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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아동복지시설 퇴소 청년들의 둥지 ‘셰어하우스 CON’
김우영 언론인
2022-09-06 13:36:21최종 업데이트 : 2022-09-06 13:35:05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은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이 돼 줄 것이다.(사진/김우영)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은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이 돼 줄 것이다.(사진/김우영)



명색이 시인인 내가 읽은 시 중에 무릎을 '탁'하고 내리칠 만한 시가 몇 편이나 있었을까.
 
조선시대 부안의 여류시인 이매창부터 시작하면 그래도 100편은 넘지 않을까.
 
거기에 끼워 넣고 싶은 시가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이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중략)...
그는 하루 종일 손익관리 대장경(損益管理臺帳經)과 자금수지심경(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중략)...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중략)...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후략)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의 모습이다. 의자를 치워버릴까 싶어 '의자 고행에 용맹정진'하고, 목이 잘릴까봐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리는 사무원들의 슬픈 모습에 독자들은 깊이 공감했다. 김기택 시인의 시는 난해하지 않다. 그래서 좋다.
 
그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단에 나온 것은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가뭄'과 '꼽추'가 당선되면서다. 1995년 제14회 김수영 문학상, 2001년 제46회 현대문학상, 2004년 제11회 이수문학상, 2004년 제4회 미당문학상, 2006년 제6회 지훈문학상, 2009년상화시인상을 탔다. 모두 그가 받을 만한 상들이다.
 
나와는 오래 전 인연이 있다. 스무살 무렵에 만났다. 나는 수원에서 시림동인회를 이끌고 있었고 그는 안양의 배준석 시인과 함께 시울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별로 말이 없었고 빙그레 웃음 지을 뿐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안양을 생각하면 김대규 안진호 배준석 시인들과 함께 김기택 시인이떠올랐다.
 
 
그는 고아였다. 내 젊었을 적 시를 쓴다고 만난 친구들 가운데 고아원 출신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김기택 시인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의 근황은 알 수 없다. 성공했더라면 간간히 소문이라도 들릴 터인 데 아예 무소식이다. 모두들 팍팍한 삶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어려움을 이긴 김 시인은 특별하게 성공한 사람이다.
 
만 18세가 된 아동양육시설, 청년은 법에 따라 보호가 종료된다.
 
매년 전국에서 2500여명, 경기도내에선 400여명이 만18세에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퇴소한다. 그러나 절반 정도가 거주할 곳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보육시설에서 나온 청년들에겐 1인당 500만 원 정도의 자립정착금이 한번 지급되고, 3년 동안 지방정부가 월 3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높고 견고한 현실의 장벽을 넘어가 자립하기 어렵다. 퇴소 청년 중 약 36%가 5년 이내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고 한다. 경제·사회적인 어려움을 온전히 혼자서 겪고 있는 것이다.
 
수원시가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콘)' 사업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다소 마음이 놓인다.
 
시의 홍보자료에 따르면 셰어하우스 CON은 Community(지역사회)와 ON(계속)을 합쳐 만든 용어다. 관내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예정)한 청년들에게 임차료 없이 2년 동안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동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자립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권선1동·매탄1동 다세대주택에 있으며 한 집에 같은 성별 청년 3명이 공동 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보증금과 임대료는 수원시가 100% 지원하므로 입주청년은 관리비와 공과금만 부담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구입 비용, 수원시청년지원센터 등 지역사회 서비스 우선 이용, 취·창업 관련 기관 연계, 해당 기관 추천 등의 혜택을 준다. 퇴소자에겐 수원시 청년 우선공급 청년임대주택 입주 우선권도 부여한다.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 CON은 수원시 관계자의 기대처럼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이 돼 줄 것이다.
 
 
내 젊었을 적 셰어하우스 CON 같은 것이 있었더라면 좋은 시인 몇 명은 더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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