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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혼잣말의 즐거운 사용법
정수자 시조시인
2021-12-01 14:03:06최종 업데이트 : 2021-12-01 09:45:11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혼잣말을 자주 하는가. 작정 없이 그냥 툭 튀어나오는 혼자소리. 그러고 보니 제멋대로 터져 나오는 혼잣말이 꽤 많다.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뭔가 못마땅한 세상 탓도 거드나 보다. 흥얼거림은커녕 무슨 투덜거림이 늘어난 것이다.

 

주변도 그러한지 둘러본다. 늘어난 1인 가구만큼이나 혼잣말도 늘지 않았을까. 그렇듯 무심코 뱉는 세간의 혼잣말들을 채록해본다면? 무슨 말이 제일 많을지,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다 말고 얼른 닫는다. 사생활이며 초상권 침해 등등이 떠올라 제풀에 달려본 생각을 절로 멈추게 되는 것이다.

 

혼잣말은 독백이나 같은 말이다. 그런데 독백이라고 쓰면 용처나 역할이 조금 달라지는 느낌이다. 연극 등에서 주요인물의 대사로 독백을 많이 활용하는 까닭이겠다. 상대역은 못 듣고 관객만 듣게 하는 방백과도 다른 독백 특유의 맛이 있다. 특히 독백은 인물의 내면이나 미묘한 심리를 전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간혹 일상에서 일부러 "이건 독백이에요" 하면서 주변이 알아듣게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고 보면, 독백은 문학에서 오래 전부터 많이 쓰였다. 그중 서정시의 정의로 회자되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서정시는 엿들어지는 독백'이라는 것. 서정시는 일종의 주관적 고백이니 누군가 엿듣고 싶게 하는 독백의 형태를 띤다. 엿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독백이란 귀엣말처럼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듯 독자가 엿듣고 싶어져야 시적 흡인력도 높아지는 특성과도 닿는 말이다. 시가 그런 독백의 떨림과 울림까지 담보할 때 독자와 함께 더 오래 살 수 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 墨畫」

 

이런 시의 독백에는 이중 삼중의 엿듣는 독백이 들어 있다. 일을 마친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 모습에서 서로의 속말을 엿듣는 행위를 독자도 엿본다. 엿듣고 싶어지는 할머니의 독백과 소가 되뇔 만한 독백을 같이 듣는 시인의 귀엣말에 같이 숙어든다. 흑백의 그림 한 폭처럼 짧은 몇 줄의 시가 거룩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엿듣기로 생의 비의(秘義)를 그윽이 들려주는 것이다.

 

일상 속의 독백도 필요하다. 하릴없는 혼잣말이라도 날숨처럼 뱉어야 사는 것이다. 뭐든 속에만 담고 있으면 병난다고, 혼자 뱉는 말로도 뭉친 마음을 풀 수 있다. 낙서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누군가 심하게 미울 때 흰 종이가 까매지도록 쓰고 나면 마음이 나아진다. 그렇게 혼잣말을 끼적이다 어디선가 툭 치고 나오는 시 같은 것도 만날 수 있다.

 

그냥 혼잣말도 쓸데없는 듯 쓸 데가 있다. 자기 암시처럼 좋은 쪽으로 말을 뇌면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혼잣말에 주위가 덩달아 환해지듯.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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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물, 인문칼럼, 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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