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공감칼럼] ‘수원 역사 속의 나무’ 출판 되다
김우영 언론인
2021-11-22 08:15:09최종 업데이트 : 2021-11-22 08:14:49 작성자 :   e수원뉴스

'수원 역사 속의 나무' 출판 되다

 

'수원 역사 속의 나무' 출판 기념회가 17일 수원문화원에서 열렸다.

 

이 책을 펴낸 동기를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고도의 물질문명으로 치달으면서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우리 주위에는 그 나무들을 지키려는 많은 손길들이 있다. 이에 그분들의 정성을 기억하고, 무엇보다 나무를 보존하는 일에 관심과 애정을 모으기 위해 수원문화원에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

 

 '수원 역사 속의 나무' 표지

'수원 역사 속의 나무' 표지

 

지난 2월 수원문화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 책을 내기로 했는데 '수원의 나무' 편 집필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수원의 산림정책' 편은 한국조경학회 상임연구위원인 김은경 박사, '수원의 역사와 화성신도시' 편은 수원화성연구소 소장인 이달호 박사가 맡기로 했다. 사진은 (사)화성연구회 사진기록위원회 위원장인 이용창 이사가 담당했다.

 

전체 기획은 한신대 교수로써 자타가 인정하는 '수원 전문가'이자 '정조 전문가'인 김준혁 박사가 담당했다. 최중영 수원문화원 사무국장에 따르면 김교수가 나를 필자로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고맙다. 그렇지 않아도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 아래 앉을 때마다 나무 이야기를 써서 책을 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단번에 승낙했다.


17일 열린 '수원 역사 속의 나무' 발간식(사진 제공=수원시)

17일 열린 '수원 역사 속의 나무' 발간식(사진 제공=수원시)

 

그리고 그날부터 이용창 형과 함께 수원시내 곳곳을 걸으며 나무를 찾아 나섰다. 수원시에서 보호수나 노거수(老巨樹)로 지정된 나무들은 물론 거대한 귀룽나무와 라일락, 뽕나무, 팽나무, 메타세콰이어, 은행나무 등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으려 다녔다.

 

첫 답사는 차를 타지 않았다. 아무리 멀어도 걸어서 갔다. 둘 다 뚜벅 뚜벅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면서 주민들도 만나고 주변 지형이나 마을 분위기를 꼼꼼하게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급속한 도시화로 주변엔 아파트나 상가 등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주민들도 마을을 떠나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잊혀졌던, 또는 고사위기에 처한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나는 '수원 역사 속의 나무' 집필 후기에 이렇게 썼다.

 

"그날 이후 내 관심은 온통 오래된 나무에 꽂혔다. 어딜 가든 나무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조선후기 문장가인 저암 유한준의 말이 옳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나의 눈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중략)...이 책을 만들면서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어떤 때는 내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눈으로 나무를 보면서 형체를 파악하고, 손으로 만지며 감촉을 느끼며, 코를 벌름거려 나무의 꽃냄새를 맡지만 나무는 멀리서도 전신으로 나를 느끼는 것 같다. 내 영혼의 상태까지도. 나무들과의 만남은 행복했다. 이 책에 실린 나무들은 모두 나보다 훨씬 오래 이 세상에서 살아왔다. 말 한마디 없이 묵언 수행한 세월이 몇 백 년이다. 봉녕사 향나무는 무려 800년이나 됐다. 나무를 꼭 끌어안거나 손바닥을 대보면 참으로 편안한 기운이 전해진다. 아무렴,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세상에서 발아한 나무는 없을 테니까."

 

나무는 살아서 열매나, 잎사귀를 사람과 동물들에게 내줬고 여름철엔 그늘도 제공했다. 심지어 죽어서는 자신의 뿌리와 몸체까지 인간에게, 미생물이나 식물에게 줬다. 인간과 나무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는 오래된 나무들이 인간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만, 칠보산 아래 호매실동 츰 추는 형상의 소나무도 그늘 아래에서 술에 취해 늘어졌던 내 젊은 날 그해 여름의 흑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약력

 

 

수원 역사 속의 나무, 정조대왕, 수원나무, 수원화성, 공감칼럼, 김우영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