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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기찻길 대신 ‘사람길’...참 좋다 ‘수인선 하늘숲길’
김우영 언론인
2021-09-19 12:07:23최종 업데이트 : 2021-09-19 12:07:18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상단표출이미지

 

초가을이라지만 한낮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걷기로 했다. 코스는 옛 수인선 협궤열차 '기찻길'이 있던 곳에 조성된 '사람길'인 '수인선 하늘 숲길'이다.

 

1995년 12월 31일 수인선 꼬마열차가 운행을 멈춘 뒤 수원에서 어천역 구간만이라도 한번은 걸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특히 내 유년기와 소년기, 20대 초반까지의 모든 기억이 담긴 봉담읍 수영리 마을 옆을 지나가는 철길을 가장 걷고 싶었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이루는 구릉을 관통하는 189m의 수영리 협궤열차 터널은 꿈속에서도 나타날 정도였다.

 

10살 무렵 이곳에서 이른바 담력테스트를 했다. 동네 남자 아이들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철길에 귀를 대고 있다가 멀리서 덜컥덜컥 기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터널 속으로 냅다 달린다. 위험천만한 짓이었지만 그래야 겁쟁이라는 놀림을 피할 수 있었다.

수인선 터널(사진/김우영)

수인선 터널(사진/김우영)
 

나도 참여했지만 그만 어둠속에서 침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터널 중간 벽면엔 두세 명 정도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처가 있어 살아날 수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급정차한 열차의 차장에게 붙잡혀 수원역까지 끌려갔고 어머니까지 불려가 싹싹 빈 뒤에야 풀려나기도 했다. 물론 돌아온 집에서는 아버지의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가장 궁금했던 곳이 터널이었기에 걷기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목천동을 지나 화성시 지역인 옛 국순당 백세주 공장 앞에서 내렸다. 수인선 하늘 숲길은 양지마을 아파트에서 끝난다. 그 뒤로는 수인선 전철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10살 무렵에 이곳에 들어갔다가 혼이 난데다, 그 후 어머니로부터 미군 폭격기들이 새우젓독만한 폭탄을 터널 앞에 떨어트려 인민군들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뒤 다시는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으니 거의 45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어둡고 으스스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입구부터 환하게 단장돼 있었고 아직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많은 산책객들과 자전거동호인들이 오가고 있었다. 내가 몸을 피했던 대피 공간은 전철 출입문처럼 꾸며져 있었다.

 

터널 바닥엔 철로도 남아 있었고 중간쯤엔 수원시-화성시 행정구역 경계 표시도 해놓았다. 터널은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협궤터널이어서 보존가치도 높다.

 

인근 양지마을 아파트에 산다는 한 주민은 이 길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매일 산책을 한다면서 앞으로 나무들이 더 자라 그늘이 드리워지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걷기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인선 하늘 숲길 오목천역 근처, 주민들이 옆 밭에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사진/김우영)

수인선 하늘 숲길 오목천역 근처, 주민들이 옆 밭에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다.(사진/김우영)
 

수인선에 얽힌 추억은 또 있다, 바로 황구지천을 지나는 오목내 철교 건너기다.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때는 천길 벼랑에라도 선 듯한 느낌이었다. 철교는 철거되고 지금은 멋진 보행교가 놓였다.

 

내 눈에는 옛 철교모습이 더 정겨웠고 그 모습을 살려 복원하기를 바랐지만 이 다리도 오래 지나면 눈에 익숙해지리라.

  새로 만든 수인선 오목천동 철교(사진/김우영)

새로 만든 수인선 오목천동 철교(사진/김우영)
 

수인선 하늘 숲길은 고색동 동쪽 끝에서 멈춘다. 그러나 옛 철길을 따라 경부선 철도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정비해 놓아 원하면 더 걸을 수도 있다.

 

당초 계획은 수인선 수원 구간은 옛 수인선 구간 그대로를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철길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지역이 갈리고 소음 등 환경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수인선 수원시 구간의 지하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수원시가 1920억 원의 시 예산을 투입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수인선 상부공간이 공원이 된 것이다.

 

수인선 하늘 숲길은 오목천동 터널에서부터 고색동 동쪽 끝까지 3.5㎞ 구간이 길게 연결돼 있는데 올해 말 준공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수원시민과 화성시민들이 이 길을 걷고 있다.

  고색동 구간의 수인선 하늘숲길(사진/김우영)

고색동 구간의 수인선 하늘숲길(사진/김우영)
 

시에 따르면 수인선 하늘숲길 이팝나무, 왕벚나무, 대왕참나무,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억새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 도심 속 숲길을 재현했으며 옛 철로를 활용해 독특한 경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또 산책로 곳곳에 쉼터와 소규모 광장 등을 조성했다. 아, 다음엔 자전거를 타고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전거도로도 잘 만들었다. 수인선 하늘숲길 자전거길은 세류삼각선 자전거도로와도 연결됐다. 도로와 하천 등으로 단절된 구간에 보행입체시설을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그 길을 걷는 내내 행복했다.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우영 프로필 및 사진

 

 

 

 

 

김우영, 언론인, 기찻길, 하늘숲길, 수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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