온 것이다. 새빨갛게 잘 익은 고추만큼 강렬한 홍옥의 감각은 반짝반짝 오래도록 맺혔다.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가슴이 뛴다/아가야/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 먹는/고추장도 되고/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사랑도 되고(안도현, 「가을햇볕」)"라는 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듯.

 

쨍쨍 가을볕에 고추 말리는 마을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벼의 색깔이 연노랑에서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들판 역시 바라만 봐도 부듯하다. 수수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속속들이 익혀가는 모습 또한 그윽하다. 주어지는 가을볕을 받들며 지상에 온 소임을 완수하는 자세다. 그런 자연의 숭고한 결실 속에서 자신의 거두기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저 환한 가을볕에 거둘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가. 코로나19 와중에 더 무력하게 지나온 지난날들. 이제 소소한 일이라도 궁리를 더 하며 결실을 돌아볼 때다. 무상의 상 같은 가을볕을 받들며.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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